<정암 20주기 기념강좌> 정암의 교회 개혁에 대한 회고, 박성은 집사(UCI의대 교수)

無益박병은목사 | 2012.12.04 15:04 | 조회 7503

<2008년 11월 11일 정암 20주년 기념대회에서 박성은 집사의 ‘정암의 교회정치론 회고’란 제하의 강좌가 있었다. 지면 관계상 ‘정암의 교회 개혁에 대한 회고’란 제목으로 요약, 발췌한다 _ 편집자주> 

정암 박윤선 목사께서 28년 전 ‘분열주의’라는 비난을 무릅쓰고 합동신학교 설립을 위해 당시 뜻이 같은 젊은 동역자들과 손을 잡았을 때 그에게는 많은 생각이 있었다. “나의 말년에 이런 오해와 비난을 무릅쓰고 새로운 운동에 가담할진대 이번 기회에 차라리 개신교가 갖고 있는 근본적인 사상을 한국교회에 되살리고, 특히 한국교회가 해온 잘못된 관행들을 성경적으로 재검토하여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로 되돌려 놓는 결정적인 봉사를 할 수 있다면 어떨까”라고 생각하시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한국 교회를 개혁자들이 지향했던 교회로, 교회의 기둥이요 사도들이 세웠던 본래의 모습의 교회로, 그리고 그 무엇보다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소원으로 시작했다.


평생 주경신학을 자신이 교회를 위해 받은 중요한 은사로 생각해 왔던 80세를 바라보는 정암은 그런 바램을 품고 교회의 실천적인 문제, 즉 한국 교회의 정치적인 문제를 재검토하게 되었다. 당시 뜻 있는 분들에 의하면 한국 교회가 개신교의 신도수가 지난 십여 년 째 계속 줄고 있지만, 매주일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들의 수로 볼 때는 그래도 유럽이나 미국보다 훨씬 높은데 이상하게 불신 세계에 미치는 기독교의 영향은 놀랠 정도로 미미하다는 것이다. 유래가 없는 양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가 갖고 있는 여러 가지 비성경적 관행과 고질적인 연약함들을 정리하고 극복하고 시정하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기독교의 전면적인 퇴락으로 한국 땅에 복음이 설자리가 더 이상 없어질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얼마 남아 보이지 아니하는 통일 한국으로 들어설 때, 이제까지 무신론과 공산주의 일색으로 무장되었던 북한 백성들을 복음으로 끌어안아 변화시킬 수 있기보다는 더 큰 혼란을 겪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었다. 한국 교회가 건강한 교회로 거듭나지 않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복음의 영광이 다 꺼져버린 유럽 제국들과 같이 되고 말 것이라는 생각도 정암만의 염려는 아닌 것 같았다. 이미 70년대 초반부터 확연해졌던 교회의 물량주의, 교역자들의 권위 주의와 세속주의, 값싼 복음에 흥에 겨운 교인들의 이기적인 삶, 기복주의 사상, 기독교 전반에 걸친 윤리적 무감각 등은 그런 우려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고 보인다.


정암에 따르면 한국 개신교회의 변질의 가장 궁극적인 원인은 무엇보다도 ‘개혁주의 사상의 부재’ 뿐 아니라 ‘부실한 신학교육’에 있었다. 그것은, 한국 개신교 퇴락과 힘없는 ‘신자들’을 만들었을 뿐 아니라, 결국 무능하고 생기(spirit)없는 기독교를 만들어 가고 있다고 보았다. 지금부터 약 사반세기(25년)전 정암은 “구경꾼 같은 신자들”, “중세 카톨릭 같이 되어 버린 교회들”, “말씀을 제대로 배우지 못해 갈한 신자들” 등등 한탄하시는 모습을 필자는 분명히 곁에서 보았다.


당시 정암은 신학정론의 권두언이나 졸업생 훈사 등에서 카톨릭 교회의 고전적인 특징으로 말하는 ‘교직중심주’(sacerdotalism), ‘제도중심주의’(institutionalism), ‘성례 중심주의’(sacramentalism) 등의 표현들을 사용하시면서 한국 교회의 앞날을 염려하셨다.
필자에게 정암은 그의 마지막 10년을 여지없이 퇴락해가는 한국 교회를 초대교회의 순수함과 종교개혁 당시의 개혁자들이 가졌던 정신에로 건져내려고 발버둥치는 모습으로 비쳐졌다.


