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rl Barth의 신학과 그에 대한 개혁신학적 비판 한상호

無益박병은목사 | 2015.02.26 05:15 | 조회 9675

카알 발트의 신학과 그에 대한 개혁 신학적 비판 /한상호(실로암교회)

                                                                                                                                         2015년 2월 24일 

 

Ⅰ. 들어가는 말

 

카알 발트는 ‘20세기에 가장 위대한 신학자, 최고의 신학 교부’라 불린다. 그의 신학적 견해를 받아들이든지, 그렇지 않던 간에 현대 신학에 있어서 그의 영향력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혹자는 그를 어거스틴, 루터, 칼빈과 나란히 견줄만한 신학자라고 평하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은 오히려 카알 발트가 그들을 능가하는 신학자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카알 발트가 로마서 주석을 통해서 자유주의 신학을 무너뜨리고, 전 유럽의 신학적 스승의 역할을 했을 때, 그에게는 실제로 그들과 비견할 만한 역할과 영향력이 존재하였다고 볼 수 있다.  

학자들은 카알 발트의 신학을 넓은 범주로 개혁주의 신학으로 분류하는 경우가 많다. 그가 개혁주의 진영의 신학자로, 성경을 기반으로 하여 자신의 신학을 전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에게는 소위 ‘복음주의 신학자, 개혁주의 신학자’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 다닌다. 많은 사람들은 카알 발트의 등장이 교회가 자유주의 신학에 점령당했다가 해방된 사건이요, 생명을 잃어버렸던 교회가 복음을 회복한 사건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이것을 역사적인 종교개혁과 견줄만한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들인다.

현재 카알 발트의 신학은 전 세계적인 신학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심지어 그 영향력이 개신교 영역에만 제한된 것이 아니라 로마 카톨릭에까지 미치는데, 실제 로마 카톨릭교회의 제2바티칸 공회에도 큰 신학적 영향력을 행사할 정도였다. 한국의 경우에도 개신교의 진보적 성향을 갖는 신학교의 상당수가 카알 발트의 신학적 기반위에서 신학을 전개하고 있다.

전 총신대 교수인 서철원 박사는 장로교 통합측 신학교인 장신대의 경우 40년 이상을 발트 신학을 연구하고 있다고 하였다. 오히려 우리나라의 경우는 여러 가지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그 영향력이 다른 나라에 비하면 크지 않다고 하니, 전 세계가 얼마나 발트의 신학에 열광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종교개혁자들의 신학을 성경과 가장 조화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우리는 발트의 신학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넓은 의미에서 개혁주의 진영에 속해있고, 전 세계 신학의 대세를 이루기 때문에 문제없는 것으로 여기고 받을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이해서는 실제로 그의 신학에 대한 연구와 그에 대한 신학적 비판 작업이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그에 앞서 우리보다 이 문제에 대해 먼저 고민했던 믿음의 선배들은 어떤 판단을 내렸을까 살펴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1960년경 발트 신학이 전 세계에 알려지고, 그가 시대를 대표하는 개혁주의 신학자로 존경받고 있을 때, 세 명의 신학자가 발트에게 공개적으로 신학적 질문을 한 일이 있었다.

미국의 세 교수들(Clark, Klooster, Van Til)이 Christianity today를 통해서 발트에게 공개적인 질문을 하였는데, 발트는 답하지 않다가 자신의 교회교의학 영역의 총책임을 맡고 있는 풀러신학교 브로밀레이(Bromiley) 교수의 간청에 못 이겨 서신으로 그 신학적 질문에 답변할 수 없는 이유를 밝혔다.

이를 요약하자면 첫째로 그들의 질문이 자신의 신학적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지 않은 천박한 것이고, 둘째로 그들의 관심사인 정통주의 신학에 자신은 관심이 없기 때문에 서로간의 대화가 아무런 유익이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덧붙여 반틸에 대해서는 자신이 오래 전부터 모든 시대의 이교도 중에서 가장 악질이라고 평가한다고 하였다.

이 사건은 당시 정통주의 신학자들이 발트의 신학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알고, 이에 대해 명확한 그의 입장을 확인하고자 한 사건인데, 이에 대해 발트는 답변대신 자신의 입장을 타인에게 피력한 것이다. 당시 세 명의 신학자가 발트의 신학을 얼마나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는가 하는 문제와는 별개로, 이 사건은 발트의 신학과 정통신학은 사실상 한 자리에 앉을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는 것을 단적으로 알게 해 준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정통신학 진영에서는 이후에도 신학적으로 발트주의의 문제점을 계속적으로 지적해 왔지만 그에 대해 면밀한 신학적 분석은 병행되지 못하였다. 그의 신학이 경계해야 할 대상임은 분명한데 그 실체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 보수주의 진영에서 발트에 대한 재해석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발트에 대한 오해(?)를 해소하기 위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 움직임이 발트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기회가 된다면 긍정적일 수 있지만, 발트의 잘못된 신학적 입장을 감추게 하고, 교회로 하여금 올바른 입장에서 멀어지게 한다면 심히 우려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이제 역사적 정통주의 신학을 계승하는 교회는 발트 신학에 대한 분명한 이해와 더불어 그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내려야 할 피할 수 없는 시기가 되었다. 비록 그의 신학이 방대하고 복잡하며 언어적 장벽으로 인해 접근하기가 쉽지 않지만 교회가 역사적 환경 가운데 올바른 신학을 보존하고 변증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 생각된다.

우리도 그에 동참하는 의미로 그의 삶과 신학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그에 대해 성경과 역사적 신앙고백을 통해 판단을 내릴 것이다. 우리의 작은 시도가 교회를 지키고 보존하는데 작게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Ⅱ. 카알 발트의 생애 요약

 

1. 출생에서부터 청소년기까지

 

카알 발트는 1886년 5월 10일 스위스 바젤에서 아버지 프리츠 발트(Fritz Barth)와 어머니 안나 자토리우스(Anna Sartorius) 사이의 3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베른 대학교 신학부의 교수직을 맡게 되었기 때문에 유년기와 소년기를 보낸 곳은 베른이었다. 아버지 프리츠 발트는 1889년부터 베른 대학교 신학부에서 교회사와 신약학을 가르쳤다. 발트의 할아버지도 신학을 공부했고, 바젤에서 죽기까지 목회한 목사였다.

발트는 청소년기 전체를 베른에서 보냈는데, 이후 그곳을 대단히 행복했던 시절로 추억했다. 학창시절부터 인문학적으로 탁월한 재능을 보인 발트는 작가가 되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김나지움 생활 후반부에 베른의 청중이 열광하던 로베르트 에쉬바허(Robert Aeschbacher)목사의 설교를 듣고 신학자가 되기로 결심하게 된다.

 

2. 신학수업 및 전도사로 일하던 시기

 

1904년부터 1911년까지는 발트가 신학수업을 받은 시기였고, 또한 제네바의 개혁파 교회의 전도사로 목회를 시작한 시기였다. 1904년 베른에서 신학공부를 시작한 발트는 독일 베를린으로 옮겨서 신학공부를 계속했다.

이곳에서 당시 최고의 자유주의 신학자였던 아돌프 하르낙(Adolf von Harnack) 교수의 강의를 열심히 들었는데, 나중에 회고하기를 베를린의 풍경을 즐기거나, 문화생활에 전혀 참여하지 않았을 정도였다고 한다. 발트는 하르낙의 강의 외에도 구약학의 종교사학파의 거장이었던 헤르만 궁켈(Herman Gunkel)의 강의와 알브레이트 리츨의 문하생이었던 율리우스 카프탄(Julius Kaftan)의 강의를 들었다.

