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와 부흥 : 개혁파는 무엇이라 말하는가?" 송인규 교수(조직신학,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無益박병은목사 | 2012.12.04 12:36 | 조회 8138

‘한국교회 부흥과 개혁신학’이란 주제로 개최된 정암신학강좌에서 발표된 송인규 교수의 ‘회개와 부흥:개혁파는 무엇이라 말하는가?’를 요약 게재한다.<편집자주>

“회개”와 “부흥”은 언제든지 그리스도인 개인과 공동체가 도외시하거나 허투루 취급할 수 없는 중대한 주제요 사안이다. 더군다나 1907년의 평양 부흥 사건을 기념하고 새로운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리는 한국 교회로서는 이런 논고가 더욱 큰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 필자는 이 두 가지 주제가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개혁파 신학의 관점에서 기술하고자 한다. 또 이러한 논의 끝에 현 한국 교회의 처지에서 개인과 공동체가 착념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언급하고자 한다.

I. “회개”란 무엇인가?
개혁파 신학은 다른 신학 전통과 같이 회개를 구원의 서정 가운데 하나인 회심(conversion)의 한 요소로 인식하고 있다. 회심은 어떤 사람이 죄와 사망에서(from) 돌이켜 하나님을 향하는(to) 근본적 방향 전환으로서, 여기에는 회개(repentance)와 믿음(faith)의 두 요소가 포함된다. 개혁파는 회개가 구원의 서정에서 차지하는 순서에 있어서 아르미니안주의자들과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아르미니우스 계통의 신학에서는 보통 구원의 서정을 (1) 보편적, 외적 부르심 -> (2) 회개와 믿음 -> (3) 칭의 -> (4) 성화 -> (5) 견인이라는 다섯 단계로 상정한다.


개혁파 신학에서는 인간의 전적 부패를 일관성 있게 강조하기 때문에 생명의 씨가 “허물과 죄로 죽어 있는”(엡 2:1) 우리의 심령에 심기기 전에는, 그 어떤 구원의 역사도 가능하지 않다고 말한다.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외적 부르심조차도 우리의 심령에 아무런 효과를 일으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먼저 하나님께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과 같은 창조의 역사를 우리의 죽은 심령에 일으키실 때 [이것을 좁은 의미에서의 중생, 곧 잉태(begetting)라고 한다]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심령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이로써 새생명이 의식적 영역에서 발현되는 것 [이것을 넓은 의미에서의 중생, 곧 출산(giving brith/new birth)이라고 한다]이다.

개혁파가 상정하는 구원의 서정은 (1) 외적 부르심 -> (2) 좁은 의미의 중생[잉태] -> (3) 내적/유효적 부르심 -> (4) 넓은 의미의 중생[출산] -> (5) 회심 (회개와 믿음) -> (6) 칭의 -> (7) 성화 -> (8) 성도의 견인으로 나타난다. 이처럼 개혁파 신학에서는 회개가 구원의 서정에 있어서 중생 이후에야 가능한 단계로 나타나 있다. 이것은 회개를 설명함에 있어 중생을 언급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는 아르미니우스적 신학 체계와 크게 대조되는 점이라 할 수 있다.

회개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를 약화시키지 말아야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한다는 미명 하에 반대 극단으로 치닫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이는 회개에 있어서 “거짓된 수동성”(false passivity)으로부터 탈피해야 할 것을 요구한다. 비록 하나님께서 회개를 이루시는 주권적 조성자이시지만 인간은 짐승이나 자동 기계 장치(automaton)와 같은 비인격적 존재가 아니므로, 회개에 있어 우리 편에서의 협력이나 노력을 배제해서도 안 된다는 말이다. 따라서 회개(회심)에 있어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것이 결코 운명론적인 자세를 정당화하고 인간이 해야 할 역할조차 소홀히 하거나 배척한다는 뜻은 아니라고 하겠다.