정암은 그의 사역의 전성기인 고신과 총신 시절에 많은 교단적 권위주의와 정치적 술수 등을 살깊이 경험하였고 나름대로 많은 아픔과 실망을 가졌다. 세속 정치에서 행하여지는 온갖 정치적 술수와 난무하는 권위주의 등을 보며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였다. 돈을 수억씩 뿌리면서 총회장 당선을 노린 다든지, 무력으로 치고 받고 하면서 회의를 파행으로 몰고 간다든지, 온갖 권모 술수들이 교회 안에서 자행됨을 안타까이 여기셨다. 특히 필자가 관찰한 대로는 정암이 가장 안타깝게 생각한 것은 그런 교회 안의 쟁투struggle)로 인해서 어린 신자들이 실족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정암은 진정한 교회 치리회가 가진 권리가 무엇인가에 대해 매우 심각하게 탐구한 것 같다. 정암에 의하면 교회의 진정한 권위는 그리스도에게서 나오나, 그것을 지상교회에서 실제화(realize)시킬 때 개 교회(local church)가 그리스도에게서 받은 빼앗을 수 없는 본질적 권한이 있으며, 개 교회(local church) 안에서는 회중이 모든 가시적 다스리는 권세의 중심이 된다는 것이다. 결코 카톨릭 교회나 감독 교회처럼 위에서 내려오는 권위가 아니고 아래서부터 올라오는 권위라는 것이다. 즉 ‘민주적 권위’라는 것이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되는 것은 정암이 그의 생전에 누차 강조한 대로 개혁이란 두말할 것도 없이 말씀에 기준한 나 자신의 성찰로부터 시작하며, 우리들 자신을 향한 뼈를 깎는 회개로부터 시작함을 살깊이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개혁주의는 결코 완성된 제도를 가진 개혁교회를 의미하지 아니하고, 계속해서 개혁해 나가는 교회를 말한다는 것도 기억해야 될 것이다.

특별히 정암은 무엇이 개혁자들이 꿈꿨던 교회 정치 형태였으며, 무엇이 그 후 생겨난 개신교 개혁주의 교회들이 지향한 정치 방법이었는가 하는 것을 작금의 한국 개신교가 당면한 문제를 의식하면서 정암 자신이 이제껏 얻은 쓰라린 경험들과 그가 그동안 연구한 성경 해석을 바탕으로 헌법 주석을 출판하였다.

정암의 교회관은 무엇보다 구원사적으로 건전한 성경해석을 바탕에서 빚어진 것으로 더욱더 철저하게 개신교적이고(Pros-testant) 더욱더 개혁주의적인(Reformed) 사상을 지향하는 그런 것이었다. 그가 한국교회의 과도기에 교회 강단을 위한 실천적 성경주석을 40여 년에 걸쳐 완성하면서 한국교회에 대해 느껴온 내용들과, 또한 신학교수 사역과 함께 늘 시도되었던 그의 적지 않은 목회사역의 현장을 통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정암 자신이 한국 개신교에 쉽지 않은 시기들을 몸소 겪으면서 아픈 가슴으로 빚어 졌기에 탁상공론 같은 교회관이 아니다.

 