그러나 발트가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을 깊이 받는 것을 우려한 아버지는 아들을 튀빙겐 대학교로 옮길 것을 명했다. 당시 튀빙겐에는 복음적인 신약학자 아돌프 슐라터(Adolf Schulatter)가 교수로 있었고, 그에게서 신학을 배우기 바랐으나,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한 발트는 1908년 튀빙겐을 떠나 말부르크로 학교를 옮기게 되었다. 그 곳에는 하르낙 못지않은 또 한명의 최고의 자유주의 신학자인 빌헬름 헤르만(Wilhelm Herman)이 있었다.

말부르크에서 헤르만의 강의를 듣던 발트는 그의 강의에 심취하게 되고, 완전히 그의 추종자가 되었다. 더불어 마르틴 라데 교수 밑에서 조교로 일하면서 「그리스도의 세계」라는 학술잡지를 편집하는 일을 했다. 그 잡지는 당시 자유주의 신학의 대가들인 트뢸치, 부세, 베른레, 궁켈 등이 기고하는 잡지였는데, 라데 교수가 발트에게 많은 재량권을 주었기 때문에 많은 원고들이 발트의 검열과 서평을 거쳐서 출간되었다. 발트는 잡지 편집 외에도 자신만의 연구 시간에 칸트(Immanuel Kant)와 슐라이어마허((Friedrich Ernst Daniel Schleiermacher)를 철저히 연구하였고, 한 명의 자유주의 신학자로서의 풍모를 갖추어 갔다. 

 

3. 19세기 유럽의 신학적 풍토-자유주의적 신학

 

당시 유럽의 교회는 계몽주의 이후의 자유주의적 신학사조의 영향으로 심각할 정도로 부패해져 있었다. 계몽주의는 인간의 이성을 통해서 인간의 존재와 역사,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석하고자 하는 시대적 사조를 의미한다. 그 이전에는 인간은 하나님이라는 신적 존재를 통해 자신을 바라보고 자신의 행위의 기준을 찾았다. 따라서 교회와 성경의 권위가 인간 이성보다 위에 존재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인간에 대한 대단한 자신감과 더불어 인간의 이성이 하나님의 계시를 대신하게 되었다. 모든 철학은 인간의 이성이라는 도구를 통해 이루어졌고, 이것을 잘만 사용하면 인간의 세상의 모든 영역과 심지어 인간의 영혼에 관한 것 까지 밝힐 수 있으리라 기대되었다.

계몽주의 철학자 중 단연 최고는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였다. 그는 경건한 부모로부터 출생했지만 계몽주의적 원리에 입각하여 철학을 전개하였고, 교회의 신학에도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칸트는 「순수이성 비판」이라는 저서를 통해 인간의 이성이 다룰 수 있는 영역은 우리의 감각 세계에 제한되고, 그 외의 영역, 즉 인간의 영혼이라든지, 하나님과 같은 신적 존재는 초월적 영역에 있기 때문에 인간이 다룰 수 없다고 하였다. 칸트는 이전의 철학자들과는 달리 이성의 기능에 제한을 부여함으로써 초월적 세계와 인간의 종교성에 대한 여지를 제공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칸트의 철학이 교회로 들어와 신학적 원리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인간이 논의할 수 없는 초월계로 쫓겨나게 되었다.

이제 신학은 절대적으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진술이 아니라 인간의 종교성을 연구하는 인간학 내지는 종교학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특히 자유주의 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슐라이어마허는 신앙을 신에 대한 ‘절대의존의 감정’으로 해석함으로써 이전의 기독교 신앙의 원리를 완전히 뒤집는 ‘코페르니쿠스’가 된다.

이제 성경은 하나님이 교회에 주신 언어계시가 아니라 인간의 종교적 문서로 취급되었다. 그리하여 신학자들은 성경 가운데도 인간의 오류가 많이 섞여 있으므로, 이성을 사용하여 역사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내용으로 성경을 재구성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성경에 등장하는 다양한 기적은 신화에 불과함으로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기적을 행하는 예수,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아니라 완전한 도덕적 인간의 표준, 인간 예수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밝히고, 예수를 따르는 공동체인 교회의 종교적 속성을 연구하기 위해 다양한 신학적 작업을 행하게 되었다.

발트가 추종했던 헤르만은 신칸트학파의 영향권에 속해 있는 신학을 전개하였는데, 순수이성의 영역에서는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지만, 실천적인 영역에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존재는 성경말씀과 같은 객관적인 계시를 통해 역사적으로 확인되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으로 경험된다는 뜻이다. 특별히 윤리적 영역과 연관하여 신앙을 자유로운 복종의 경험이라 정의하였다. 발트가 훗날 자유주의 신학을 떠나게 되었지만 그의 사상 속에는 헤르만적 요소가 남아 있게 된다.

 

4. 자펜빌의 목사 및 로마서 강해

 

1911년부터 1921년까지 발트는 스위스의 작은 공업도시인 자펜빌(Safenwil)에서 목회를 하였다. 자유주의 신학으로 철저히 무장된 발트는 그곳의 노동자 문제에 부딪히면서 사회주의 사상과 활동에 깊이 관여하게 된다. 노동자들을 규합해서 공장주와 대결을 했고, 교회에서는 사회주의 정신의 실천을 하나님의 명령으로 설교하였다. 발트는 소위 ‘빨갱이 목사’로 알려졌고, 기독교 정신과 사회주의 정신을 동일시하는 종교사회주의자였다.

그런데 1914년 8월 초에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은 발트의 정신에 엄청난 충격을 주는 사건이었다. 발트에게 이 사건은 인생에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다. 독일의 빌헬름 2세에 의해 전쟁이 선언되었을 때, 자신을 가르쳤던 자유주의 신학 스승들이 이에 찬성표를 던졌던 것이다. 여기에는 하르낙과 헤르만을 포함한 독일의 지성인 93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발트는 스승들의 윤리의식에 큰 실망을 하였고, 이것은 그들의 신학에 대한 거부와 함께 새로운 신학의 길을 모색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던 차에 1915년 4월 발트는 말부르크에서 거행된 동생 페터(Peter)의 결혼식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길에 자신의 친구인 투르나이젠(E.Thurneysen)과 함께 받볼(BadBall)에 들러 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Ch.Blumhardt)를 만나게 되는데, 그와의 만남은 새로운 신학적 관심을 유발하였고, 발트에게 성경을 새롭게 보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다. 불룸하르트는 그의 아버지와 함께 독일 서남부 지방의 슈베비쉬(Schwäbisch)경건주의 운동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는데, 그들 부자는 “예수께서 승리자시다”라는 상징적인 표어로 널리 알려져 있는 사람들이다.

블룸하르트는 유럽대륙의 종교사회주의 운동의 지도자였으나 사회주의 운동이 가지는 거칠고, 폭력적인 활동을 목격하면서 참된 하나님 나라를 사회주의 운동과 동일시하던 이전의 입장을 던져버리고, 하나님 나라와 인간 사회의 질적인 차이를 가르쳤다. 발트는 블룸하르트를 만나고 나서 당시까지 출간된 그의 설교집과 모든 저술들을 깊이 탐구하였다.

블룸하르트와의 만남을 통해 성경을 독자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발트는 성경에 담겨있는 내용을 접하면서 크게 놀라게 되었다. 이전에는 자유주의자 헤르만의 신학 관점으로 성경을 바라보았다. 그 때의 하나님은 인간의 이상이나 도덕과 구분되지 않는 인간 내재적인 존재였다면,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은 스스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었다.

로마서를 연구하면서 이에 대한 깨달음을 정리하던 발트는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무렵 1919년, 자신의 성경연구의 결과물인 「로마서 강해」1판을 출간하였는데 자신의 예상과는 달리 큰 반향을 일으키며, 일약 신학계에서 주목받는 인물이 되었다. 이 책의 유명세로 인해 발트는 독일의 괴팅엔 대학으로부터 개혁신학을 가르치는 교수로 초빙을 받게 된다.

