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에 나오는 구약 성경의 언약들 조병수 교수(신약신학, 합동신학대학원, 총장)

無益박병은목사 | 2013.08.11 08:28 | 조회 11250

신약성경에 나오는 구약성경의 언약들 

신약성경에는 구약성경과 마찬가지로 전체를 관통하는 여러 가지 사상들이 있다. 창조는 세계창조, 구원으로서의 창조, 그리고 새 창조에 이르기까지 신구약성경에서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중요한 사상이다. 물론 창조 사상은 구원과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다. 그래서 창조와 더불어 구원 사상은 성경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빈틈없이 언급된다. 타락한 아담의 구원으로부터 시작해서 출애굽, 열강세력으로부터의 구원, 그리고 영혼구원은 구원 사상이 성경에서 얼마나 일관된 것인지 잘 보여준다.

 

그런데 구원에 관한 교훈의 중심부에는 하나님의 언약이 있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시행하시는 근본적인 동기는 언약 때문이다. 타락한 인간에게 주신 구원의 약속은 점차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언약으로 명료화되었다. 그래서 성경은 왕이신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향하여 은혜 가운데 확립하신 언약을 설명하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하였다.

 

신약성경에서 언약 (diaqh,kh)이 복수로 표현되는 경우가 있다.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 (diaqh/kai)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9:4). 우선 이 구절에서 발견되는 것은 언약의 의미이다. 언약은 이스라엘 사람이 되는 것, 양자 됨 (ui`oqesi,a), 영광 (do,xa), 율법수여 (nomoqesi,a), 예배 (latrei,a), 약속들 (evpaggeli,ai)과 동일한 의미를 가진다. 이와 유사한 예가 에베소서에도 나온다. “그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 (tw/n diaqhkw/n) 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는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2:12). 여기에 여러 가지 언약들이 요약적으로 언급된다.

 

이 구절도 언약의 의미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언약은 그리스도와 관련되는 것, 이스라엘의 시민권을 소유하는 것 (politei,a tou/ vIsrah,l), 소망을 가지는 것,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가진다. 그런데 여기에서 잊어서 안 될 사실은 언약이 복수형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언약의 다양성을 보여준다. 신약성경은 구약에 여러 가지 언약이 있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신약성경이 구약에 언급된 언약들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 논문은 구약성경의 언약들에 대한 신약성경의 사상을 집약해보기 위한 시험적인 논의이다. 신약성경은 구약의 역사에 있었던 다음과 같은 언약들에 대하여 관심을 기울이는 것으로 나타난다.

1. 아담 언약

신약성경에 나타난 구약성경의 언약들 가운데 가장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은 아담 언약이다. 신약성경에서는 아담과 관련해서 언약이라는 표현이 직접적으로 발견되지 않는다. 사실 아담과 관련해서 언약이라는 표현은 구약성경도 아주 드물게 언급한다. 예를 들면, 호세아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이 패역을 행하는 것을 보면서 아담이 언약을 어긴 것과 같다고 말했다: “저희는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서 내게 패역을 행하였느니라” (ybi Wdg>B' ~v' tyrIb. Wrb.[' ~d'a'K. hM'hew> [6:7]; 참조. 31:33). 하지만 우리는 신약성경에서 아담 언약에 관해서 간접적인 암시를 발견할 수 있다.

 

아담은 신약성경에서 희소하게 언급된다. 아담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와 관련하여 (3:38) 또는 후손과 관련하여 (14) 나온다. 아담과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사도 바울의 설명이다. 언뜻 보기에 사도 바울은 아담의 범죄에 대하여 큰 관심을 기울이는 것처럼 나타난다 (5:14bis; 고전 15:22,45; 딤전 2:13,14). 이것은 아담의 범죄를 매우 애석하게 생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아담의 범죄에 대한 신약성경의 반복적인 언급은 창세기의 사건을 염두에 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신 아담에게 모든 생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시고 모든 열매를 먹을 수 있는 자유를 허락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단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2:17). 창세기적인 의미에서 아담의 범죄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것을 가리킨다.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어겼다는 뜻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에 대한 말씀은 하나님이 아담에게 주신 언약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담에 대한 신약성경의 진술에서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모형론적인 관계에서 생명과 사망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담은 후에 모든 인간에게 죽음의 원인을 제공하는 사람이 되었다 (5:12-21; 고전 15:21-22).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다 (5:1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었다 (고전 15:22). 이것은 죄가 간접적으로 유전되는 것이 아니라, 죄에 있어서 모든 사람이 아담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아담이 범죄하였을 때 모든 인류가 범죄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아담 안에 모든 인간이 이미 실질적으로 존재하였다. 아담은 인류를 대표하는 공인 (persona publica, corporate personality)이었다.

