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적 관점에서 본 정암 박윤선의 설교, 이상규 교수(고신대학교 역사신학)

無益박병은목사 | 2012.12.03 23:12 | 조회 9818

서론

정암 박윤선(朴允善, 1905-1988)은 한국교회가 낳은 가장 우수한 개혁주의 신학자라는 점에 의의가 없을 것이다. 그는 신학자이자 설교가였고 성경주석가였다. 그는 성경신학자이자 조직신학자였고, 또 변증신학자였다. 그는 신학의 전 분야를 교수하고 그 가르침을 실천하는 선한 모범을 보여 왔다.

 

박윤선 박사는 한국교회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지만 특히 한국교회 강단과 설교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의 성경해석은 그의 주석의 근간을 이루었고, 그의 주석은 설교자들의 안내서였다. 그 주석 속에는 1천편이 넘는 설교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의 주석은 한국교회 강단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런 사상적 혹은 정신적 영향을 정량적 수치로 확인하거나 제시하지는 못하지만 어떤 점에서 그의 영향력은 박형룡의 영향보다 앞섰을 것이다. 박형룡 박사의 교의신학은 그 난해성 때문에 독자들의 사상이나 삶에 착근하기 어려워 ‘상징성’은 지니고 있었으나 실제 한국인 목회자들의 신학과 목회, 설교에 착근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박윤선의 경우 그의 주석은 광범위하게 읽혀졌고, 목회적 현실에 쉽게 용해되고 착근되어 ‘선언적’ 의미 그 이상의 현실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박윤선은 한국교회와 목회자들, 그리고 그
들의 설교에 실제적인 영향을 끼쳤다.

1. 박윤선의 삶과 신학적 여정

1) 학문의 길
박윤선은 화란 개혁주의 신학자들의 글을 섭렵하고 한국교회에 소개한 최초의 학자라고 할 수 있다. 그가 화란학자들의 글을 접한 것은 화란 유학 시절이 아니라 1935년 웨스트민스터신학교 유학시절이었다. 그는 이때 화란의 개혁주의 신학에 심취하여 독학으로 화란어를 해독할 수 있게 되었고, 바빙크의「교회교의학」(Gereformeerde Dogmatiek)을 접했는데, 그는 이 책을 가장 애독했다고 한다. 박윤선이 보수주의 신학자 박형룡(朴亨龍, 1897-1979)과 다른 한 가지는 박형룡은 미국의 구 프린스톤신학(Old Princeton Theology)을 한국장로교회의 전통으로 확립하고 이를 보수하려는 입장이었으나, 박윤선은 화란에서 발전된 개혁주의 신학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는 점이다.


즉 그는 구 프린스톤 신학에서 웨스트민스터신학교로 이어지는 미국 장로교 전통의 개혁주의 신학과, 특히 19세기 화란에서 발전된 개혁주의 신학, 이 두 흐름을 적절히 종합하였고, 이를 한국교회 현장에 이식하고 개화케 하였다는 점이다. 박형룡은 정통주의, 보수주의 혹은 근본주의라는 용어를 선호이고 이를 혼용하였으나, 박윤선은 개혁주의 혹은 개혁파라는 용어를 선호하고 이를 빈번히 사용하였다.

2) 구 프리스톤신학과 화란 개혁주의신학의 수용
박윤선은 일생동안 개혁주의 신학의 확립을 위해 일관된 생애를 살았는데, 한국교회를 위한 그의 중요한 봉사는 성경주석 집필이었다. 그의 주석 집필은 1938년부터 시작되었는데, 이때로부터 40년 간의 노고 끝에 1979년 신구약 66권의 주석을 완간했다. 그의 첫 주석은 1949년 3월에 출판된「요한계시록」주석이었고, 마지막 주석은 1979년에 출판된「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주석」이었다. 그의 주석은 분량으로 보면 구약은 총 7,347쪽, 신약은 총 4,255쪽에 달해 신구약 주석은 총 11,602족에 달하며 매년 약 240쪽의 주석을 집필한 샘이다.