 

5. 괴팅엔 대학과 뮌스터 대학 교수시절

 

1921년부터 1930년까지는 발트가 독일의 괴팅엔 대학과 뮌스터 대학의 교수로 재직하던 시기이다. 1922년 발트는 「로마서 강해」2판을 출간하였다. 1판의 내용을 전면적으로 수정해서 나온 2판은 발트의 회고대로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겨진 바 없이' 바뀌게 되었다.

발트는 로마서 1판에서 하나님이 인간과는 다른 초월적인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였지만 하나님의 나라가 인간 역사 가운데 성장할 수 있다는 입장을 가졌었다. 그러나 로마서 2판은 1판에 비해 신학적 위기의식이 더욱 커졌다. 하나님은 인간과는 너무나도 다른 존재이고 초월적인 존재임과 동시에 하나님은 그러한 인간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은 하나님 없는 위기상황에 처해있고, 오직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진노만이 가득 찬 곳이라고 인식하였다.

로마서 강해 1판은 영어로 번역되지 못해서 영어를 사용하는 국가의 신학자들은 그 내용을 알지 못했으나 2판은 영어로 번역되었기 때문에 전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고, 세계 신학의 흐름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1922년에는 투르나이젠과 고가르텐(Friedrich Gorgarten)과 함께 「시간과 시간사이」라는 잡지를 발간하여 자유주의 신학을 무너뜨리고, 변증법적 신학을 널리 알리고자 하였다. 이 시기 발트는 베를린 대학의 전 스승이었던 하르낙 교수와의 신학논쟁에 휘말리게 된다.

하르낙은 자유주의 신학자의 관점에서 발트의 신학을 학문성이 결여되었다고 비판하였고, 발트는 역사비평으로는 예수의 참 모습을 밝혀내지 못함을 주장하면서 학문적 신학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찾는 새로운 길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6. 본 대학 교수시절 및 바르멘 신학선언

 

1930년에서 1935년까지는 발트가 본 대학교에서 교수직으로 있다가 고향인 바젤로 돌아가게 된 기간이다. 이 시기는 특별히 히틀러 정권과의 투쟁이 시작되던 시기인데, 발트는 당시의 급박한 정치상황에 대한 자신의 신학적 견해를 밝히는 「오늘의 신학적 실존」이라는 잡지를 출간하였다.

1934년 5월 31일 독일 바르멘에서 독일의 고백교회는 자신들의 신학적 입장을 발표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르멘 신학선언이다. 이것은 히틀러와 히틀러의 지원을 받고 있는 독일의 그리스도인 연맹에 대항하여 발표된 것이다.

당시 독일의 그리스도인 연맹은 독일 교회의 지휘권을 장악한 뒤, 국가 주교로 발탁된 루트비히 뮐러를 중심으로 민족이기주의를 충동하고, 유대인 박해를 위한 신학적 근거를 제시하면서 히틀러가 추구하는 국가 사회주의 건설을 위해 교회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이에 대해 독일의 개신교 고백공동체는 교회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신학선언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선언문의 작성을 발트가 전담하게 되면서, 사실상 그때부터 유럽 전체 교회의 신학적 지도자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발트는 바르멘 신학선언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와 성경과, 교회의 선포를 통해서만 들을 수 있다고 천명함으로써, 국가 사회주의 이념을 하나님의 나라와 동일시 하고자 하였던 당시의 친 히틀러적 신학에 반대하였다.

당시 발트가 자신의 변증법적 신학의 동지였던 에밀 브루너와 고가르텐과 결별한 것도 이와 연관되어 있다. 이는 두 사람이 당시에 발표한 글이 독일의 국가사회주의를 지지해 주는 신학적 근거로 작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7. 바젤 대학 교수시절 및 교회교의학 집필

 

발트는 히틀러 정권에 저항한 혐의로 1934년 교수직을 박탈당하고, 독일 내에서 일체의 강연을 금지 당한다. 이에 발트는 히틀러의 박해를 피해 1935년 스위스 바젤로 돌아와 1962년까지 바젤 대학의 교수 생활을 하였다.

이 시기에 그의 신학의 총화라 할 수 있는 「교회교의학」의 대부분을 집필하였다. 총 9000페이지가 넘은 방대한 분량을 자랑하는 이 책은 1권과 1967년에 출간된 「세례론」을 제외하고는 모두 이 시기에 집필되었다. 이 시기 자신의 신학교수직을 박탈하였던 본 대학에서 다시 교수직을 제안하였지만, 성사되지 못했고, 대신 1946년, 1947년 두 차례 본 대학에서 강연을 하게 된다.

1948년 발트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WCC총회에 참석하여 "인간의 무질서와 하나님의 구원계획"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였는데, 이는 발트가 당시 세계 신학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8. 발트의 만년시기

 

1962년부터 1968년까지는 바젤 대학에서 은퇴한 이후 발트가 만년의 생을 보냈던 시기이다. 1961년 은퇴 후 후임교수가 정해지지 않아서 한 학기 더 강의를 맡게 되었는데, 이 때 강의한 것을 책으로 출간한 것이 「개신교 신학입문」이다.

발트의 신학은 그의 일생 가운데 여러 번 변하게 되는데, 이 책은 그의 마지막 시기의 신학적 견해를 잘 보여주는 책이다. 이 시기에 그는 미국을 방문하기도 하고, 로마 카톨릭 교회로부터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에 초대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1962년부터 발트의 건강은 많이 약해져서 그 이전에 비해 왕성하게 글을 쓰지 못하고, 몇 차례 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받기도 하였다.

발트는 1968년 12월 10일 친구 트루나이젠과 세계의 여러 가지 문제로 전화통화를 오래하였고, 그날 밤에 사망하였다.

 

9. 발트의 신학과 모차르트 음악

 

발트의 삶과 신학에서 뗄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모차르트의 음악이다. 발트는 1956년 모차르트 탄생 200주년 기념회 자리에서 "모차르트의 자유"라는 제목으로 많은 음악가들 앞에서 강연을 하였다.

그는 모차르트 음악에 대해 매우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모차르트의 음악을 신학적으로 해석했다. 심지어 만년의 서재에는 모차르트의 초상이 존 칼빈의 초상과 나란히 걸려 있을 정도였다. 이에 대해 클라페르트(B. Klappert)는 발트 신학에서 모차르트 음악은 하나님 나라의 유비적인 특징을 갖고 있다고 보았다.

 

 

Ⅲ. 카알 발트의 신학사상 및 그에 대한 비판

 

1. 카알 발트 신학의 변화에 따른 시기분류

 

카알 발트는 그의 생애가 변화무쌍한 경로를 거쳐 왔듯, 신학에 있어서도 여러 차례 변화하는 양상을 보인다. 첫 번째 시기는 「로마서 강해」로 대표되는 시기이다.

「로마서 강해」 제1판은 하나님 나라가 인간의 역사 가운데 존재하고,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말했다는 점에서 헤겔의 변증법적 특징을 보이고 있는 것에 비해, 「로마서 강해」 2판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계시가 인간의 역사 가운데 존재할 수 없는 역설로 규정되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 키에르케고르적 특징을 지니는 변증법적 신학이다.

즉 2판은 1판의 보안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내용을 담고 있다. 2판은 하나님에 대해 인간적인 것을 철저히 반대하고, 심판하기를 원하는 분으로 묘사함으로써 인간의 위기를 크게 부각시켰고, 그에 따라 위기의 신학이라 불린다. 발트가 이러한 신학을 전개하게 된 것은 당시 전 유럽에 몰아 닥쳤던 1차 세계대전의 충격 때문이었다.