II. “부흥”이란 무엇인가?

(1) 일반적 의미
부흥(復興)은 “한 동안 쇠잔하던 것이 전의 번영 상태로 되일어남. 또, 일어나게 함”이라고 되어 있다. 이와 관련하여 부흥회(復興會)는 “교인(敎人)들의 믿음을 보다 깊고 굳게 하여 회개하게 하고, 전도(傳道)하여 새로운 구도자(求道者)를 인도하고 사경(査經)을 하기 위하여 모이는 기도회”라고 다소 엉뚱히 소개되어 있다.

(2) 전문적 의미

(i) 부흥의 전조.
부흥의 전조란 부흥의 본 단계, 곧 부흥의 현시가 일어나기 전에 나타나는 어떤 개인적·공동체적, 신앙적·일반적 징후나 여건을 의미한다. 부흥이 본격적으로 현시되기 전에 그리스도인들은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 종종 기도와 금식에 전념하는 수가 있었다. 이런 현상은 특히 17, 18세기 스코틀랜드의 부흥 사건에서 목격되는 바이다.


그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여러 가지 정치적·사회적·종교적 이유로 인해 성찬식을 정기적으로 거행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일 년에 두 번 정도 교구 연합의 성찬식을 가졌는데, 이러한 집례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금식과 예배 참석 등 사전 준비가 있어야 했고 이것이 부흥의 현시로 이어졌던 것이다. 또 어떤 경우에는 설교자들이 선지서를 강해하는 가운데 이스라엘의 배교 행위를 지적하고 다시금 하나님께 돌아가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이것이 바로 설교를 듣는 당사자들에게 적용되는 바라고 외쳤는데, 이런 교훈들이 차곡차곡 심령에 쌓이면서 부흥의 현시를 위한 예비 단계를 형성했다.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중요한 과거의 부흥 사건을 소개하면서, 또 그 시대 교회의 참담한 실정을 개탄하면서 오늘날에도 그러한 부흥을 기대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는데, 그러한 권면 또한 부흥의 현시를 준비하는 자극제가 되었다.

심지어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조차 부흥의 전조를 구성하는 요인이 될 수 있었다. 역시 스코틀랜드의 경우 1740년에 일어난 캠버스랭(Cambuslang) 교구 및 인근 지역의 부흥은 당시의 정치적 불안정과 연계를 시킬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농작물의 흉작이나 콜레라의 만연 등도 영원한 것을 찾도록 만드는 데 기여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점은 평양 대부흥 운동에 있어서도 어느 정도 찾아볼 수 있다. 평양 대부흥 운동이 있기 전인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한국은, 외국 문화의 위협, 전통 종교의 생명력 상실, 동학란과 청일 전쟁·러일 전쟁으로 인한 정치적 혼란, 민비 시해 사건, 콜레라의 발생 등으로 비참한 상황 가운데 놓여 있었다. 바로 이러한 열악한 환경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영적 각성의 기회로 작용한 것이었다.

(ii) 부흥의 현시.
부흥의 현시는 좁은 의미에서의 부흥으로서 부흥의 핵심 단계이다. 만일 이 단계가 형성되지 않으면, 부흥이라는 사태는 존재할 수가 없게 된다. 부흥의 현시는 두 가지 사항이 함께 만나 이루어진다. 하나는 신적 요인으로서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이다. 또 하나는 인적 요인으로서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로 말미암아 개인과 공동체가 영향을 받는 일에 관한 것이다.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의 각종 집회 가운데 특히 선포되는 말씀을 통하여 부흥의 역사를 이루셨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이들이 회심을 경험했고, 믿는 이들은 과거의 영적 나태를 벗어나 자신을 하나님께 재헌신하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부흥 집회의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열광주의(fanaticism)의 문제가 대두되기도 했다. “열광주의”는 사용하는 이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갖지만 부흥과 관련해서는 ① 극도로 고양된 감정주의, ② 직통 계시, ③ 기적적 현상에 대한 집착, ④ 신비적 체험, ⑤ 특이한 행동들 등이 문제점으로 거론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마지막 항목에 등장하는 “엽기적” 행동거지가 논란의 대상이 되곤 했다.

