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단 에드워즈의 대 각성 운동 김명혁 목사

無益박병은목사 | 2020.11.27 22:48 | 조회 594

 

요나단 에드워즈의 대 각성운동” 

 

요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는 미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설교자요 신학자요 부흥사였습니다. 요나단 에드워즈는 영적 침체기에 접어든 18세기 초기 미국 교회에 영적 활력소를 제공한 대 각성운동의 주역이었고 하나님의 주권과 구원의 체험을 겸하여 강조하는 청교도적 칼빈주의 신학의 전통을 수립했습니다. 요나단 에드워즈는 요한 웨슬레가 출생하던 해인 1703년 뉴잉글랜드의 코네티컷 주 윈조 팜즈(Windsor Farms)에서 목사의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 디모데 에드워즈는 학문과 신앙을 겸비한 회중교회 목사였고 그의 어머니는 회중교회 목사 솔로몬 스토다드(Solomon Stoddard)의 딸로 신앙과 경건이 뛰어난 여인이었습니다. 에드워즈는 어려서부터 신앙의 가문에서 뛰어난 신앙교육을 받았습니다. 에드워즈는 6세 때부터 신앙의 아버지에게서 라틴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13세 때에는 라틴어와 희랍어와 히브리어를 구사할 수 있었습니다. 12세 때 예일대학에 들어갔고 17세 때인 1720년 예일대학을 최 우등으로 졸업했습니다.

 

1. 하나님의 임재 체험

 

첫째로, 요나단 에드워즈가 예일대학을 졸업한 다음 해인 1721년에는 성경 (딤전1:17)을 읽는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깊은 종교적 체험을 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가 18살 때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한 신비한 체험이 그의 생애를 완전히 뒤집어 놓았으며 그의 생애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에드워즈는 하나님과 자신의 영혼이 연합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고 하나님의 주권을 절대적으로 높이는 칼빈주의 교리를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18세 때 경험한 하나님 임재의 체험을 에드워즈는 후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이 기록은 에드워즈가 40여 세 되었을 때 20여 년 전의 체험을 회상하며 기록한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서술할 때 절대 주권(absolute sovereignty)이란 말로 서술하고 싶다. 처음에는 그것을 확신하지 못했다. 내가 처음으로 하나님을 내적으로 깊이 즐거워하게 되었던 경험은 딤전 1:17을 읽었을 때 가진 경험이었다.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어지이다 아멘그때부터 나는 그리스도에 대해 새로운 이해를 가지기 시작했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속과 영광스런 구원의 사역에 대해 새로운 이해를 가지기 시작했다. 이것들에 대한 내적인 달콤한 느낌이 때로 나의 가슴에 와 닿곤 했다. 그래서 내 영혼은 즐거움에 넘쳐 그것들을 명상하곤 했다. 그리고 나는 많은 시간을 드려 그리스도를 읽고 그리스도를 명상했다. 그리스도의 인격의 아름다움과 우월함 그리고 그 안에 넘치는 은혜로 말미암은 구원의 아름다움을 명상하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나는 그와 같은 구원의 주제들을 다룬 글들을 읽는 것보다 더 큰 즐거움을 어디에서도 발견하지 못했다. 아가서 2:1같은 나는 샤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구나라는 말씀이 나의 가슴에 가득 차게 되었다.

 

내가 이와 같은 경험을 한 후 나는 내 마음에 일어나는 생각들을 나의 아버지에게 말씀드렸다. 나는 아버지와의 대화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대화 후 홀로 걸으며 명상에 잠겼다. 나는 걸으면서 하늘과 구름을 쳐다보았다. 그때 내 마음속으로 하나님의 영광스런 엄위와 은혜에 대한 달콤한 느낌이 쏟아져 들어왔는데 그것을 말로는 표현하기 힘들다. 나는 엄위하심과 은혜로우심을 동시에 보는 듯 했다. 달콤하고 부드럽고 거룩한 엄위하심과 엄위하신 온유함, 두려운 달콤함, 그리고 높고 위대하고 거룩한 부드러움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이와 같은 경험 후 하나님에 관한 나의 인식은 점점 증가되고 더욱 더 생생해졌다. 하나님 인식에 대한 내적 달콤함이 점점 더해갔다. 사물의 모습이 모두 바뀌어졌다. 모든 사물 안에 하나님의 영광의 고요함과 달콤함이 나타나 보이는 듯 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지혜와 순결과 사랑이 만물 안에 나타나 보이는 듯했다. 나는 가끔 앉아서 달을 쳐다보곤 했고 낮에는 구름과 하늘을 쳐다보며 많은 시간을 보내곤 했다. 거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달콤한 영광을 바라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창조주와 구속주를 명상하곤 했다.”

