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의 신앙부흥과 한국교회", 현창학 교수(구약신학,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無益박병은목사 | 2012.12.04 12:43 | 조회 9232

‘한국교회 부흥과 개혁신학’이란 주제로 개최된 정암신학강좌에서 발표된 현창학 교수의 ‘구약성경의 신앙부흥과 한국교회’를 요약 게재한다.<편집자주>

I. 연구배경:평양대부흥100주년
한국교회가 경험한 1907년의 평양대부흥은 새로 자라나는 한국교회에 새로운 영적 활력을 불어넣었고 향후의 성장과 발전에 기틀과 추동력이 되었다. 1906년 1월 6일부터 일주일 이상 진행된 평양 장대현교회의 사경회에서 교회는 위로부터 주시는 은혜를 힘입어 죄를 통회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죄를 사함받는 기쁨을 크게 맛보는 역사가 일어났다. 이로써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확신에 거하게 되고 도덕적으로 정화되었으며, 열심히 전도할 힘을 얻게 된다. 이처럼 교회는 신앙의 새 활력을 얻고 영적으로 철저히 새로워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회개의 영이 임한 날은 1907년 1월 14일 월요일이었다 이날을 혹자는 새 창조의 날 또는 민족사의 혼돈 속에 진리의 빛이 새롭게 비친 ‘신천신지’의 날 등으로 부른다. 마가렛 베스트는 그 즈음의 평양을 “분명한 새 세상”이었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 사경회의 체험은 사람이 인위적으로 조작한 것이 아닌,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주권적 역사로 부어주신 성령 체험이었다. 사람들이 “제각기 기도했으나 모두 한 마음이 되어 기도하였다.” “아무런 혼돈도 없었고 다만 목소리와 영(靈)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었다.” 그들의 기도는 “마치 폭포와 대양의 물결 소리같이 하나님의 보좌에 상달되었다.” “온 교인이 하나님의 능력에 사로잡혀 눈물을 흘리고 회개하면서 기도하기를 새벽 2시까지 계속하였다.”


이 회개 운동은 평양의 여러 학교로 번져나갔다. 숭덕학교와 숭실전문학교가 이에 포함된다. 교사가 인도하는 기도회들에서 학생들이 회개의 영을 받아 통회 자복하였다. 사경회를 인도하는 사람이 의도적으로 학생들의 감정을 돋구거나 분위기 조성을 하는 일도 없이 다만 예수의 십자가만을 얘기하는 데도 성령이 능력으로 임하셔서 많은 학생들을 회개토록 역사하셨다. 학생들은 예수를 새롭게 발견하고 거듭나는 체험을 했으며 전도의 일과 봉사의 일에 헌신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이 학생들은 평양 주변과 더 나아가
경기도와 충청도까지 가서 평양에서 일어난 부흥의 불길을 전하였다고 한다.

 

평양대부흥으로 말미암아 교회는 그 신앙의 질이 내적으로 외적으로 크게 향상되었다. 기독교 복음의 핵심인 죄의식이 분명해지고 이를 통회하여 하나님께 용서받음으로 도덕적 가능성에 대해 커다란 용기를 부여받게 되었다. 통성기도 등 그리스도인의 기도생활이 심화되고 복음에 헌신하는 자들이 많이 생겨났다.


평양대부흥은 비단 그리스도인의 개인적인 삶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도 변화시켜가고 있었다. 대부흥이 진행되는 동안 평양은 우상숭배가 서서히 사라졌고 마치 “새 세상”처럼 보였다고 한다. 서울의 교회들은 반상의 구별을 없앴다. 부활의 복음은 인간에게 자유와 구원의 충만함을 제공해 주었고, “실제로 게으르고 변화가 없고 목적도 없이 살던 한국인들을 복음적 권능의 활동가들로 변화시켰다.”

대부흥은 “그리스도교가 백성들의 영적 필요와 굶주림을 만족시킨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었다.” 특기할 한 가지 사항은 한국인들이 영적 대부흥을 통과하면서 한국의 정치적 사회적 구원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민족적 구원이 살아계신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고 이로부터 자신들의 미래에 대해 자신감과 용기를 확보하게 되었다. 대부흥은 쇠해가는 국운과 더불어 실의에 빠져 있던 한국인들에게 자신들이 처한 민족적 현실을 극복하고 초월해 내는 길은 기독교 신앙밖에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하게 일깨워 주었다.