주석 외에도「영생의 원천」(1970),「응답되는 기도」(1974),「주님을 따르자」(1975) 등의 설교집과,「성경신학」(1971),「헌법주석」(1983), 유고집「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1989) 등을 남겼다. 단행본 외에도 고신대학이 발간했던 ▩파숫군▩에 218편, 총신대학의 ▩신학지남▩에 40편, 합동신학교의 ▩신학정론▩에 12편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는 개혁주의 신학을 구체화하였을 뿐 만 아니라 개혁주의 신학 위에서 신정통주의나 자유주의 신학을 비판하고, 성경의 절대적 권위, 하나님의 주권,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한 진정한 개혁신학자였다. 그는 한편으로는 개혁주의가 아닌 신학을 비판했고, 다른 한 편으로는 개혁주의 신학을 천착하려고 힘썼다.

2. 한국교회 설교의 역사적 검토
박윤선의 설교가 어떠했던가를 살펴보기 전에 한국교회 설교가 어떠했던 가를 검토해 보고자 한다. 이런 노력은 박윤선의 설교와 그 설교가 한국교회에 어떻게 수용되고 어떤 영향을 주었던 가를 고찰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1) 초기 선교사들의 설교
한국에서 첫 개신교회가 설립된 때는 일본의 1872년보다 11년 늦은 1883년이었다. 이때 설립된 솔내(松川)교회에 이어 1886년 인천 내리교회, 1887년 새문안교회가 설립되면서 점차 서울, 부산, 평양 등 주요 도시에 교회가 설립되기 시작하였다. 감리교회의 첫 목사가 배출된 때는 1901년이었지만, 장로교회의 경우 첫 목사가 배출된 때는 1907년이었다. 이 때 한국장로교회는 전국적으로 785개에 달했고, 세례교인은 1만8천여 명, 전체교인은 7만2천명에 달했다. 또 목사선교사는 49명이었다.

1912년에는 장로교총회가 조직되었는데, 이 당시 교회는 약 2천여 개였고 신자 수는 12만7천명에 달했다. 그러나 한국인 (장로교)목사 수는 69명에 지나지 않았고 목사선교사는 77명이었다. 한사람의 목사가 한 교회를 담임한다고 가정하면, 목사가 시무 하는 교회는 전체교회의 오직 7%에 불과했다. 따라서 거의 대부분의 교회가 선교사들의 관할 하에 있었고 선교사는 여러 교회를 관장하고 있었다. 결국 설교자들은 주로 선교사들이었다. 그러므로 선교사들의 설교관이 어떠했는가 하는 점은 그 이후의 한국교회의 설교
형식과 내용을 결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경신학적 이해가 크게 결핍된 당시의 이 주제 중심의 제목설교는 상당한 호소력을 지니고 있었다. 제목설교는 예화를 필요로 했으므로 정성구에 의하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한국장로교회의 최초의 신학 잡지인 ▩신학지남▩에서는 설교에 필요한 예화들이 “강도에 인용할 만한 비유”라는 제목으로 3호부터 게재되기 시작하였다고 지적한다. 다시 말하면 한국교회 초기부터 다양한 예화가 설교에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고 설교 형식은 제목중심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설교의 내용은 복음과 영생, 속죄, 구원, 하나님의 사랑 등이 포괄적 주제였는데, 그것은 당시의 시급한 요청이었기 때문이다. 선교사들의 설교는 천당과 지옥, 예수와 사탄, 선과 악 등을 대비하여 설교하는 단순한 것이었고, 그 내용은 복음적이었다. 이런 초기 교회적 설교경향은 1970년대까지 주된 설교양식이 되었다.

2) 초기(1920년대까지) 한국인 목회자들의 설교
앞에서 언급했듯이 초기 한국교회는 선교사들의 절대적 영향 하에 있었으므로 설교에 있어서도 선교사들의 설교가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따라서 한국인 사역자들의 설교란 선교사들의 그것을 모방하는 경향이 농후했다. 이 당시 활동한 대표적인 설교자로는 1907년 목사안수를 받은 7인의 목사인 서경조(1852-1938), 한석진(1868-1939), 양전백(1870-1933), 방기창(1851-1911), 길선주(1869-1935), 이기풍(1865-1942), 송린서(?-1967)와 김익두(1874-1950), 감리교의 전덕기(1875-1914), 최병헌(1858-1927), 김종우(1883-1940) 등이었다. 비록 목사안수는 받지 않았으나 근대 한국인으로서 최초의 신학도였던 윤치호(1865-1945)도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이들의 설교를 헤아려 볼 수 있는 자료는 1920년에 출판된 ▩백목강연▩(白牧講演)인데, 이 설교집은 한국 최초의 설교집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설교집에는 주로 1910년에서 1920년 어간에 교회에서나 기타 모임에서 선포된 설교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설교집을 중심으로 고찰해 볼 때 이 시기 설교의 내용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① 영생과 구원, 하나님의 사랑 등 구원에의 초청이 주된 선포였다는 점
② 새로운 윤리의 표준으로서 기독교 신앙을 제시하고, 해야 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강조하는 계율적인 요소가 짙었다는 점
③ 도덕적 요소, 곧 권선징악(勸善懲惡) 혹은 상선벌악(賞善罰惡)적 강조에 치우쳤다는 점
④ 현세적 삶에서의 신앙보다는 내세적인 경향이 짙었다는 점
⑤ 충군애국(忠君愛國)적 설교가 많았다는 점이다.