 

에드워즈가 18세 때 경험한 종교적 체험은 설교자와 신학자로서의 특성을 규정했다고 하겠습니다. 즉 하나님 만남과 하나님 의식에 사로잡힌 설교자로, 하나님의 주권을 높이는 칼빈주의 신학자로 평생을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과 영혼을 움직이고 울리는 은혜로운 설교자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에드워즈가 24세 되던 해인 1727년 그는 뉴헤이븐의 한 목사의 딸인 사라 피어폰트와 결혼하여 행복한 결혼생활을 시작했는데 38녀와 75명의 손자녀들을 두게 되었습니다. 1727년 에드워즈는 그의 외조부 솔로몬 스토다드가 55년 동안 목회하던 매사츄셋츠 주 노드햄턴의 회중교회에서 부목사가 되어 2년간 봉사하다가 1729년 외조부가 세상을 떠나자 그 교회의 담임목사가 되어 평생을 목회와 설교와 저술에 종사했습니다.

 

에드워즈의 목회활동은 뛰어난 것이었습니다. 열정적인 학구파로 그는 오랜 시간을 설교준비로 보냈습니다. 그는 스스로 대화에 부적격하다고 느꼈으며 심방도 많이 하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그의 강점은 설교였습니다. 그는 조만간 뉴잉글랜드 전역에서 설교자로서의 명성을 떨치게 되었습니다.

 

2. 첫 번째 각성 운동

 

둘째로, 요나단 에드워즈가 1734년 첫 번째 각성운동을 일으킨 이야기를 합니다. 에드워즈가 노드햄턴에서 목회활동을 시작하던 1729년 당시는 100여 년 전에 불붙었던 청교도적 신앙운동이 극도로 침체된 때였습니다. 26세의 청년 목사 에드워즈는 마을 청년들 가운데 널리 유행하던 방종함을 목격하고 마음에 큰 고민을 느꼈습니다. 그는 그 당시 마을의 형편을 다음과 같이 기술했습니다. “외조부의 사망 후 경건은 극도로 침체했다. 마을의 젊은이들 가운데 수년간 방탕이 크게 유행했다. 많은 젊은이들이 밤거리를 헤매며 걸어 다녔고 술집을 드나들며 음탕한 행위를 자행했다. 그들은 자주자주 남녀들이 함께 모여 주연과 환락에 빠지곤 했다. 그리고 그것을 유쾌한 모임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그곳에서 밤을 새우며 지냈으며 가정의 질서를 생각지도 않았다. 마을의 가정 질서는 바로 세워지지 못했다.”

 

에드워즈는 가정마다 젊은이들을 찾아 다니며 그들을 권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차츰 에드워즈의 권면에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으며 젊은이들 가운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1733년에는 에드워즈가 지적한 대로 공식 예배에 참석하는 젊은이들의 수가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 한편 이때 뉴잉글랜드에는 알미니안주의가 교회에 침투하여 인간의 능력을 고조하기 시작했다.

 

에드워즈는 알미니안주의야말로 기독교 신앙의 기초를 파괴하는 이단이라고 확신하며 알미니안주의의 위협을 대항하기 위해 1734믿음으로만 말미암는 칭의”(Justification by Faith alone)란 제목으로 다섯 번의 설교를 했는데 이 설교를 통해 놀라운 각성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에드워즈가 31세 되던 해였습니다. 1734년에 일어난 첫 번째 각성운동이야말로 1740년부터 일어나기 시작한 두 번째 각성운동인 1차 대각성운동”(The First Great Awakening)의 도화선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죄인을 의롭다고 칭하실 때 죄인 속에 있는 어떤 선함이나 경건함도 칭의의 조건이 될 수 없다고 에드워즈는 설교했습니다. 그것은 마치 그리스도가 소경을 보게 했을 때 소경 안에 있는 시력이 그리스도의 자비의 행위의 조건이나 근거가 될 수 없음과 같다고 지적했습니다. 죄책과 형벌로부터 자유함을 받고 의와 영생을 소유하게 되는 하나님의 칭의는 죄인 속에 있는 어떤 선함이나 의로움이 근거가 될 수 없고 오직 자기 피를 값으로 지불하고 죄인들을 대신하여 의를 사신 그리스도의 대속의 행위를 받아들이는 믿음만이 근거와 수단과 도구가 된다고 설교했습니다.

