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관점 학파의 율법주의 이해에 대한 비판 박동근목사

無益박병은목사 | 2014.02.18 14:27 | 조회 9128

‘새 관점 학파의 <율법주의 이해>’에 대한 비판

 

< 박동근 목사, 강변교회 협동목사 >

 

‘바울에 대한 새 관점’(the New Perspective of Paul, NPP) 학파 신학자들은 바울과 유대주의를 언약적 율법주의의 연속성 아래 놓고 종교개혁신학을 비판했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은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1세기 유대주의 정황에 조종된 해석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들은 신학의 제1원리 혹은 외적 원리로써 성경을 철저히 따르지 않고, 유대주의와 구약(정경과 그 권위)을 구분하지 못한 채 바울 신학이 언약적 율법주의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규정하였다. 따라서 새 관점의 방법론은 1세기 유대주의를 신학의 제1원리처럼 여기고 바울을 유대주의 신학자로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1. 참된 신학적 방법론에 근거하고 있는가?

 

참된 신학은 성경만이 진리의 척도라는 사실을 고수한다. 오직 바울 연구는 13권의 바울 서신 자체의 음성에 귀 기울일 뿐만 아니라 66권 성경의 유기적인 문맥과 정황 속에서, 즉 성경의 통일성 안에서 바울의 초상을 그려야 한다. 물론 바울 저작과 당시의 역사적 정황을 무시하지 말아야 하지만, 언제나 신학적 체계 구축과 결론은 성경에 의해 조종되어야 한다.

 

자신들의 방법론이 종교개혁의 대안이라 주장하는 새 관점 주의자들은 종종 조직신학과 교회의 역사적 고백들을 무시하지만, 문제는 성경신학이냐 조직신학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건전하고 타당한 신학 방법론과 해석학 그리고 주석을 통해 온전한 신학 체계를 구축하느냐의 문제이다. 새 관점 학파에 속한 톰 라이트 역시 자신의 신학 체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이는 자신의 방법론으로부터 귀결된 것이다.

 

개혁신학의 교의 체계 역시 신학적 방법론과 해석의 원리, 즉 문법적이며 역사적이고 신학적 해석를 따라 성경을 해석한 결과물들인 것이다. 따라서 종교개혁과 개혁신학은 교의 체계의 선입견 속에서 성경을 왜곡했다고 하면서 자신은 ‘오직 성경으로’의 원리를 따른다는 톰 라이트의 자화자찬은 합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양자 사이에 분명한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은 성경을 신학의 제1원리로 삼으며 성경 자신의 음성을 따라 신학 체계를 구축하였다. 그러나 새 관점은 언약적 율법주의라는 1세기 유대주의를 신학 원리와 전제로 삼아 성경을 해석하였고 성경의 일부만을 인용하였다. 그렇다면 누가 ‘오직 성경으로’의 모토를 따라가고 있는가 분명하다.

 

2. 톰 라이트의 신학적 방법론 오류

 

톰 라이트가 스스로 ‘오직 성경으로’의 실천자라고 고백한 것은 과연 정직한 진술일까? 진정 자신은 성경의 진정한 헌신자이지만, 종교개혁과 개혁주의는 교의신학의 선입견 아래 성경을 왜곡한 성경에 문외한들이었을까? 진정 개혁주의는 자신들의 필요를 위해 그리고 자신들의 체계를 위해 성경을 자의적으로 선별 인용한 사람들일까? 이와 관련해 김병훈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떤 이들은 ‘새 관점’이 성경에 대한 정직한 주석에 기초하여 제시한 것이라고 믿는 듯하다. 그들의 생각에 종교개혁신학의 ‘옛 관점’을 고집하는 것은 학문에 대한 정직한 태도가 아니며 교리의 전통 안에 갇혀 있는 잘못을 범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일까?

 

‘새 관점’의 신학적 소재에 대한 논고의 평가는 단지 성경 주석에 근거한 ‘새 관점’을 전통 신학에 근거한 ‘옛 관점’으로 제한하기 위한 노력의 일부가 아니다. ‘옛 관점’도 성경의[에] 근거한 신학이기 때문이다. 특별히 개혁신학은 철저한 성경의 역사적, 문법적, 신학적 해석의 기초 위에서 주석한 결과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점에서 필자는, 새 관점의 성경해석의 결과들과 그로부터의 신학 체계들이 성경만이 아닌 1세기 유대주의에 조종된 성경해석의 결과들로서 신학의 제1원리로서 성경 해석의 원칙을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이로부터 성경 자체의 진리를 왜곡하게 되었다고 판단한다.