II. 부흥의 의미와 정의
“부흥”은 가장 간단히 말하면 “생명의 회복,” 즉 “쇠퇴해 가는 교회에 생명이 회복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죽은 시체처럼 무기력하여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교회 공동체에 생명이 회복되고 영적으로 새로워지는 것을 말한다. 생명의 회복을 통해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에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고, 죄를 회개하며, 뜨겁게 기도하게 되고, 세상으로 나가 잃어버린 영혼들과 사회적 약자들에게 깊은 관심과 애정을 보이며 그들을 구원하고 도우려고 힘을 쓰게 되는” 현상이다.


부흥이란 교회 내부와 관계된 일이다. 즉, 부흥이란 믿는 신자들에게 일어나는 무엇이라는 말이다. 위로부터 내리는 은혜에 의해 신자들이 죄를 회개하고 영적으로 큰 변화를 겪는 것을 말한다. 보통 부흥하면 불신자가 많이 전도되어 교회가 숫적으로 성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사실은 그것은 복음전도(evangelism)이지 부흥(revival)은 아니다.


부흥은 초점이 교회 내부에 두어진, 복음전도는 그것이 교회 바깥에 두어진, 성격이 다른 운동이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복음전도는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를 믿도록 하기 위해 교회가 결정하여 전도의 일을 하는 것이다. 복음전도는 부흥이 없이도 교회 자체의 프로그램으로 시행할 수 있다.

그러나 부흥은 교회가 결정하여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성령이 강권적으로 임하셔서 생기는 일이며, 성도들로 하여금 죄에 대해 깊이 뉘우치고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체험케 하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인 것이다. 참된 부흥이 일어나면 그 결과로 복음전도가 따르는 것은 보통 있는 일이다. 그러나 복음전도를 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부흥이 오도록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부흥은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이미 믿지만 능력을 잃어버린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새 생명이 돌아오는 것”을 말한다.

 

부흥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그분의 주권적인 역사이다. 사람의 인위적인 조작에 의해 발생되도록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물론 부흥이 있기 전에 그에 대해 간절히 소망하는 기도 운동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이 무엇인가 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하나님만이 부흥을 가져오실 수 있다는 믿음을 표현한 것에 다름 아니다.


부흥은 죽은 것을 살려내는 것과 같은 신적인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사람에게는 결코 그런 능력이 없다. 부흥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시기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특별한 은총의 역사다. 사람의 계획과 프로그램으로는 부흥을 일으킬 수 없다.부흥의 가장 중요한 표지는 회개이다. 부흥기에는 기도도 많이 하고 찬송도 많이 하고 간증도 많이 하고 불신자도 많이 전도하게 되지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죄의 회개이다. 사람의 의지로 된 것이 아닌, 위로부터 주신 강권적인 능력에 의해 사람들이 자신들의 사악하고 추한 죄를 깨닫고 통렬하게 뉘우치며 고백하는 일이 부흥에는 따른다.

 

회개는 어떤 다른 요소로도 대치될 수 없는 부흥의 본질적인 요소이다. 부흥기에 일어나는 대대적인 영적 각성은 회개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다. 회개가 있기에 사죄의 기쁨이 있으며 그리스도를 구주로 바르게 인식하게 되고 신자들의 영적 도덕적 생활은 커다란 변화를 맞게 된다.

 

올포드의 정의가 가장 함축적으로 부흥의 의미를 말해준다. 부흥이란 “타락한 자기 백성을 회개와 믿음과 순종으로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이다. 하나님은 이미 믿지만 자신에게서 멀어지고 타락한(그래서 능력을 잃어버린) 자신의 백성을 회복시키기 원하신다. 그래서 그들에게 강권적으로 임하셔서 회개의 영을 부어주신다. 죄를 회개한 하나님의 백성은 사죄의 기쁨을 누리며 그리스도를 새롭게 인식하여 신앙하게 되며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된다. 그리고 많은 불신자를 구원하게 된다. 부흥은 비단 개개인의 삶의 영적 도덕적 차원만 변화시키는 사건이 아니다. 사회도 새로운 변화를 체험하는데 타락 일로에 있던 윤리가 새로이 정립되고 사회의 여러 방면이 새롭게 개혁된다.