III. 부흥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그리스도인의 시각으로 보아 부흥에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와 인간의 노력이나 활동이라는 두 요소가 함께 개재되어 있음은 자명한 일이고, 또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든지 이 점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두 요소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하느냐에 따라서 부흥과 관련하여 개인의 의식, 미래에 대한 관점, 행동 방침의 설정 등에 커다란 차이가 생긴다.


하나님께서 부흥의 역사를 이루실 때 인간을 매개로 사용하시고 인간에게 허락하신 각종 수단과 방편을 배제하지 않으시지만, 그것들은 독자적 원인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어디까지나 은혜 의존적 도구로 사용될 뿐이다. 이 점은 다음과 같은 바울의 설명에 잘 나타나 있다.

고전 3:5-7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

상기 구절이 비록 부흥의 역사를 설명하는 내용은 아니지만, 여기에서 발견되는 원리는 얼마든지 부흥의 주제와도 연관시킬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네 가지 사항이 우리의 주목을 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황공스럽게도 통상적으로는 인간을 사용하여 자신의 역사를 이루신다. 이 경우 바울과 아볼로가 바로 그런 인물, 곧 사역자들이다.

둘째, 사역자들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은사를 활용하여 맡겨진 사명/책임/소임을 완수하고 이로써 하나님의 역사를 이룬다. 바울은 심고 아볼로는 물을 줌으로써 고린도 교회가 세움을 받았다.

셋째,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질 때 인간과 그들의 은사가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나 그 은사들이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와 무관히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넷째, 비록 고린도 교회의 성장에 있어서 바울과 아볼로가 사용되었지만 그 사역의 궁극적 원인자요 성취자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면 바울과 아볼로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자신의 역사를 이루실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하시고자 하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마 3:9). 그런 의미에서 바울과 아볼로는 “아무 것도 아니다.”

 

바로 이런 네 가지 원리는 부흥의 역사와 관련해서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한편 부흥을 열망하고 동경해야 하지만 일상적인 교회 생활 역시 귀하게 여기고 평소에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수단들을 부지런히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흥 시기에 발생하는 일들이 교회의 일상적인 경험들과 비교해 볼 때 그렇게 불가사의할 정도로 다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할 수 있겠다. 차이는 종류(kind)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도(degree)에 있는 것이다.”

IV.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1) 개혁파 부흥관과 우리의 할 바
개혁파 부흥관의 요체는 이미 주권적 역사설에 설명되어 있고, 또 바로 위에 있는 대조표를 통해 그 실체가 명료하게 드러났다. 다시 한 번 더 그 내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i) 부흥은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에 의해 일어난다.
(ii) 하나님께서는 부흥을 일으키실 때 인간의 노력을 그 수단으로 사용하신다.
(iii) 개혁파 신학 전통의 입장에서 볼 때 우리는 두 가지 극단을 피해야 한다.
① 한편으로,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것이 잘못되어 인간의 책임과 노력조차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
② 다른 한편으로, 인간에게 허락된 여러 가지 수단과 방편들을 활용한답시고 하나님의 주권을 유명무실한 것으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
(iv) 하나님의 성령은 부흥의 시기에만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평범하고 일상적인 시기에도 여전히 함께하고 계시다.
그렇다면 우리가 개인적으로 또 공동체적으로 행할 바는 다음과 같다.

 (i) 우리는 평상시에 부흥과 무관하게라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은혜의 방편들 (말씀, 성례, 기도, 회개, 믿음, 섭리적 인도 등)을 부지런히 활용해야 한다.
(ii)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늘 부흥을 열망해야 한다.