3) 1930년대 이후의 설교
1930년대를 거쳐가면서 한국교회에는 신학적 변화가 일고 있었다. 그 변화를 3가지로 말할 수 있는데, 첫째는 자유주의 신학의 대두였다. 자유주의 신학이 보다 분명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1930년대이지만 이미 1920년대 후반부터 이 신학은 태동되고 있었다. 소위 자유주의 신학에 근거한 설교가 함경도 지방을 중심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두 번째로는 신비주의 혹은 신령주의(神靈主義)의 대두였다. 이 운동은 주로 원산에서 일어났는데, 비신학적 주관적 성경해석, 예언과 방언, 신림(神臨)을 강조하였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황국주, 백남주, 이용도 등이었다.

 

셋째는 무교회주의의 대두이다. 무교회가 일본의 교회에 큰 영향을 주었듯이 한국교회에도 적지 않게 영향을 주었다. 무교회주의는 경남 일우(특히 김해지방)에서는 신진리파(新眞理派)란 이름으로 나타났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우찌무라 간조의 책이 없는 목회자들이 거의 없었을 정도로 그의 책은 한국인 목회자들 사이에 폭넓게 읽혀졌다.

 

이상과 같은 한국교회의 신학적 변화와 함께 1930년대를 거쳐가면서 한국교회의 설교가 그 내용 면에서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그 이전 시대의 설교는 복음적인 성격이 강했고 그 내용이 단순했으나, 이제는 주관주의적인 신비적, 탈교의적 설교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4) 해방 후 1950년대의 설교
1945년 해방 이후 한국교회에서는 교회재건, 회개, 자숙이 강조되었다. 해방과 함께 교회재건운동이 전개되었는데, 이것은 노회나 총회 등 일제 하에서 해산된 기구적 재건이 아니라 영적 쇄신이었다. 영적 쇄신이란 바로 회개와 자숙운동이었다. 따라서 이 시기 설교는 교회재건과 회개, 자숙을 강조하는 경향이 짙었다.

 

특히 이런 경향은 1952년 총노회의 조직으로 출범한 고신교회는 더욱 그러했다. 고신교단은 일제하에서의 신사참배 죄에 대하여 철저한 회개를 강조하였는데 그것은 해방된 조국에서의 새로운 교회건설의 기초라고 보았다. 특히 한상동을 비롯한 출옥성도들의 설교 속에는 하나님의 역사 심판에 대한 의식이 설교와 생활, 그 기저에 확연히 나타나 있다. 따라서 그들의 설교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소망, 신전의식, 거룩한 생활을 강조하였다. 한상동목사의 설교집 제목, “신앙세계와 천국”, “고난과 승리”는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신뢰와 소망, 그리고 역사통치와 심판에 대한 그의 생애적 확신을 대변해 주는 것이었다.


1950년대는 박윤선의 주석이 출판되기 시작한 시기로서 박윤선의 주석은 한국교회 강단에 영향을 주기 시작한다. 동시에 주석에 포함된 설교의 구성과 전개방식, 3대지 중심의 설교 구성은 한국교회 설교자들에게 뚜렷이 나타나게 된다. 이런 점은 박윤선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을 보여주는 것이 이 시기에 대두된 본문설교였다. 비록 제목 설교라고 할지라도, 본문의 의미를 천착하고자 노력하였고, 예화나 사적 경험보다는 성경을 인용하고 성경의 교훈을 제시하려고 힘썼다. 이것은 박윤선의 영향임이 분명하다.