발트의 중기 신학시기는 말씀의 신학이라고 표현될 수 있는 시기인데, 1924년경부터 1942년 「교회교의학」Ⅱ/2의 예정론이 쓰이기 이전까지의 시대로 규정할 수 있다. 「로마서 강해」 2판에서는 하나님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 사이의 질적 차이 때문에 하나님의 계시는 세상에서 아무런 도구를 가질 수 없었는데, 이 시기에 와서는 인간 예수가 '하나님의 말씀의 도구'라고 본다.

1942년 「교회교의학」 Ⅱ/2의 예정론을 후기 발트 신학의 시작으로 보는데, 이는 계시에 대한 발트의 인식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발트는 말씀의 신학의 시대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계시로 인식하고 있었으나, 인간 예수가 하나님이라는 초월적인 존재를 완전히 드러내지 못하는, 즉 하나님의 계시를 담고 있는 계시의 도구였던 것에 비해 후기에는 인간 예수가 계시 그 자체라는 점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다. 인간 예수는 하나님의 신성을 은폐시키는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신성이 무엇인지 밝히 드러내는 계시 그 자체이다.

 

2. 카알 발트의 계시와 성경에 대한 이해

 

⑴ 계시, 하나님 말씀의 정의

계시란 하나님께서 자신과 관련한 진리를 자신의 피조물에게 전해주시는 행동이나 그 행동의 산물을 말한다. 발트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발트는 예수 그리스도 외의 다른 하나님의 계시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계시는 다른 말로 하나님의 말씀이고, 이것은 역사적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신을 드러내신 하나님의 행동으로 정의된다.

 

⑵ 계시의 증언으로서 성경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계시요, 하나님의 말씀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가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사역 그 자체가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는 사건이고, 계시인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은 무엇인가? 발트에 의하면 성경은 그 자체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인간의 증언이다. 구약 성경은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이고, 신약 성경은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인간 저자의 증언이다. 따라서 성경에는 다양한 인간적 모순과 오류들이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그러한 오류들에 있어서는 다양한 비평적 도구들을 사용하여 배제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성경은 단순히 인간이 저술한 책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발트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비록 성경에 인간적인 오류가 담겨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러한 연약한 인간적 도구를 통해서 직접 말씀하시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에 성경이 하나님 말씀이 된다고 한다.

발트에 의하면 자유주의 신학의 오류는 성경의 인간적인 측면에 너무 집착하여 성경의 본질을 상실했다는 점에 있다.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내용을 담고 있다든지, 인간의 종교적 체험을 주제로 기록한 문서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성경의 주제이고, 그가 직접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기 때문에 다른 인간들의 저작과는 다르다.

그러나 발트는 정통주의 신학자들이 주장한 성경의 무오성이나 축자영감에 대한 견해는 성경이 인간의 증언이라는 점을 간과한 또 다른 오류로 보았다. 성경 비평학이 발전하면서 성경 사이에 존재하는 상호모순과 혼란들이 수 없이 밝혀졌기 때문에 옛 신학자들이 주장하는 성경의 무오성의 교리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어졌다고 보았다.

 

⑶ 하나님 말씀의 사건성- “지금 여기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발트의 계시관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지금 여기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개념이다. 하나님 말씀은 어떤 문서나 사물이 아니라 역사 가운데 행동하시는 하나님을 주체로 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은 '사건'이라는 이름으로 정의된다.

믿음을 통해 성경을 볼 때,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성령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과의 만남을 발생시키시고, 이로써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과 계시가 되게 하시는 것이다.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로서 기능할 수 없고, 오히려 인간적인 도구로 작용하여 계시를 은폐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교회의 설교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라 불릴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설교가 설교자에 의해 인간적인 언어로 전달되지만 성령의 사역을 통해 듣는 사람에게 하나님과의 실존적인 만남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발트는 이러한 말씀의 사건성이라는 전제 위에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절대적 계시에 의존하는 성경, 그리고 교회의 설교를 하나님 말씀의 삼중양태로 설명한다.

하나님 말씀의 사건성은 하나님 말씀을 획일적으로 규정되지 못하게 한다. 발트에 의하면 하나님은 인간의 정황과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인간과의 만남의 사건에서 전달되는 하나님 말씀은 인간의 다양한 형편만큼이나 다양할 수밖에 없다.

발트는 성경 주석학자가 주석한 정통적 해석이 영원한 표준이 아니고,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정통 주석학자의 주석을 부수고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말씀하실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발트의 계시관의 특징 때문에 리차드슨(K. A. Richardson)은 발트의 말씀의 신학을 포스트 모던적 신학이라고 규정하였다.

 

⑷ 발트의 정경에 대한 이해

초대교회와 정통신학자들은 정경의 표준은 사도성이라고 보았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사도의 글이 성경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신약 성경 가운데 상당수는 사도들이 기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예를 들어 베드로 후서나 요한 계시록은 사도 베드로와 사도 요한이 기록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 외에도 에베소서를 비롯한 상당수의 바울서신들 역시 사도 바울의 글이 아닐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발트 역시 이러한 학문적 결론에 동의하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존의 정경에서 이런 의심을 받고 있는 것을 제외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발트는 정경이 교회의 결정에서 비롯된다는 로마 카톨릭의 주장을 반대했다. 그 대신 정경은 그 자체의 권위로 정경이라는 입장을 취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우리가 그 책을 통해서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느냐’ 하는 점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교회 가운데 이 책들을 통해서 직접 말씀하시고 계시느냐, 하나님께서 성경을 자신의 도구로 사용하시느냐 하는 점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에베소서가 바울이 기록한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이 책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면 그것은 분명히 정경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사실은 누가 규정한다는 말인가? 발트는 이 문제를  특정한 개인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 교회가 결정해야 한다고 하였다. 전체 교회가 실제적으로 이 책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면 그 책을 정경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에 덧붙여 발트는 12사도의 교훈과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낸 편지와 같은 책은 정경에 삽입할 수 있는가를 검토할 가치가 있다고 보았고, 루터와 같이 요한 2,3서 및 요한 계시록은 정경에서 제외하는 문제에 대해 고려해 보아야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 문제는 한 신학자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고 전체 교회의 문제라고 보았다. 이러한 의미에서 정경은 잠정적으로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하였다.

 

⑸ 이스라엘 역사의 계시성

발트는 이스라엘의 역사는 다른 민족의 역사 일반과는 다른 특별한 역사라고 보았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민족이고, 그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에 목적을 두고 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그 자체로 예언적인 역사이다. 즉 이스라엘 역사의 사건들은 말씀이다. 전체 이스라엘의 역사는 심판의 역사가 아니라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과 은총의 역사이고, 동시에 모든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⑹ 발트의 계시관에 대한 비판

앞에서 발트의 생애와 그의 계시관에 대하여 대략적인 내용을 살펴보았다. 발트가 넓은 의미에서 개혁주의 신학자로, 신정통주의자로 분류된다고 해서 그의 신학이 건전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의 신학과 우리가 받는 정통 개혁주의 신학과는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있다. 특히 신학의 인식론과 연관된 계시관에 있어서는 그 차이가 명백하다.

발트의 계시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가지고 있는 인식론의 근간을 이루는 철학적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앞에서 그가 변증법적 신학자라는 것을 살펴보았다. 변증법이란 어떠한 진술이 진술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고, 동일하게 역 진술이 가능한 것을 말한다. 원래 변증법이란 고대 희랍에 근원을 둔 수사법의 일종인데, 상대방의 명제나 진술이 가진 내부의 모순을 지적함으로써 그 주장의 오류를 드러내는 것을 의미한다.