III. 구약성경의 부흥
논란의 여지가 아직 남아 있긴 하지만 언약은 많은 학자들이 구약 역사의 등뼈요 따라서 구약 해석의 가장 중요한 열쇠라고 생각한다. 구약은 이스라엘의 백성됨(peoplehood)에 대해 다루는 책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하나님은 그들을 애굽에서 구출해 내셨고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도록 율법을 주셨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백성으로 살도록 하나님은 이 역사 속에 관심을 기울이시고 간섭하셨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역사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보증과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요구가 곧 언약이다. 이 언약이 잘 지켜지면 그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관계가 바르게 정립된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역사 속에 언약이 지켜지고 있는지 아닌지를 그렇게도 끊임없이 물으신 것은 자신과 이스라엘 사이에 바른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신 열망 때문이었다. 그것이 하나님이 수시로 역사에 찾아오신 이유이다.


그의 찾아오심이란 역사에 대한 간섭인데, 간섭이란 다름 아닌 자신의 뜻을 알리심과 동시에 매서운 징계를 통해 이스라엘을 회개케 하는 일이었다. 하나님의 찾아오심은 매우 빈번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자신의 역사 속에서 거듭 회개하는 경험을 해야 했다. 회개에는 사죄의 기쁨이 따랐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평안과 번영이 따랐다. 이런 의미에서 매우 개괄적으로 말하면 이스라엘의 역사는 전체적으로 계속해서 부흥을 체험한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역대기 하에는 구약성경의 부흥의 성격을 가장 잘 요약한 구절이 하나 나온다. 그것은 역대하 7:14이다. 이 구절은 역대하 7장과 평행 본문인 열왕기 상 9장에는 나오지 않는 구절이다. 역대기 기자가 독특하게 삽입한 구절이기 때문에 학자들은 이를 하나의 “기획 본문”(a programmatic statement)으로 본다. 역대기 기자는 이 구절을 이후 10-36장에서 분열왕국 시대의 이스라엘(유다)이 어떻게 하나님께 돌아오는가를 해석하는 본문으로 삼고 있다.


이는 솔로몬이 성전 건축을 마치고 하나님께 감사와 간구의 기도를 드리고 성전 낙성식을 마쳤을 때에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나타나시어 주신 말씀이다. 학자들은 이 말씀 속에 역대기 하에 거듭 나타나는 부흥운동의 골자가 다 들어있다는 데에 대체로 의견의 일치를 본다. 특별히 역대기 하는 부흥에 관심이 많은 책이다. 역대기 하는 총 다섯 개의 주요 부흥을 다루는데 그 내용이 책 전체 36장 중 절반 가량인 15장을 차지한다. 7:14은 그 관심의 축약인 것이다.


우선 “내 백성이”라는 말은 언약적 문맥을 상기시킨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니라”라는 소위 언약공식이 말하듯 언약 체결과 더불어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왕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 따라서 여기 “내 백성”은 이스라엘을 가리키되 특히 하나님과 언약관계에 있는 민족으로서의 이스라엘을 강조하여 가리키고 있다(“내 이름으로 일컫는”이란 수식도 이를 입증한다).


하나님의 선택적 사랑을 받은 민족으로서 이스라엘에게는 마땅히 따라야 할 삶의 길이 있다. 지금 이 본문은 그 마땅한 삶의 길에 대해 말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내 백성이”라는 말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려는 대상이 아직 하나님과 일정한 관계가 맺어지지 않은 일반적인 사람이 아님도 보여준다. 하나님은 이미 자신과 언약 관계에 있는 선택된 자기 백성에게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본문은 먼저 부흥 때에 하나님의 백성이 하게 되는 일(또는 해야 할 일)을 묘사한다. 그것은 조건절로 표현되었다. 부흥 때에 하나님의 백성에게 임하는 영적 은혜는(또는 하나님의 백성이 해야 할 의무는) 네 가지이다.