 

에드워즈의 설교가 유창한 웅변적 설교는 아니었습니다. 그의 다른 설교도 그렇듯이 믿음으로만 말미암는 칭의는 롬 4:5 한 절을 가지고 한마디 한마디를 조직신학적으로 그리고 성경신학적으로 깊이 그 의미를 파헤치는 교리적 및 강해적 설교였습니다. 다른 성구들을 많이 연결시켜 중심사상을 깊이 설명해 나아가는 설교였는데 일상 생활과 관련된 예화는 거의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는 논리 정연한 설교를 거의 읽어 내려가는 식으로 설교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설교 한마디 한마디는 청중들의 심장을 꿰뚫는 힘이 있었습니다. 에드워즈 1734년의 이신 득의의 설교는 때에 맞게 선포된 말씀이 되었고 마을 사람들의 영혼 위에 하늘의 축복이 놀랍게 쏟아지게 한 설교였다.”고 지적했습니다. 마을에서 이름난 젊은 여자가 에드워즈를 찾아와 상담하는 가운데 가슴이 깨어져 변화를 받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와 같은 변화가 젊은이들 가운데 계속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와 같은 부흥운동은 1735년 여름까지 계속 강력하게 일어났습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사역으로 참된 성도들의 수가 증가되었고 마을 안에 영광스러운 변화가 일어났다. 그래서 1735년 봄과 여름에는 마을이 하나님의 임재로 충만한 것 같이 보였다. 전에 볼 수 없었던 사랑으로 충만했고 기쁨으로 충만했으며 동시에 통회로 충만했다. 매 가정마다 하나님이 임재하신 뚜렷한 표적이 나타났다. 가정마다 그들 위에 임한 구원으로 기쁨을 누리는 때였다. 부모들은 새로 태어난 자녀들로 인해 즐거워했고 남편들은 아내들로 인해, 아내들은 남편들로 인해 즐거워했다. 하나님의 행차가 그의 성소에도 나타났으니 하나님의 날은 기쁨의 날이 되었고 그의 성소는 사랑의 처소가 되었다.”

 

1734년부터 일어나기 시작한 에드워즈의 각성운동은 코네티컷 주 전역에 널리 확산되었고, 1734년과 35년에 일어난 각성운동을 기술한 에드워즈의 저술인 하나님의 놀라운 사역에 대한 진실한 진술”(Faithful Narrative of the Surprising Work of God in the Conversion of Many Hundred Souls in Northampton)1737년 런던에서 출판되자 요한 웨슬레와 조지 휫필드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에드워즈는 그의 진실한 진술에서 지적한 대로 노드햄턴에서 일어난 각성운동이 인간의 노력이나 인간적 기교에 의해서 일어난 운동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 은혜와 성령의 사역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임을 강조했습니다. 그의 진실한 진술가운데 하나님의 사역,” “하나님의 영을 쏟아 부으심,” “하나님의 축복의 소나기란 표현을 거듭하며 각성운동이 하나님에 의해 일어난 것임을 강조했습니다.

 

에드워즈에게 있어서 1734년의 각성운동은 기대 밖의 놀라운하나님의 사역이었습니다. 청교도적 칼빈주의 신학적 전통에 선 에드워즈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법에 불순종하며 방종한 생활을 하는 뉴잉글랜드인들은 저주를 받아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그들 위에 하나님의 용서와 구원의 역사가 임한 것은 참으로 놀라운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이었습니다.

 

1737년에 노드햄턴에서 부흥운동이 갑자기 중단되었는데 에드워즈는 그것 역시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의 증거라고 해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그의 영을 부으시기도 하고 또는 거두시기도 하므로 위대한 각성운동이 전적으로 그리고 직접적으로 그분 자신의 사역이며, 인간은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인간의 큰 일들이 그의 도움이 없이는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시는 것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부흥 각성운동에 대한 에드워즈의 이와 같은 이해는 2차 대각성운동의 주역의 한 사람인 찰스 피니(Charles G. Finney)(1792-1875)의 이해와 대조를 이룬다고 하겠습니다. 에드워즈가 부흥운동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이라고 확신한데 비해, 찰스 피니는 부흥운동이 인간의 노력에 의해 기계적으로 준비될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3. 세 번째 각성 운동

 