정암이 우리를 떠난 지 20년이 되었다. 그가 병상에 누워 마지막 숨을 몰아 쉴 때는 코에는 피가 흐르는 호스를 끼우고, 몸에는 3-4개의 수액주사 라인과 두세 개의 체액 호스가 꼽혀있었고, 얼굴과 두 눈동자는 극한 황달로 샛노랗게 되어 있었다. 쉰 목소리가 잘 들리지도 않았으나 병 문안 오셨던 교수들은 귀를 그의 입에 대고 머리를 끄떡이며 한참 듣고는 하였다. 정암은 말씀을 하다가 자주 샛노란 눈알을 치켜 뜨시면서 듣고 있는 교수들을 확인하시던 것을 필자는 생생히 기억한다. 남아있는 교수들에게 하신 말씀들을 필자는 옆에서 눈물로 들었고 그것들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신학교를 맡기시면서 여러 말씀 하셨는데 그 요점은 “앞으로 채용하는 정식 교수들은 적어도 2-3년 단독 목회 경험이 있는 분들만 교수로 받아 드려서, 합신으로 하여금 교회를 아는 신학교가 되게 하라”는 것이었다. 실천하기 쉽지 않은 주문이었다. 그밖에도 교수들에게 말씀하신 다른 내용들과 종합해서 판단하기에 그 본질적인 의도는 “교회를 진정 사랑하지 않고, 영성에 무관심하고, 또한 윤리적으로 탁월치 못하면 아무리 학적 수준을 갖춘 교수라도 그런 분들이 학교를 승계하면 한국교회를 새롭게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정암은 구원사적인 성경 해석의 관점에서 그리스도의 교회의 머리되심을 실현함은 교회의 지체요 몸인 중생한 회중(congregation)에게 그들의 위상을 자각시키고, 그들 고유의 사명을 그들에게 되돌려 줌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또한 교회의 민주적인 운영을 포함한다고 믿었다. 요즈음 교파를 초월하여 뜻 있는 한국의 중진 복음주의 신학교 교수들이 정암의 교회 쇄신 노력을 새로 발견하고, 비슷한 방향으로 연구도 하며 글도 쓰면서 한국 교회의 쇄신을 모색하는 분들을 보게 된다. 정암의 한국교회를 향한 노력이 그의 사후에도 단순히 묻혀지지 않고 다시 살아 힘을 얻어 가는 것 같아 조금은 기쁘고 그것이 더욱더 추진력을 얻어가게 되길 기도해 마지않는다.

사실 필자는 정암이 살아계셨을 때부터 교회론적 배경과 실천적 능력이 있는 분들을 규합해서 정암이 갖고 있는 개혁의지를 알리고, 더 필요한 연구와 토론을 통해서 조정과 통합과정을 거처서 각 분야별 세미나 그리고 계몽 작업등을 활발히 나가야 된다고 정암을 여러 차례 권면한 바 있다. 그러나 그 때는 안타깝게도 개혁주의적 교회개혁에 관심을 가졌던 분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학문적인 그리고 실천적인 면에서 노년의 정암을 가까이서 지지해 주고 보좌할 분이 귀했었다. 또한 정암은 벌써 팔순이 넘어 당신의
연로함 때문인지 용의주도함이 상당히 쇄해 갔고 용기와 체력도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 당시 한국교회의 체질이 그런 강력한 개혁 운동을 받아 드리기 는 너무 힘든 상태이기도 하였다


물론 정암의 전반적 개혁주의 사상에 대해 상당한 공감대를 갖고 있으며 정암을 매우 존경하는 원로 후배 제자 학자들은 헤아리기 어려우나 정암의 교회 개혁에 대한 공감대는 최근 한국의 복음주의 소장 학자들에게 적지 않은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음을 보며 기대를 가져본다. 특히 현금의 한국 교회의 어려움과 연계하여 적지 않은 젊은 신학자들이 정암의 교회개혁에 대한 논구를 들추어 탐구도 하고 발표도 하고 있어 필자가 주시하고 있다. 정암의 모든 생각과 100% 일치하지는 않겠으나 상당 수 여러분들이, 정암의 교회개혁 사상의 많은 부분에 동조하면서 한국 교회의 미래와 복음의 영광을 생각하며 계속 연구하고 있음은 다행이라 생각된다.
앞으로 더욱더 이 분야의 훌륭한 학자들과 연구자들과 그리고 일선 목회자들의 연구가 더해지며 더 탁월한 논문들이 가세하여 한국 개신교의 밝은 앞날을 비쳤으면 한다.


끝으로 “오로지 나(하나님)의 신으로라야 됨(슥 4:6)”을 깨닫고,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음과 정암이 생전에 거듭거듭 부르짖었듯이 우리 자신들부터 “살 깊이 성찰하고 회개하며” 우리 자신부터 “과감하게 개혁하는” 정신으로 나아갈 때, 머지않아 세계 교회를 책임질 건강한 한국 교회가, 조국 대한에 자리잡게 될 것이다(2008년 11월 2ㅐ일 자 기독교개혁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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