첫째, 스스로 낮추는 것이다. 재난을(가뭄, 메뚜기 재앙, 전염병 따위; 13절) 만난 이스라엘이 스스로 겸손해지는 것을 말한다.
둘째, 하나님께 기도한다. 재난 앞에 속수무책임을 발견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어려움을 아뢰고 구해주실 것을 간구한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본연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 하나님의 얼굴을 구한다. 둘째의 기도와 직접 이어지는 것이겠는데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는 것이다. 구약성경에서 “얼굴”은 하나님의 은총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은혜를 베푸시고 구원해 주시기를 구한다는 뜻이 될 것이다. 이 단계가 되면 적어도 기도의 차원에서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정상적인 관계 회복이 이루어지게 된다.

넷째,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악한 길들에서 돌아선다. 이스라엘이 신앙이 단순히 말로만 그치지 않고 또한 순전히 예배의식 차원에만 머무르지 않는 것을 뜻하는데 참되이 실천적인 내용을 갖추는 것을 말한다. 자신들의 모든 악한 행위를 버리는 것이다. 이스라엘에게는 고질적인 악행이 있다. 우상숭배이다. 쉬운 방법으로 안전만 추구하는 값싼 신앙은 여호와 신앙의 가장 큰 적이었다. 이에서 떠난다. 거기다 하나님께 소홀히 하므로 역시 소홀히 되었던 이웃에 대한 책임(사랑)을 다하는 것이다. 악행을 버린다는 것은 마음을 하나님께만 향하고 이웃을 향한 자신들의 책임을 다하는 것을 말한다.이와 같은 ‘회개’가 진행될 때 하나님은 세 가지의 ‘응답’을 해주신다. 우선 기도를 들어주신다.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은 신구약 성경이 보여주는 가장 위대한 진리 중의 하나이다. 자기 백성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시겠다는 약속은 성경 전체에(신구약) 총 30,000번 이상 나타난다.

하나님은 기도를 들어주신다. 하늘의 하나님이 벌레만도 못한 인간이 하는 기도에 인격적으로 응답하시는 것이다. 성경에서 신앙은 “살아계신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갖는 것”을 의미하므로 성경의 기도가 인격적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기도는 무슨 마술처럼 자동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하나님의 인격적인 개입이 있어서 무언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즉 기도는 하나님의 인격적 개입인 것이다. 성경의 기도가 이방의 기도와 다른 점은 바로 이 인격성에 있다.


하나님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도록 응답하신다. 하나님의 응답은 인간의 요구를 초월한다. 물론 하나님은 인간이 요구하는 것을 그대로 이루어주실 수도 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는 성경의 기도는 하나님 자신이 영광받으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요구를 초월하고 능가하여 궁극적으로 자기 백성에게 가장 좋은(유리한) 것을 허락하시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 자신을 영화롭게 하고 백성에게 최고의 것만을 허락하는 하나님의 응답은 하나님의 지혜의 산물이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의 사랑에 바탕을 둔 주권적인 것이며 따라서 매우 인격적인 것이다.

 

다음의 ‘응답’은 죄를 사해주시는 것이다. 용서는 관계의 회복이다. 신약적으로 말하면 용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 사이에 화목을 가져오는 것이며 더 나아가서 자녀됨의 기초를 제공하는 것이다. 구약에서 용서는 언약의 핵심을 이루어 백성됨의 기초를 제공한다 할 것이다(앞에서 언약에 대해 살필 때 언약은 관계 회복임을 언급한 적이 있음). 구약은 용서를 종종 언약의 문맥에서 말한다.
새 언약은 이스라엘의 모든 허물을 사하는 용서를 본질로 삼는다. 이처럼 구약에서는 언약과 용서가 긴밀히 관련된다. 용서는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관계 회복이라는 신학적 의의를 지닌다. 부흥이란 용서를 통하여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전면적으로 회복되는, 즉 백성됨이 회복되는 획기적 사건이 된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그들의 땅을 고쳐주시겠다고 하신다. 땅을 고쳐주신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삶의 실존의 면면을 총체적으로 치료하고 회복해 주실 것을 가리키는 아름다운 은유이다. 땅 역시 언약적인 개념이다. 족장들과 맺은 언약에서부터 땅은 핵심적인 요소로 등장한다(창 12:1, 7; 13:15; 15:7; 17:8; 26:3, 4, 12; 28:13, 15; 35:12; 50:24 등). 땅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시고 그를 통해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려 하신 수단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우상숭배와 사회적 악행으로 땅을 더럽혔다. 그 죄악의 결과로 땅은 황폐하여 기근이 오고 전염병이 오고 전쟁이 그치지 않았다. 그래서 “두려움과 놀람과 비웃음거리”가 된(대하 29:8) 땅을 하나님이 고쳐주신다는 것이다.
하늘이 비를 내려 풍성한 결실이 있게 할 것이요, 메뚜기의 공격을 막아주실 것이며 전염병의 피해가 없을 것이다. 이웃 열방들을 두렵게 하므로 전쟁의 위험도 막아주실 것이다. 참으로 이스라엘 사회는 영적으로 육적으로 샬롬의 날을 맞이하게 된다.