이후에 이것이 헤겔에 의해 유명한 ‘정-반-합’ 이라는 진보적이고, 발전적인 도식으로 제시되면서, 단순한 논리적 도식을 넘어서서 역사철학에 적용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다가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에 의해 역설적인 변증법이 소개되었는데, 이것은 어떠한 명제가 그 명제 자체가 지니고 있는 모순으로 인해서 종합이 불가능하고, 역설로서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발트는 키에르케고르의 역설적 변증법을 신학적 인식론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 이것은 유한한 인간과 무한한 하나님 사이의 질적인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것인데, 인간과 인간이 속한 현실 세계와, 초월적인 영역에 계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계시 사이에 존재하는 모순적, 역설적 상황에 대한 신학적 인식으로부터 비롯된다. 이러한 상황은 인간이 하나님을 자신의 제한된 언어나 명제로 파악할 수 없다는 결론을 유발한다.

예를 들어 ‘하나님을 안다’라는 명제가 가능하다면, 역으로 그렇다면 ‘하나님을 완전히 알 수 있는가’라는 명제가 동시에 제시될 수 있고, 이에 대한 우리의 대답은 ‘아니요’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적용해 보면, 유한한 인간이 하나님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우리는 하나님이 자기 자신과 자신의 뜻을 계시하셨기 때문에 안다고 말한다. 특별히 하나님의 삼위일체로 계심과 같은 하나님의 본질 뿐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경륜을 우리에게 알리셨다고 한다.

그런데 발트의 변증법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한다. ‘그렇다면 다 알 수 있는가?’ 만일 다 알 수 있다면, 무한한 하나님이 유한한 현상계로 포섭된 것이고, 하나님으로서 계시를 그친 것이라는 역 진술을 한다.

사실 우리 신앙에 있어서 상당히 많은 부분은 인간의 논리로는 역설적인 진술만이 가능한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사람이 되셨다’라는 성육신의 신비는 우리의 이성이 완전히 이해할 수 없고, 인간의 논리나 명제로 종합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우리가 구원받은 존재라고 하기도 하고, 역사의 마지막이 아직 이르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아직 구원이 이르지 않았다고 성경이 말하는데, 이것도 일종의 역설적인 진술이다. 그와 유사하게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인되었다고도 하고, 우리가 죄인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역설적인 상황은 인간의 인식적 한계 때문이지 그 자체가 역설이기 때문이 아니다. 다시 표현하자면 하나님께 있어서는 전혀 역설이 아닌 것이다. 우리의 부족한 이성과 언어가 하나님의 초월적인 진리를 온전히 담기 어렵기 때문에 발생하는 불가피한 상황이지 진리 자체의 본질이 역설적이지는 않다. 따라서 우리는 신앙을 통해서 그것이 온전히 참되다는 것을 알고, 그에 대한 우리의 진술이 완전하지는 않지만 참되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발트의 변증법에 의하면 인간과 하나님과는 본질적으로 역설적이다. 인간의 언어와 인간이 속한 현실세계 그리고 하나님의 계시와 하나님이 계신 초월적인 세계는 필연적으로 역설적이다. 따라서 인간은 결코 “하나님의 계시를 소유할 수 없다". 이러한 인식론은 계시와 성경과의 관계에 대한 이해 뿐 아니라 역사에 대한 이해에까지 확대된다.

먼저 발트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계시는-부정적인 명제로 진술해 보자면-사람의 언어로 기술된 명제나 문서일 수 없다. 그 이유는 발트가 이해하는 계시는 초월적인 하나님과 인간이 속한 현상계가 만나는 변증법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발트는 하나님의 계시는 인간의 언어나 인간의 일반 역사와 동일시 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을 하나님의 계시라 한다면 이미 하나님이기를 그친 것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발트에게 있어서 성경은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계시가 되거나 그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일 수 없는 것이다. 발트는 역사 가운데 하나님의 계시적 사건이 계속되었는데 그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이 있다고 이해한다. 왜냐하면 예수는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분이요, 이전 계시의 목표요, 완성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 사건을 증거하는 인간적인 증언이고, 회상이다. 따라서 발트는 당시의 역사비평적 작업들의 결과물을 받아들여 성경에는 여러 가지 모순과 불일치가 있고, 고대 동방의 신화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성경주해에는 고등 비평적 도구들이 반드시 사용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성경이 인간의 문서이고, 하나님은 인간의 언어로 자신을 계시하실 수 없는 존재라면, 다시 말해 하나님이 전적인 타자이시기만 하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과 접촉하게 되며, 하나님의 말씀은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발트는 우리가 성경을 볼 때, 또는 교회에서 성경의 내용이 선포될 때, 성령을 통해 우리가 실존적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접촉하게 된다고 하였다. 다시 말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계시적 상황이 되는 것이다.

앞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발트의 변증법적 철학은 하나님을 계속적인 계시적 상황에 계신 분으로 제시한다. 즉 계시를 그친 하나님은 초월적 존재이기를 그치므로 계시를 중단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완성된 계시로서의 성경이라는 개념은 잘못된 것이고, 성경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시므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계시적 활동은 계속되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개념은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실존적인 영역에서 적용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상황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초월적인 계시가 인간 세상과 접촉하면서 발생하는 사건인데,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계시로서 작용하지 아니하고, 오직 위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으로 우리의 의식 가운데 흔적을 남기는 작용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번개가 번쩍하는 것 같이 순간적인 사건으로 우리에게 임하는 것이다.

이러한 계시에 대한 일련의 이해는 모두 발트의 변증법적 인식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렇다면 이것이 우리의 고백과는 어떻게 다른가?

발트의 주장과는 달리 개혁주의 신학에서는 기본적으로 인간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으로 지으신 피조물이요, 인간의 언어도 하나님께서 주신 의사전달 수단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본질 모두를 인간에게 계시하실 수 없고, 인간도 하나님을 완전히 아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언어로 기록된 문서를 통해 자신을 참되게 계시하실 수 있다고 믿는다. 즉 인간의 언어는 하나님에 대해 유비적으로, 참되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 66권은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무오한 말씀이다. 여기에는 어떠한 변증법적 긴장도 발생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실 수 있는 자유가 하나님께 있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내적인 조명이고, 적용으로 이해해야지 그 자체가 새로운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이 아니다.

더불어 우리는 성경을 인간의 저작으로만 보고 역사비평을 시도하는 자유주의 신학자들과 발트주의들의 견해를 결코 받아들이지 않는다. 성경에 오류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그들의 신학적 인식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인본주의적인 전제 위에서 발생한 것임을 지적한다.

성경은 그 자체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따라서 정경의 권위는 정경 그 자체에서 유래한다. 우리는 베드로서나 요한계시록이 요한의 저작이 아니라는 주장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는다. 더불어 정경이 정경 됨은 고정된 것이고, 여기에 어떤 것을 빼고, 어떤 것을 추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3. 성경에 기록된 이적에 대한 이해

 

⑴ 발트의 변증법적 역사관

발트의 변증법적 계시관에 대해 앞에서 살펴본 바에 따르면, 하나님의 계시는 결코 인간이 살고 있는 현상계와 일치될 수 없었다. 이러한 인식론은 역사에 대한 이해에도 그대로 확대 적용된다.

성경에 기록된 구약의 이스라엘의 역사와 신약의 역사는 하나님의 계시적 성격을 띠는 역사이고, 그런 의미에서 다른 인류의 보편적 역사와는 구분되는 특별한 역사라는 점은 누구나 동의하는 명제일 것이다. 그러나 발트에게 있어서 이 명제의 구체적인 적용은 상당히 다르게 나타난다.

발트는 먼저 역사 일반과 구분되는 초월적인 역사를 구분하는 변증법적 개념을 도입한다. 이것을 독일어로 Geschichte라고 하는데, 일반역사 Historie와는 다른 신학적 개념을 담고 있는 유일하게 독일어에만 존재하는 단어이다. 이 단어는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많이 사용하였다.