(iii) 우리는 부흥을 열망하는 가운데 세 가지 방면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쳐야 한다.
② 우리는 우리의 악한 마음 자세와 행동들을 회개해야 한다.
③ 우리는 하나님께서 부흥의 역사를 일으켜 주십사 간구해야 한다.

이상에서 알 수 있는 것은, 회개가 평상시에나 부흥과 연관해서나 매우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2) 부흥의 단계와 회개
이제 회개가 부흥과 관련해서도 매우 중요한 신앙 활동임을 살펴 보자. 필자는 부흥의 전체 과정을 설명하면서 부흥의 사태[넓은 의미의 부흥]라 칭했고, 그것을 (i) 부흥의 전조 -> (ii) 부흥의 현시[좁은 의미의 부흥] -> (iii) 부흥의 여파라는 세 단계로 나눈 바 있다. 그런데 회개는 이 세 단계 모두와 연관이 됨을 알 수 있다.

첫째, 회개는 부흥의 전조와 깊이 연관이 된다. 부흥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을 돌아보며 죄된 모습을 자각하고 통회의 심령을 가지며 자신들의 죄를 자백하는 일은 결코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었다.
둘째, 회개는 부흥의 현시에 있어서 중심 요소로 등장한다.
셋째, 회개는 부흥의 여파와 관련해서도 빼 놓을 수 없는 현상이다. 부흥의 열매로서 맨 앞에 제시된 세 가지 사항은 분명 회개와 연관된 것들인데, 이러한 증거는 회개가 분명 부흥의 여파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역시 평양 대부흥 운동에 있어서도 부흥의 여파에서 회개를 빼놓을 수 없다.

(3) 회개의 전모
회개는 왜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가? 세 가지 이유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성경은 우리가 반복해서 죄 사함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께로서 사죄를 받는 것이 처음 그리스도인이 될 때 이루어지는 일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그 후에도 계속 죄 사함을 받아야 한다. 이 점은 주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의 내용 가운데 여실히 나타나 있다. 죄를 자백하고 사죄함을 받는 과정에 필연적으로 연관되는 신앙 행위가 바로 회개이다. 따라서 회개는 우리의 신앙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교제가 깊어지려면 우리 또한 거룩함을 유지해야 한다. 하나님과 생생하고 살 깊은 교제를 나누는 것(요 15:4-5; 고전 1:9)은 그리스도인 모두의 열망이요 꿈이다. 그러나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죄 있는 인간을 용납할 수 없는 고로 죄의 정결함은 필수적인 선결 사항이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지속적으로 교제하기 위해서는 먼저 모든 죄로부터 정결함을 받아야 하고, 이것은 오직 지속적 회개에 의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회개는 우리의 신앙 생활에서 항시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셋째, 우리는 특히 내주성 죄악(indwelling sin)의 문제 때문에 회개를 지속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내주성 죄악”이란 우리의 인격 중심부에 뿌리를 박은 죄악으로서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은밀하고 내면적인 죄악을 일컬음이다.

(4) 회개의 영역
회개의 첫 출발은 죄에 대한 자각[지성적 요소]이므로, 우리가 참된 회개를 실행하려면 먼저 나/우리의 죄된 모습이 어떤 양상으로 나타나 있는지 숙지할 필요가 있다. 물론 죄에 대한 자각이 통회의 심령[정서적 요소]과 행동의 변화[의지적 요소]로까지 이어져야만 참된 회개라고 할 수 있지만, 어쨌든 죄의 인식이 결여될 경우 회개가 출발조차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죄에 대한 깨달음은 중요한 것이다.


필자는 편의상 죄의 종류를 (i) 개인적인 것, (ii) 지도자와 연관된 것, (iii) 신앙 공동체적인 것, (iv) 사회 생활과 연관된 것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한다. 결국 회개의 영역은 죄의 종류와 맞물린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2007년 12월 5일 자 기독교개혁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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