3. 한국교회의 설교와 박윤선
한국교회에는 설교 구성에 있어서 3대지(三大旨) 설교가 지배적이었다. 이것은 설교의 내용을 3가지 항목으로 요목화(要目化) 하는 방식이다. 이것은 제목설교이든 본문설교이든 동일하다.


이러한 형식의 설교는 이미 초대교회 때부터 있었던 관행이므로 한국교회의 특징으로 볼 수는 없다. 또 이런 설교형식이 설교의 내용을 간명하게 정리하여 준다는 점에서 한국교회에 상당한 유익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설교가 거의 정석으로 이해될 만큼 굳어져 있다는 점에서 한국교회 설교의 특색이라 할 수 있다.


필자는 이런 설교 관행은 박윤선 목사의 영향이 크다고 믿고 있다. 박윤선은 성경전권을 주석한 첫 한국인으로서 그의 주석은 해방 이후 한국교회에 광범위한 영향을 끼쳤는데, 그의 주석에는 많은 설교가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그의 설교는 거의 전부가 설교하고자 하는 바를 요목화하는 대지(大旨) 중심의 설교 형태를 뛰고 있고 이러한 설교형식이 독자들의 설교 구성에 상당한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이런 설교방식의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설교가 성경 본문의 의미를 얼마나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제 종합적으로 한국교회 설교에서의 문제와 과제, 그리고 박윤선의 설교가 끼친 영향에 대하여 정리해 보고자 한다.

1) ‘모범론적’ 설교에서 구속사적 설교로
한국교회에 풍미하는 가장 대표적인 설교방식은 ‘모범론적’ 방식인데, 이것은 성경의 인물, 사건, 제도를 통해 어떤 ‘모범’(example)을 찾으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설교는 특히 인물 설교에 집중되는데, 성경의 인물을 우리가 본받아야 할 이상적인 모범, 혹은 피해야 할 경고적인 모범으로 제시한다. 즉 성경의 인물이나 사건을 하나의 모델로 사용하여 영적, 도덕적 교훈을 취하려는 설교라고 정의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이런 설교는 성경을 통해 우리가 본받아야 할 어떤 모범을 발견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여기는 설교인데, 이런 방식의 설교를 홀웨다(B. Holwerda)는 ‘모범론적’ 혹은 ‘모범주의적’ 설교라고 명명했다. 홀웨다는 이런 설교는 결국, 성경의 역사를 우리에게 모범이 되는 다양한 독립적인 역사들로 해체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지적한다.


이런 설교는 구약의 역사적 본문에서 역사적 간격을 고려하지 않고 평면적으로 비교하는 잘못을 범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구약시대의 사람들과 오늘날의 사람들 사이의 역사적 단절을 간과함으로서 과거와 현재 사이에 역사적 등식부호(historical equation mark)를 그어 준다. 이런 설교가 대체적으로 구약 사건에서 도덕적 귀감을 찾으려고 하기 때문에 도덕적 설교로 흐르기 싶고, 결과적으로 성경의 구속사적 메세지를 상실하게 하는 위험이 있다.


이런 형식의 설교는 현제까지도 많은 설교자들이 선호하고 있지만 박윤선은 개혁주의를 공부한 1937년 이래로 이런 설교의 한계성을 지적하고 구속사적 설교를 강조하였다. 사실 박윤선의 설교에도 이런 측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설교가 이상적일 수 없다는 점을 보여 주었다.

2) 풍유화와 신령화의 위험성 지적
한국교회 강단에서 흔히 발견되는 또 한 가지 문제점은 성경 본문을 풍유화(諷諭化, Allegorizing) 하거나 신령화(神靈化, piritualizing)하는 경우이다. 이것은 성경의 세계와 현대 사회 사이에 존재하는 역사적이고도 문화적인 차이를 간과하는 설교 방식으로서, 이 양자는 본문이 주어진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박윤선은 이런 설교 형태에 대해 가장 부정적이었고 그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것은 개혁주의 적인 성경해석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설교가 유행하는 것은 한국적 상황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풍유적(諷諭的) 혹은 우의적(寓意的) 해석이라고 일컬어지는 해석법은 성경 문자 배후에 어떤 신령한 뜻(眞意)이 숨어 있다고 보고 그 뜻을 찾아내는 것을 설교의 목적으로 이해한다. 즉 풍유적 해석이란 ‘진리 이면의 진리’(truth behind the truth)를 찾는 해석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방법은 3가지 점에서 문제를 지니고 있다.