Historie는 우리가 늘 사용하는 ‘역사’이다. 달력의 역사로서 해가 뜨고 지고 우리의 일상생활이 이루어지는 시간의 연장선상에 존재하는 일반적인 역사이다. 그에 비해 Geschichte는 인간에게 실존적으로 가치 있게 되는 역사를 의미한다. 따라서 발트에게 성경에 나타나는 계시적 성격을 띠는 역사는 모두 Geschichte이다. 이것은 역사 일반인 Historie 영역과는 관계가 없는 역사이다.

발트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계시가 인간의 역사 속으로 뚫고 들어오게 되면 그것은 인간 역사의 일반인 Historie의 영역이 되지 못하고, Geschichte 영역이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계시는 현상계의 일부로 붕괴될 수 없기 때문이다.

 

⑵ 발트의 이적관

발트의 이러한 변증법적 역사이해는 바로 심각한 질문을 야기한다. 그것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많은 이적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것이다. 발트는 실제 다양한 주석을 통해 성경에 기록된 이적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그 역사는 모두 Historie가 아니라 Geschichte이다. 이 말은 이것이 말 그대로 우리가 현실 가운데 받아들이는 역사의 한 순간에 발생한 실제 사건이 아니라는 말이다.

모세가 행한 기적, 엘리야의 기적,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오병이어의 기적, 예수의 부활 모두가 발트에게는 변증법적 역사 가운데 존재하는 개념이지 실제 역사에서 발생한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만일 그 당시 사진기가 존재하였다면 찍을 수 있는 그런 역사가 아닌 것이다. 성경기자가 하나님의 초월적인 계시적 역사를 그러한 기적적이고 초자연적인 역사적 이야기(Saga)로 묘사한 것이지 그것이 문자 그대로 실제로 일어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만일 성경에 기록된 그러한 이적적인 역사가 모두 현상계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면 그에 대해 논하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발트에게 있어서 이것 역시 변증법적인 의미이다.

우리가 위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우리의 믿음으로 되는 것인데, 이것이 우리의 실존적 영역에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계시적 행동이라면, 성경에 기록된 역사가 꼭 Historie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도구가 된다면, 즉 Geschichte라면 그 이상 아무것도 필요한 것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⑶ 개혁 신학적 비판

발트의 역사관은 복잡한 해석이 필요 없이 한 마디로 철저히 비성경적이라 할 수 있다. 성경이 증거하는 역사는 그가 도입하고 있는 그러한 인위적인 역사 구분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사도들이 증거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에 근거한 것인데, 사도들의 증언에는 그 어디에도 변증법적 긴장이 나타나지 않는다.

기독교 신앙은 철저히 역사적인 신앙이다. 만약 그 역사성을 제거한다든지, 역사적 성격에 변조를 가하게 되면 그 순간부터 기독교이기를 그치게 된다. Historie없는 Geschichte는 결과적으로 또 다른 내재주의로 흐르게 된다. 슐라이어마허를 비판하며 신학을 전개한 발트는 결과적으로 슐라이어마허에게 무릎을 꿇게 되는 것이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정직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과 부활을 믿지 못하겠다고 선언했다고 한다면, 발트는 신학적 이론으로, 언어적으로는 긍정하는 듯 포장하지만 그 이면에는 이것의 역사성을 부인하는 무서운 불신앙이 깔려 있다는 점에서 더욱 위험하다 하겠다.

 

4. 카알 발트의 신론

 

⑴ 발트의 삼위일체론

발트에게 하나님은 하나님의 계시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알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이 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사람이 되시기 이전의 하나님이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 후 성령 하나님이 있다고 이야기하는데, 그것은 전통적으로 교회가 고백해 온 삼위일체 하나님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적 과정 가운데 하나님의 계시과정을 표현하는 것일 뿐이다. 다시 설명하자면 한 하나님이 계시자로서 성부로 표현되고, 계시로서 성자로 표현되며, 계시의 내용으로서 성령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기독교의 가장 핵심적인 교리가 바로 삼위일체에 대한 교리이다. 이것은 인간의 이성으로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진리이고, 성경에 계시된 내용에 대한 교회의 수동적인 고백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발트는 성경이 가진 계시성을 부인하고, 합리적인 설명으로 삼위일체 교리를 해체하기 때문에 사실상 기독교 신앙의 범주를 이탈하여 자유주의자와 일반이 되었다. 그에게는 영원 전에 존재하는 로고스로서 성자 하나님의 존재는 없다. 따라서 삼위 하나님 간의 구원협약도 있을 수 없다. 단지 영원하신 아들이라는 개념은 하나님 자신의 자기규정의 하나이고, 하나님의 풍성한 존재성을 보여주는 표지일 뿐이다.

 

⑵ 발트의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이해

발트는 하나님에 대한 모든 이해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취한다. 이것은 앞에서도 언급되었듯이 자신의 신학에 있어서 그리스도가 가진 계시적 집중성 때문이다.

발트는 「로마서강해」 2판이 출간된 지 40년이 지나 1956년에 "하나님의 인간성"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했다. 이 강연을 통해 인간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계시적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 그 자체라는 입장을 전개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모든 성품은 인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은 첫째로, 오직 은혜의 하나님이다. 인간을 위해 자신을 죽음에 내어주는 하나님은 심판의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의 모든 죄를 해결하는 은혜의 하나님이다. 둘째로, 하나님은 자신의 피조물인 인간과 관계를 맺기를 원하고, 인간의 사랑을 갈구하는 하나님이다. 발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낮아지심을 본다.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지극히 연약하고, 무능하며, 고난을 통해 죽음을 맞이한다.

발트의 이러한 진술은 하나님에 대한 정통 교회의 고백과 다르다. 정통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전제는 하나님의 공의라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하여왔다. 하나님의 공의가 없는 하나님의 사랑은 실체가 없는 언어형식일 뿐이다.

삼위 하나님 중 성자 하나님이 담당한 성육신과 십자가 사역은 영원 전 삼위 하나님 간의 구원협약에서 비롯되었고, 이것은 인간의 타락과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심판을 전제로 한 하나님의 사역인 것이다.

그러나 발트는 성경이 가진 계시적 규범성을 인정하지 않음으로 구약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를 보지 못한다. 더욱이 이단적인 삼위일체론과, 왜곡된 기독론에 갇혀서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에 대한 잘못된 신학적 이론을 전개하고 있다.

 

5. 발트의 기독론

 

발트에게 삼위 일체 하나님 중 제2위격인 성자 하나님의 위격적 존재가 없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일 뿐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으로 불리는 이유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해를 이룬 자이기 때문이다. 발트에게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예수의 인간성에 한정된 표현이고, 정통 교회의 진술이 의미하는 예수의 존재가 영원한 로고스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렇다면 예수가 왜 그리스도인가? 그가 어떤 의미에서 화해자인가? 발트의 설명에 따르면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피조물인 인간과 교제하고, 인간을 자신의 존재에 동참시키기로 결정하였다. 그런 경륜이 인간 예수 안에서 성취되었기 때문에 그가 하나님의 유일한 말씀이고, 하나님인 것이다.

발트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성육신한 존재가 아니다. 그가 성육신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그것 역시 우리가 생각하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변증법적 의미일 뿐이다. 「교회교의학 개요」에서는 예수의 동정녀 탄생을 선명하게 부인한다.