셋째로, 요나단 에드워즈가 1740년에 두 번째 각성운동인 1차 대각성운동”(The First Great Awakening)을 일으킨 이야기를 합니다. 에드워즈는 1740-41년에 두 번째의 각성운동 즉 제 1차 대 각성운동을 경험했습니다. 에드워즈가 1741년 매사츄셋츠 주의 엔필드(Enfield)에서 그의 가장 유명한 설교인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죄인들”(Sinners in the hands of an angry God) 이란 제목의 설교를 했을 때 영적으로 무감각한 상태에 있던 엔필드 마을의 형식적 신자들은 그들의 가슴에 폭탄이 터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에드워즈의 설교는 이신 득의의 설교와 마찬가지로 신 32:35절 한 절을 가지고 한마디 한마디를 깊이 파헤치는 논리적이고도 조직적인 설교였습니다. 그의 몸은 허약했고 그의 목소리는 연약했습니다. 그의 시력은 밝지도 못했습니다. 그는 원고를 눈에 가까이 대고 설교를 읽어 내려가는 정도였습니다. 그의 동작은 거의 수동적이었고 제스처도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설교를 듣는 청중의 반응은 너무도 엄청났습니다. 청중은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 선고에 무서워 떨며 탄식했으며 흐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에드워즈는 설교 도중 청중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지시하기까지 했습니다. 설교를 듣던 어떤 목사는 마음의 고통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에드워즈 목사님, 에드워즈 목사님, 하나님은 자비하신 분은 아니십니까?” 라고 부르짖기도 했습니다. 1740-41에 일어난 제 1차 대각성운동(The First Great Awakening)으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되었고 그들의 관심을 하나님과 그의 뜻에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각성운동이 흐느끼고 소리지르고 떨며 기절하는 감정적 기현상을 동반하기도 했는데, 에드워즈는 한편으로 부흥운동을 반대하는 자들을 향해서는 부흥운동을 변호했고 다른 한편으로, 지나친 열광주의적 부흥운동을 주창하는 자들을 향해서는 감정적 열광주의를 비판했습니다.

 

에드워즈는 1751년부터 매사츄셋츠 주의 스톡브리지(Stockbridge)에서 목사로 목회를 하며 아울러 그 근처 인디언들을 위한 선교사역을 수행했습니다. 그가 말년에 선교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은 인디언들을 위해 젊음을 불사른 미국의 개신교 선교의 선구자 브레이너드로부터 받은 감화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에드워즈는 미국 인디언들이 백인들로부터 받는 착취를 목격하고 인디언 착취를 강력히 반대했습니다. 그는 스톡브리지에서 목회와 선교에 종사하며 많은 시간을 저술에 바쳤습니다.

 

에드워즈는 그가 55세 되던 해인 1758년 새로 설립된 프린스톤 대학의 총장으로 선출됐습니다. 처음에는 스톡브리지의 사역지를 떠나기를 주저했습니다. 사색과 저술활동에 가장 적절한 곳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총장으로 있으면서 젊은 목회자에게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이 매우 크다고 생각하여 결국 총장취임을 수락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천연두가 유행하고 있었는데 우두의 부작용으로 총장취임 후 수주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향년이 55세였습니다.

 

요나단 에드워즈의 인물과 사상과 설교를 간단히 되새겨봅니다. 에드워즈는 무엇보다 하나님 의식에 사로잡힌 설교자로 그리고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높이는 칼빈주의적인 신학자로 평생을 살았습니다.

 

18세에 경험한 그의 신비한 종교체험이 에드워즈의 인물과 사상을 특징지었는데 이와 같은 그의 하나님 중심적 특성은 그 이후 그의 생애와 사역에 계속해서 나타났습니다. “이신 득의의 설교에서 에드워즈는 칭의는 인간의 어떤 선행이나 의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의 대속의 사역을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믿음의 수단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강조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사역에 대한 진실한 진술에서 에드워즈는 각성운동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진술했습니다. 따라서 부흥에 있어서 인간적 기교를 사용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만 바라보며 기도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에드워즈의 교리적이고 논리적인 긴 설교가 그렇게도 강력한 감화력을 나타냈던 비결도 그가 하나님 의식에 전적으로 사로잡혀서 설교를 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에드워즈는 마치 칼빈과 같이 몸이 매우 허약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신체적으로 강건하지 못했으며 자주 병에 걸렸는데 그의 허약한 신체는 그의 사역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에드워즈는 허약한 몸 때문에 그의 활동이 제약을 받았으나 오히려 그것 때문에 많은 시간을 사색과 연구에 보낼 수 있었고 깊은 종교적 및 철학적 작품을 저술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허약한 육체는 그의 설교를 더욱더 감명 깊게 하는 효과를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에드워즈는 학문과 신앙적 정열을 겸비한 사람이었습니다. 에드워즈의 생애는 깊고 날카로운 지성적 능력이 뜨거운 가슴과 평행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나타났습니다. 그는 깊은 사색과 교리적 성경 연구가 뜨거운 신앙 각성운동에 방해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필수적 근거가 되는 것을 보여주었고 뜨거운 신앙운동이 깊은 학문활동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격려하는 것임을 실제로 보여주었습니다.