IV. 구약의 신앙부흥과 한국교회
회개는 1907년 평양대부흥의 주제이기도 했다. 구약의 부흥들을 보면 한결같이 회개라는 공통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다. 모든 부흥은 회개와 더불어 일어났고 회개가 있고야 가능했던 것이다. 야곱, 사무엘, 여호사밧, 히스기야, 요시야 시대의 부흥들을 다루었는데 이것들은 반드시 역대하 7:14가 말하는 ‘회개’를 동반하고 있는 것을 본다. 다만 ‘회개’를 구성하는 요소들(겸비, 기도, 얼굴을 찾음, 돌이킴)의 분량만 서로 간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구약 부흥들의 회개는 우상 제거를 특징으로 한다. 모든 부흥이 이스라엘 안에서 우상을 제거하는 내용을 보도하고 있다. 야곱은 벧엘로 올라갈 때 사람들의 몸에서 신상과 귀고리들을 제거했다. 사무엘은 미스바 집회에서 사람들에게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하고 하나님만 섬길 것을 요구했다. 여호사밧은 평소에 유다 땅에서 산당과 우상들을 제거했다. 히스기야는 우상 철거의 대표격인 사람이다.

구약이 그토록 줄기차게 우상제거를 보도하는 데 그것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본고가 이 항에서 생각해보려는 것은 구약의 개혁과 부흥이 그토록 강조하는 이 우상 제거라는 것이 오늘날 한국교회에서는 무엇을 의미하며 그것을 한국교회에서는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아마 우리의 영적인 안목이 하나님을 향하지 못하도록 우리의 신앙의 발목을 잡고 있는 핵심 우상이 무엇인지 찾아내어 그것을 제거할 수 있다면 우리도 구약의 위대한 시대들이 경험했던 것과 같은 위대한 영적 복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기독교가 무속의 영향을 받고 있는 점은 어떤 것인가. 원리적인 면, 실천적인 면 크게 두 가지로 나눠 생각해 보자. 먼저 원리적인 면을 살펴보자. 무교 또는 무속주의가 한국 기독교에 대해 끼친 영향 중 가장 특기할 것은 아무래도 기독교를 현실주의적인 제재초복(除災招福)의 종교로 만든 점일 것이다. 선험적이며 높은 윤리 이상을 가진 고등종교를 미개하고 원시적인 민간신앙화 하는 것이다. 복음은 하나님의 영광을 지향하고 오늘과 내일에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을 삶의 최고선(最高善, sunum bonum)으로 제시하는데 무속주의의 관심은 온통 현세적 욕망과 자기중심적 이기주의에 가 있다. 먼 미래를 의식하면서 현실에 대해 책임지는 태도는 없고 현재의 안심입명과 복락만을 바라는 과도한 현금주의(現金主義)로 전락하고 있는 것을 본다.


과거에는 뜨거웠던 천국에 대한 열망도 최근에는 어느새 사라지고 오직 현재의 안정과 번영만을 소망하는 현세주의가 되어버린 느낌이 든다. 관심의 범위도 좁다. 고작해야 자신과 자신이 관련된 협소한 공동체의 이익 외에는 시야가 열려 있지 않다. 기도나 의식 속에 이웃과 하나님이 차지하는 자리가 매우 좁다.