예수가 단순히 인간이고 피조물이라고 주장한다면, 고대 교회의 이단인 아리우스와 동일한 이단이다. 서철원 교수는 발트의 주장은 구 자유주의 신학자인 알브레히트 리츨과 동일하다고 지적한다. 그 역시 그리스도가 하나님으로 선재하는 분이 아니라 만물이 향하는 목표로 창조되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정통 기독교의 교리 가운데 가장 중요한 교리 중 하나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인데, 이것은 그의 성육신 교리로 표현된다. 만약 성육신 교리가 무너지면 그것은 더 이상 기독교이기를 그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가 성육신한 하나님이 아니라면 예수는 단순히 역사상 훌륭한 윤리 교사 이상이 되지 못한다. 구 자유주의자들은 인간 예수 안에서 윤리적 표상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발트는 예수가 하나님이라는 말을 하지만, 그 신학적 맥락은 여전히 정통 기독교를 벗어난 자유주의적 이단에 불과하다.

 

6. 발트의 구원론

 

⑴ 발트의 예정론

1942년 발트는 교회교의학에서 예정에 대해 다루었다. 그것은 1936년 예정론에 대한 강연 이후 6년 만에 체계적인 신학적 진술을 시도한 것이다. 발트에게 있어서 예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그 의미가 선명하게 드러나는데, 하나님께서 자신을 버리고 인간을 선택하는 것이 드러난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단 한 분 버림받으신 분"이다. 따라서 발트의 예정론은 칼빈주의자들이 말하는 선택과 유기의 종합이 아니다. 유기되어야 할 인간 대신 예수가 버림받았다.

 

⑵ 만인화해론

예수 그리스도는 유기된 자이고, 또 선택된 자이다. 선택의 관점에서 본다면 모든 인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된 자들이다. 즉 유기된 자가 없다. 발트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오직 은총의 하나님이다. 죄인을 지옥에 보내고, 심판하는 하나님은 없다. 따라서 모든 인간은 하나님과 화해되었다. 발트는 이것을 객관적 화해론 또는 만인화해론이라고 하였다.

교회는 이 사실을 먼저 안 공동체이다. 교회는 이 선택을 증거한다. 하나님을 부인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된 자이고, 하나님과 화해된 자임을 증거하는 것이다.

 

⑶ 발트에게 구원의 의미

발트에게 구원은 죄와 사망에서 건짐 받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존재에 동참하는 것이다. 발트는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한 목적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과 교제하고, 사람을 자신의 존재에 동참케 하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따라서 그에게 구원은 하나님의 창조와 단절된 의미에서 인간의 죄와 타락이 전제된 의미가 아니다.

발트는 죄의 의미를 교만과 태만과 기만으로 설명하는데, 그 어디에서도 '역사적인 타락으로 인해 발생하는 죄'라는 의미는 없다. 따라서 인간의 죄는 인간 존재 자체가 가지는 피조성의 필연적인 결과일 뿐이다.

하나님의 존재에 동참하여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은 모든 이교 사상의 근본이라 할 수 있다. 553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오리게네스가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그 이유는 그가 신자들이 그리스도와 같이 되고, 그리스도가 된다는 주장을 했기 때문이다. 발트의 견해는 사실상 이러한 이단적 주장과 차이가 없다. 오히려 하나님의 존재에 동참한다는 견해는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범한 죄와 동일한 죄를 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⑷ 발트의 구원론 비판

발트는 전통적인 교회의 구원론을 완전히 뒤집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죄와 구원, 예정은 동일한 언어형식을 갖추고 있지만 그 내용은 완전히 다르다. 발트의 구원론은 궁극적으로 교회를 무너뜨리게 된다.

교회는 인간의 죄와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하는 동시에, 그로부터의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는 복음 위에 서 있다. 이러한 도식을 완전히 부정하고, 구원이 단순한 인간성의 고양 정도로 이해하기 때문에 복음의 성격이 완전히 바뀌었다. 게다가 세상 모두가 하나님과 화해되었다는 주장을 함으로써 사실상 만인구원론을 주장하였고, 교회가 복음을 전파해야할 이유도 상실하게 만들었다.

 

7. 발트의 창조론

 

⑴ 창세기의 창조기사의 이해

발트에게 창세기의 창조기사는 사가(Saga)이다. 사가는 문학적 성격을 띠는 이야기라는 뜻이다. 장신대 김명용 교수는 사가를 사화(史話), 즉 역사적인 이야기로 번역하고, 이것이 신화와 구분되는 의미에서 역사성을 띠는 이야기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그 ‘역사성’이라는 말에 대한 분명한 해명이 없이는 그 본질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앞에서 발트의 역사관에 대해 살펴볼 때 발트에게 있어서 성경에 등장하는 초자연적 성격을 띠는 역사는 모두 Geschichte라고 설명하였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창조의 역사성 역시나 Historie가 아니라 Geschichte이다. 발트에게는 우리가 생각하는바 역사적 창조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변증법적 논리 가운데만 존재할 따름이다.

 

⑵ 창조의 목적에 대한 이해

발트는 창조의 역사성에 대한 신학적 근거를 제시하는 대신에 창조의 내적근거가 언약이고, 언약의 외적 근거가 창조라는 말을 한다. 이 말은 언약의 실제성으로부터 창조라는 것이 변증법적으로 추론되었다는 뜻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창조의 순간을 본 사람이 없고, 역사적으로 검증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므로 그냥 그렇다고 하자는 뜻이다.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는가, 아닌가 하는 것은 발트가 신학을 전개하는데 아무런 의미도 발생시키지 못한다.

발트는 창조의 목적이 창조주 하나님이 자신의 피조물인 인간과 언약적 관계 가운데 교제를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창조함으로써 인간과의 사랑의 교제를 통해서 인간을 자신의 존재에 참여 시기키로 작정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세상은 하나님 앞에 은총의 대상이다. 인간 역시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비추어 볼 때 무한한 긍정의 대상이고, 언약의 파트너로서 왕 같은 존재이다. 따라서 인간에 대한 모든 염세적 사상은 인간에 대한 심각한 오류라고 본다. 

 

⑶ 무(Das Nichtige)

발트는 전통적 신학에서 볼 수 없는 ‘무’라는 신학적 개념을 도입한다. 무에 대한 전통적 표현은 마귀이다. 발트는 성경에 등장하는 마귀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무라는 개념이 의인화되어 등장하는 것으로 본다. 이 무는 인간의 힘으로는 결코 이길 수 없는 매우 위험하고 무서운 것이다.

발트에 의하면 무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창조사역에서 배제된 존재인 ‘무’가 창조와 더불어 존재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무에 대한 존재론적 근거를 하나님이 원치 않으시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래서 모든 존재는 무라는 비존재에 의해서 위협을 받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 무의 세력을 폐기하셨다고 한다. 죄는 무가 세상 속에 들어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양태이다.

 

⑷ 개혁 신학적 비판

먼저 발트에게 있어서 창조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는 점은 그의 신학이 역사적 기독교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창조의 목적이 인간을 위해서라는 신학적 진술은 역사적 개혁주의 신학이 고백해온 바, 창조가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라는 진술과는 대척점에 놓여 있다.

인간은 아담의 역사적 타락과 반역으로 인해 하나님과는 단절된 상태로 존재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온전하게 지으셨지만 하나님과의 언약적 관계를 인간 스스로가 파괴함으로써 발생한 역사적 사건이다.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 앞에 죄인으로서 실존한다.

그런데 발트에게는 그러한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인간은 본질적으로 하나님 앞에 의인이고, 사랑의 존재이다. 그에게는 인간의 역사적 타락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가 무라는 개념을 도입한 것은 인간의 역사적 타락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는 피조물인 인간이 가질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악이요, 실존적 현실일 뿐이다.

 

8. 발트의 종말론

 

발트에게 역사의 마지막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심판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하나의 비유적 이야기에 불과하다.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에 대한 회상이고, 적용이다. 교회가 가진 이러한 메시지를 통해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알게 되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게 되는 것이 재림의 의미이다.