첫째, 이런 해석은 성경의 ‘역사적’ 문맥을 무시한다. 즉 본문의 본래 주어진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역사적 단절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둘째, 성경을 우의적 내용으로 구성되었다고 보아 우의적 해석만이 성경의 의문을 해결할 수 있다는 잘못된 전제를 가지고 있다. 셋째, 이 방법은 성경을 주관적으로 해석함으로서 본문의 진의를 곡해할 위험이 크다는 점이다.

3) 구약 본문에 대한 관심 환기
한국교회에서 구약본문에 대한 설교는 매우 소홀하다. 1982년 한국신학대학의 장일선 교수의 조사에 의하면 당시의 대표적인 설교자 20여명이 출판한 설교집에 나타난 설교본문을 조사해 본 결과 구약이 설교본문으로 채택된 경우는 전체 설교의 25% 미만으로서 전체 설교의 4분지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구약 중에서도 주로 창세기, 시편, 이사야, 출애굽기에 크게 편중되어 있다고 지적하였다. 다시 말하면 빈도에 있어서 구약설교는 전체 설교의 4분지 1에 해당하고 그 중에서도 4권의 책이 주로 설교되고 있으므로 다른 35권의 구약 본문은 비록 의도적이지는 않다 할지라도 거의 무시되거나 경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한국교회 설교자들이 구약본문 보다는 신약본문을 선호하고 있고, 이것은 구약의 역사적 배경이나 신학적 의미에 대해 무지하거나 무관심하다는 점을 반영하고 있다. 또 역사적 본문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에 대한 이해의 결핍을 보여준다. 그 결과 구약은 주로 기복신앙을 위한 예증이나 모범으로 이해되었고, 구속사적 관점보다는 도덕적, 윤리적 설교에 치중하였다.

4) 성경 원전에 대한 이해력 재고
한국교회 설교에서 박윤선이 남긴 가장 중요한 기여는 성경원전, 혹은 성경원어에 대한 이해와 강조였다. 그는 번역 성경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으나 현실적으로 한국교회 강단에서 이런 측면의 개선은 미흡하다. 그것은 설교자들의 성경언어에 대한 실력의 한계 때문일 것이다.


어떤 점에서 한국교회를 갱신하는 최선이 길은 강단의 개혁이며, 강단을 쇄신하는 최선의 길은 성경원전을 해독할 수 있는 언어적, 신학적 능력이다. 설교자에게와 설교를 듣는 청중 양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해명하는 일이다. 박윤선의 설교에서 본문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우선적으로 제시하고자 한 것은 번역 성경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의지였다. 정암이 강조한 바처럼 성경언어에 박식해야 성경적인 설교(biblical preaching)를 가능하게 한다.

결론
박윤선 박사는 자신의 가르침과 성경주석, 그리고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의 바른 이해와 바른 교회, 바른 생활을 강조했고, 이런 그의 신학적, 정신적 도덕적 유산은 오늘 우리에게 귀한 선물로 주어져 있다. 그의 개혁주의 신학적 명료성, 칼빈주의적인 하나님의 주권사상, 성경원전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해명, 복음의 선포와 변증은 설교가 무엇이며 어떠해야하는가를 가르쳐 주었다.

여전히 한국교회 강단에서 쇄신되어야 할 점이 적지 않다. 비록 실천은 미흡하지만 박윤선은 바른 설교의 모범을 가르쳐 주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한국교회의 갱신은 한국교회 설교자의 갱신에 있고, 설교자의 갱신은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고 강해하고 주석할 수 있는 설교자의 능력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박윤선 박사의 일생의 삶, 곧 개혁주의 신학연구와 교수, 성경 연구와 주석 집필, 그리고 목회와 설교는 한국교회를 세워가는 교회건설의 일생이었다. 그는 설교자들이 가져야 할 보다 우선하는 과제는 메시지를 어떻게 잘 전달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설교학적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그 본문을 바르게 설교할 것 인가하는 해석학적인 관심이었다. 정암 박윤선은 그것이 좋은 설교인가? 혹은 그 설교가 회중들에게 감동을 주며, 삶의 변화에 도전을 주었는가 하는 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정직한 설교인가’ 하는 질문이었다. (2006년 11월 25일 자 기독교개혁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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