마치는 말
구약 메시지의 핵심은 백성됨(peoplehood)이다. 무속주의의 핵심은 제재초복, 한 마디로 하면 기복(祈福)이다. 무속주의는 신자의 심성 속에 자리잡아 성경적 사고와 생활을 하지 못하게 하는 종교적 우상이다. 따라서 한국교회의 부흥이란 신자들의 마음속에서 기복을 몰아내고 백성됨을 새롭게 각성시키는 일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기독교는 자체 의식 깊숙한 곳에 둥지를 튼 무교/무속주의와 대결하고 청산해야 할 많은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다. 히스기야와 요시야의 개혁처럼 우리는 먼저 우리의 신앙 의식 안에서부터 무속주의라는 우상을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유월절 준수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백성됨을 각성시켰던 것처럼 우리도 우상을 제거한 마음에 백성됨을 살아가고자 하는 새 각오를 신앙의 핵심으로 회복시켜야 한다. 이것이 구약성경의 부흥에 부응하는 회개가 될 것이다. 이 회개가 침체된 교회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2007년 12월 13일 자 기독교개혁신보)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24개(1/2페이지)
정암강좌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24 정암 30주기 기념, 다시 만나는 정암의 설교 "우리의 개혁&q 無益박병은목사 2896 2018.12.29 16:04
23 정암강좌 '죽음'과 '죽어감'에 대한 칼빈의 견해 헤르만 셀더하위스 無益박병은목사 3699 2017.10.26 17:47
22 정암강좌 마틴부써와 목회 사역 헤르만 셀러하위스 김병훈역 無益박병은목사 3665 2017.10.26 17:44
21 <25 주년 강좌> 정암이 제시한 칼빈주의 원리를 목회 현장에 無益박병은목사 7552 2014.02.18 14:30
20 <제 24 회 정암신학강좌 3>언약의 열매로서 영생에 대한 정 無益박병은목사 8058 2012.12.04 23:06
19 <제 24 회 정암신학강좌 2>언약 백성의 삶에 대한 정암의 無益박병은목사 8089 2012.12.04 23:03
18 <제 24 회 정암신학강좌 1> 언약 사상에 대한 정암의 이해 無益박병은목사 8279 2012.12.04 23:01
17 한국교회와 박윤선 박사의 복음이해, 변종길 목사(신약신학, 고신대학원 교 無益박병은목사 9159 2012.12.04 22:36
16 구원론적 관점에서 본 박윤선과 개혁신학 - 믿음과 행함의 관계에 대하여1 無益박병은목사 8779 2012.12.04 22:34
15 한국교회의 현실과 박윤선 박사의 목회적 교훈, 허순길 박사, 전고려신학대 無益박병은목사 7884 2012.12.04 22:28
14 <정암 20주기 기념강좌> 정암의 교회 개혁에 대한 회고, 박 無益박병은목사 7503 2012.12.04 15:04
13 우리의 스승 박윤선 목사님을 그리며, 김추성 교수(합동신학대학원 신약학, 無益박병은목사 9459 2012.12.04 14:58
12 <지상중계> 정암 20주년 기념대회를 말한다 無益박병은목사 7633 2012.12.04 14:53
11 <정암 20주기에 부쳐> 경건과 학문의 스승, 정암 박윤선, 無益박병은목사 7466 2012.12.04 14:44
>> "구약성경의 신앙부흥과 한국교회", 현창학 교수(구약신 無益박병은목사 9233 2012.12.04 12:43
9 "회개와 부흥 : 개혁파는 무엇이라 말하는가?" 송인규 無益박병은목사 8138 2012.12.04 12:36
8 "한국교회 부흥에 끼친 박윤선의신학과 신앙", 이호우 無益박병은목사 9011 2012.12.04 12:28
7 설교학적 관점에서 본 정암 박윤선의 설교, 정창규 교수(힙동신학대학원대학 無益박병은목사 7974 2012.12.03 23:19
6 교회사적 관점에서 본 정암 박윤선의 설교, 이상규 교수(고신대학교 역사신 無益박병은목사 9521 2012.12.03 23:12
5 목회적 관점에서 본 정암 박윤선의 설교, 정성구 목사(대신대학교 신학대학 無益박병은목사 9562 2012.12.03 2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