발트는 자신의 교회교의학에 종말론을 포함시키지 못했다. 그가 교회교의학을 완성하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에 종말론이 그의 신학에 있어서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 명확하게 알기 어렵다. 그러나 그가 사도신경 해설을 통해 자신의 종말론의 대략을 드러내었기 때문에 그의 전체적인 신학적 그림과 더불어 그 의미를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기독교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그가 행할 역사적 심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이것을 종말론적 신앙이라고 한다면 기독교는 철저하게 역사적인 신앙이요, 소망의 신앙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발트는 기독교 신앙에서 이러한 종말론적 의미를 완전히 제거해 버렸다. 따라서 남은 것은 단순한 인본주의적 유토피아에 불과하다.

죄와 악으로 말미암아 창조의 원형을 완전히 이탈한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완전한 회복을 기대할 수 없는 기독교는 자유주의적 종교요, 메이첸이 말한바 이교에 불과하다.

 

 

Ⅳ. 발트 신학에 대한 요약적 평가

 

발트의 신학에 대한 전체적인 내용을 다루면서 역사적인 개혁주의의 입장에서 비판을 시도해 보았다. 발트가 자유주의 신학을 부수고, 정통주의를 부활시켰다는 의미에서 그의 신학을 신정통주의로 분류하는데, 과연 그러한가? 하는 심각한 의문이 제기된다. 오히려 그 자신이 이러한 용어를 혐오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자유주의를 혐오했던 것 이상으로 정통주의를 혐오했다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발트는 역사적 기독교 신앙 위에 서 있지 않다.

첫째, 그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지 않는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변증법적 행동이고, 이것은 실제 역사적이지도 않고, 인간의 언어로 표현될 수도 없다.

둘째, 그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 교리인 삼위일체 하나님을 고백하지 않는다.

셋째, 그는 니케아 신조가 고백하는 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역사적 신앙에서 이탈해 있다.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2위격으로서의 성자 하나님이 아니다. 성육신 교리도 없다. 예수는 역사 가운데 살다 죽었던 한 인간일 뿐이다.

넷째, 인간의 역사적 타락과 원죄를 믿지 않는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 무한히 긍정적인 존재일 뿐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고,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연합하는 고귀한 존재이다.

다섯째, 만인구원론을 주장함으로써,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의 은혜를 파괴한다.

여섯째,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재림과 심판을 부인한다. 그에게 이것은 하나의 비유일 뿐이다.

그의 신학을 변증법적 신학 혹은 위기의 신학이라고 표현한다. 그 이유는 자유주의 신학이 한창 인간의 위대함을 자랑하고, 그로 인해 자신감이 충만해져 있을 때, 하나님과 인간의 무한한 질적인 차이를 강조하면서 세상이 처한 위기와 비참한 현실을 선명하게 드러내었기 때문이다.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기존의 신학적 패러다임이 무너지고, 인간의 비참함이 철저하게 부각되던 현실은 발트의 신학을 새로운 돌파구로 열렬하게 받아들이게 하는 촉매제가 되었다. 그러나 발트가 정통주의 신학으로 돌아온 것은 결코 아니었다. 자유주의에 대한 반대가 정통주의는 아니다.

그는 시대에 부합하는 새로운 신학을 개진했을 뿐 우리가 추구하는 역사적 정통 신학과는 그 전제부터가 다르다. 오히려 많은 부분에서는 자유주의 신학이 사용하던 도구를 그대로 전제하면서 신학을 진행하기 때문에 자유주의와 가깝다.

특히 역사비평에 대한 긍정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근본적인 오류에 빠지게 함으로, 모든 신학이 삐뚤어지게 하는 단초가 되었다. 그는 근본적으로 자유주의에 대항할 힘이 없었다.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를 긍정할 용기가 없으므로 변증법적 논리 가운데로 도피하였다. 그의 신학이 많은 사람들에게 매력을 주는 까닭은 하나님께서 역사 가운데 행하신 이적의 역사성을 받아들이지 않아도 신학적 의미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신학을 또 하나의 자유주의 신학이요, 이교도의 신학이라고 평가한다. 발트 신학은 역사적 기독교를 허물고, 오히려 자유주의보다도 더욱 교묘한 독소를 내포하면서 자신을 위장하는 위험한 신학이다.

 

 

Ⅴ. 나가는 말

 

전 세계 개신교 신학계의 주류는 발트 신학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종교개혁 신학에 입각한 역사적 개혁주의 신학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러한 현실은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통합측 신학교인 장신대와 기장측 신학교인 한신대는 발트를 보수적인 신학자로 이해할 정도로 좌경화되었다. 그래도 같은 장로교회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으니 대화도 할 수 있고, 연합도 할 수 있지 않느냐 라고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여기서 이 글의 서두에서 다루었던 에피소드의 의미를 되새겨 보기로 하자.

코넬리우스 반틸 외 2명의 신학자들이 발트에게 공개적으로 질문했던 사건은 상당히 상징성이 있는 사건이었다. 왜냐하면 발트의 신학이 가진 성격을 단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발트는 정직하게도 자신의 신학적 입장에 충실한 행동을 보여주었다. 발트는 정통신학을 이교도의 신학으로, 정통 신학을 충실하게 따르는 신학자를 이교도로 정죄하였다. 그렇다면 답은 분명할 수밖에 없다. 발트의 신학은 정통 신학이 아니요, 이교도의 신학이다.

발트의 신학을 추종하는 장신대 김명용 교수는 우리가 정통 신학의 파수꾼이요, 신실한 믿음의 형제라고 평가하고 있는 미국 OPC 교단을 분파주의적 교단이라 평가한다. 그리고 성경비평주의와 발트주의에 반대하였던 메이첸과 반틸 그리고 그들과 함께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세웠던 교수들을 근본주의자들로 매도하고, 한국 보수 신학계의 신실한 교사였던 박형룡 박사를 악한 근본주의자로 이해한다.

같은 장로교단이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지만 신학적 인식의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이러한 차이를 무시하고 형식적인 대화와 연합은 지극히 위험한 배도행위가 아닐 수 없다.

최근 정통 개혁주의 신학을 기치로 내건 신학교에서 발트를 새롭게 바라보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그를 오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발트가 자유주의 신학을 거부하고 성경과 종교개혁자들의 신학을 면밀히 살폈던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히틀러에게 대항하고, 당시 독일의 교회를 지키기 위해 바르멘 신학선언을 작성한 것을 보면 그가 정의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외적인 것에 속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발트를 연구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이 시대의 신학을 바로 알고, 우리가 가진 정통 신학을 변증하기 위한 목적이 되어야한다. 결코 그의 신학을 배우고, 받아들이기 위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신학교는 교회를 위한 신학을 전개하여야 한다. 교회를 벗어나 인간의 이성을 우상으로 학문적 매력을 추구하게 된다면 그 때부터 신학은 교회를 파괴하는 도구로 작용하기 시작할 것이다. 발트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올바른 방향으로 이어져서 교회를 보호하는 순기능으로 나타나야 한다. 자칫 어리숙한 호기심은 교회를 혼란스럽게 만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매우 위험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개혁주의 신앙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은 결코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는 길이 아니다. 주변을 돌아보면 우리를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것으로 가득하다. 특별히 이 시대에 열광적인 발트 신학은 우리를 미혹하는 신학이다. 겉으로는 정통신학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자유주의 신학보다도 더욱 치명적인 독을 품고 있다.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적인 보편교회의 신학에 굳게 부착하지 않으면 교회는 언제 부패하게 될지 모른다. 이러한 시대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올바른 신학과 신앙을 다음 세대 가운데 온전히 상속할 수 있도록 은혜 베푸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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