 

3. 율법주의 범주 안에 있는 새 관점 학파

 

새 관점주의자들은 유대주의의 중요한 특징을 발견하고도 그러한 결론을 엉뚱하게 적용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유대주의를 언약적 율법주의, 곧 은혜로 시작하여 인간의 행위로 끝마치는 구원론적 구조를 가졌다는 사실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유대주의는 언약적 율법주의이다. 그래서 그들은 세미-펠라기안주의적 율법주의라고 불려야 한다. 바울은 이러한 율법주의적 성향을 향해 유대인을 공격했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 결론에 도달한 그들은 엉뚱한 이야기를 한다. 언약적 율법주의는 행위로 머물기는 해도 은혜가 존재하기에 은혜의 종교라는 것이다. 유대주의가 율법주의가 아니라는 것이다. 은혜가 존재하기에 율법주의가 아니라는 주장은 로마 카톨릭 유사한 은혜관을 갖는다는 것을 입증한다.

 

사실 율법주의에는 펠라기우스주의처럼 은혜를 전면 부정하는 강경한 율법주의와, 은혜와 행위를 구원의 조건으로 제시하는 세미-펠라기우스주의적 율법주의를 모두 포함한다. 그리고 이러한 율법주의 이해는 교회사 속에서 지극히 상식적인 것이다. 그러나 새 관점주의자들은 세미-펠라기안주의적 율법주의를 은혜의 종교로 여긴다.

 

무엇보다 그들은 종교개혁 무용론의 전제가 비상식적이다. 그들은 종교개혁자들이 개신교 vs. 펠라기우스주의적 로마-카톨릭과의 논쟁을 세미-펠라기우스주의적 은혜의 종교인 유대교에 대입해 바울을 오독했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로마 카톨릭은 세미-펠라기우스주의적 율법주의이지 결코 펠라기우스주의적 율법주의가 아니다.

 

이들은 종교개혁 무용론이라는 주장을 펴가면서 전혀 상식 밖에 판단을 전제로 그렇게 주장한다. 이들은 율법주의에 대한 개념을 펠라기우스주의에 너무 좁게 설정하고 한편 세미-펠라기우스주의에 너무 관대함을 표명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인간의 전적 타락과 전적 무능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의를 통해 칭의를 받을 수 없으며, 중생한 자조차 남은 죄가 있어 성령의 열매로서 행위가 칭의의 근거가 될 수 없음을 가르친다. 따라서 오직 죄인의 칭의는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오직 믿음에 의한 칭의가 하나님의 공의적 측면을 결코 약화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선물로써 하나님의 의에는 공의적 측면으로서 도덕적이고 분배적 의 개념이 확고히 전제된다. 왜냐하면 종교개혁의 ‘오직 은혜로’가 철저히 ‘오직 그리스도로’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마치는 말

 

우리가 전가받는 선물로써의 하나님의 의는 그리스도께서 철저히 죄인에게 요구되는 하나님의 분배적 의를 순종과 형벌을 통해 성취하셨기에 주어진 것이다. 즉 우리가 전가받는 의는 그리스도께서 형벌을 받으시고 순종하셔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킨 결과로 볼 수 있다. 우리에게 의의 전가는 오직 은혜이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이를 위해 대가를 치르셨던 것이다.

 

이러한 의의 전가를 부정하는 세미-펠라기우스주의는 역사 속에서 은혜의 종교로 여겨진 적이 없다. 세미-펠라기우스주의는 펠라기우스주의와 마찬가지로 모두 율법주의에 포함될 따름이다. 성경이 인정하는 은혜의 종교는 ‘오직 그리스도로’,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만’을 의미한다.

 

따라서 ‘오직’(sola)의 제거는 하나님께 영광에서의 ‘오직’(sola)도 제거하게 만든다. 그것은 하나님께만 돌려야 할 공로의 영광이 인간의 행위에 돌려지게 만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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