 

요나단 에드워즈는 신학자나 저술가 이전에 무엇보다 먼저 설교자로 간주되어야 할 것입니다. 히치코크(Orwlle A. Hitcheock)는 에드워즈를 설교자로 묘사하며 다음과 같이 지적했습니다. “에드워즈는 무엇보다 먼저 설교자였고 그 후에 저술가였다.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설교 준비와 설교하는데 보냈다. 그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은 종교적 연설들이었다. 그것들을 위해서 그는 그의 정력의 대부분을 바쳤다.” 에드워즈의 설교 중 가장 유명한 설교는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죄인들”(Sinners in the hands of an angry God)이었습니다. 어떤 설교 연구가는 그 설교가 교회 역사에 나타난 설교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설교였다고 지적했습니다. 에드워즈는 신 32:35 “그들의 실족할 그 때에(그들의 발이 미끄러질 그 때에) 내가 갚으리로다를 본문으로 삼고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불신자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무섭게 묘사했습니다.

 

1741년 매사츄셋츠 주 엔필드(Enfield) 주변 사람들이 영적 무감각과 침체상태에 빠져 있음을 목격한 에드워즈는 그들을 각성시키기 위해 불신자들 위에 임할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무섭도록 반복하여 묘사했습니다. 그의 설교는 청중들의 가슴에 폭탄이 터지는 듯한 무서운 충격을 가져다 주었고 죄책에 못 이겨 신음하며 흐느끼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일어났습니다. 에드워즈는 분명히 거역하는 불신자들 위에 임할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을 확신하며 하나님의 진노를 선언했지만 그의 주된 관심은 거역하는 불신자들을 격려하여 하나님의 긍휼을 받게 하는데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설교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리스도께서 자비의 문을 여시고 큰 소리로 죄인들을 부르신다고 설교했습니다. 에드워즈는 죄인들 위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과 죄인들을 부르시는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설교하면서 눈물을 흘리곤 했습니다. 이 설교의 특징은 다른 설교들에 비해 표현이 생생하고 단순하고 직설적이고 강력한 것이었습니다.

 

요나단 에드워즈가 설교한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죄인들이라는 제목의 설교의 마지막 부분을 읽어드리며 말씀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에드워즈는 이렇게 설교했습니다.

 

오 죄인이여! 당신이 무서운 위험가운데 있음을 생각해 보라. 그것은 커다란 진노의 용광로와 같은데 넓고 밑이 없으며 진노의 불이 활활 타고 있다. 이제 보다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라. 첫째로 그것이 누구의 진노인가를 생각해 보라. 그것이 무한하신 하나님의 진노이다. 둘째로 당신이 받게 될 진노의 무서움을 생각해 보라. 셋째로 하나님이 마지막에 벌하실 그리고 당신이 받게 될 진노의 비참함을 생각해 보라. 당신은 거룩한 천사들과 어린양 앞에서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다. 넷째로 진노가 영원하다는 것을 생각해 보라. 그런데 지금 당신에게 특별한 기회가 주어졌다. 지금 하루 동안 그리스도께서 자비의 문을 활짝 열고 불쌍한 죄인들을 향해 큰 소리로 부르짖으며 부르고 계신다. 하루 동안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로 달려가며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간다. 많은 사람들이 날마다 동에서, 서에서, 남에서, 북에서 오고 있다. 바로 얼마 전까지도 당신과 같은 비참한 상태에 있던 많은 사람이 지금 행복한 상태에 있다. 세상에 오래 살았지만 오늘까지 중생하지 못한 사람들이 여기 많이 있지 않은가? 이스라엘 백성과는 상관이 없고 태어난 후부터 한 일이라고는 진노의 날을 위해 진노만 쌓아온 사람들이 많지 않은가? 이제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은 노년이던 중년이던 젊었던 어리던 간에 지금 하나님의 말씀과 섭리의 커다란 부르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그리고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은 지금 모두 잠에서 깨어나 도래하는 진노에서 피하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진노가 지금 의심할 여지없이 이 회중의 대부분의 사람들 위에 임하고 있다. 모두 소돔에서 나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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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장로교회 표준문서> 10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해야 한다 배현 無益박병은목사 6107 2016.06.08 1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