 

그런데 아담은 죽음의 원인자가 되기 전에 본래는 생명을 가지고 있는 존재였다 (고전 15:45). “살아있는 혼” (yuch. zw/sa)이라는 말은 창세기 2:7에서 빌려온 것이다 (hY"x; vp,n<). 아담은 생명을 표현하는 존재로 창조되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수식어 (“살아있는”)이다. 왜냐하면 이 수식어로 말미암아 아담은 죽은 자와 대조를 이루기 때문이다. 아담이 살아있는 존재라는 사실은 하나님과의 철저한 관계에서만 성립된다. 그 관계는 하나님이 아담에게 영을 불어넣으시고 에덴 동산에 두시어 다스리게 하실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주신 것으로 표현되었다.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아담에게 살아있는 존재임을 가장 확실하게 증명하는 방법을 제공하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관한 말씀은 아담이 살아있는 존재임을 표시하기 위한 언약이었다. 아담은 이 언약으로 자신이 살아있는 존재임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얻었다. 이 언약은 하나님의 은혜에서 시작되었고 아담의 행위로 실현될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 언약은 실현성에서는 행위언약이라고 부를 수 있지만 시발성에서는 은혜언약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아담 언약은 하나님의 은혜에서 출발한다. 이 언약은 아담을 괴롭히기 위한 명령이 아니라 아담의 고귀한 신분을 입증하는 명령이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모든 것을 허락하시고 오직 하나를 제한하신 것이다. 이런 제한으로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살아있는 존재임을 증명할 수 있는 길을 얻은 것이다. 만일에 선악과 명령이 없다면 아담이 영광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는 방법을 가지지 못한 것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아담은 이 명령에 순종함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다는 영광을 증명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아담은 듣는다는 영광이다. 선악과 금지명령은 아담이 하나님과의 관계 그 자체를 증명하는 영광이다. 게다가 하나님의 가장 고귀한 피조물인 아담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응함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속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은 아담이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살아있는 사람임을 입증하는 가장 고상한 방식이었다.

2. 노아 언약

노아 언약은 구약성경에서 중대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하나님은 홍수와 관련하여 노아에게 물리적인 구원과 더불어 언약을 세우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라” (6:18). 이 언약의 내용은 비로소 홍수가 끝난 뒤에 언급된다 (9:8-17). 언약의 대상은 노아와 노아의 후손과 노아의 모든 생물이었다 (9:8-10).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내용은 다시는 물로 땅을 심판하지 아니하실 것이라는 것이었다 (9:11). 하나님께서는 이 언약을 위한 증거로 무지개를 세우셨다 (9:12-13,17). 무지개 언약의 기능은 하나님께서 언약을 기억하시겠다는 것이다 (9:14-16). 이 언약은 하나님의 엄중한 약속이다.

 

언약은 하나님 자신이 보증이 되시는 약속이다. 이 언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노아 사이의 관계설정이다. 하나님께서는 무지개 언약으로 하나님과 노아(의 가족) 및 모든 생물 사이에중대한 관계를 설정하셨다 (9:12,15,16). 노아 언약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기억하신다는 데 주안점이 있다 (rkz, 9:15,16).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언약을 맺으심으로써 스스로 그 언약에 얽히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언약으로 자발적인 의무를 자초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노아(의 가족) 및 모든 생물은 항상 하나님의 기억 속에 머물게 된 것이다. 노아에게 물리적이며 육체적인 구원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영원한 언약”, ~l'A[ tyrIB., 9:16). 하나님과의 관계설정은 육체가 멸망의 세상으로부터 구원받았다는 것보다 더 큰 은혜였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영원한 왕이 되어주시고, 노아는 하나님께 영원한 백성이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홍수심판 전에 이미 노아로 하여금 장차 세울 언약을 기대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일시적이며 물질적인 구원의 도구인 방주와 더불어 영원하며 영적인 구원의 도구인 언약을 곁들이신 것이다. 이후에 노아 언약은 화평의 언약 (~Alv' tyrIB.)이라고 명명됨으로써 (54:9f.) 그 중요성이 다시 한번 표현되었다.

 

그런데 신약성경은 노아 언약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신약성경은 노아를 언급하면서 (24:37-39; 17:26-27; 11:7; 벧전 3:20; 벧후 2:5) 어디에서도 언약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한 곳에서 노아 언약의 의미가 넌지시 암시된다. 베드로전서에 의하면 노아의 가족 여덟 명은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 (벧전 3:20). 노아 가족의 구원을 위한 매체가 된 물은 구원의 표로서 세례를 상징하는데, 세례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찾아감 (evperw,thma)이다 (벧전 3:21). 이 단어는 계약을 맺는 것을 가리키는 전문용어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이 단어에는 언약적인 의미가 들어있다. “evperw,thma는 언약 책임에 대한 반응 또는 동의로 해석될 것이다. 이것은 베드로전서가 세례를 노아 언약과 연결되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례는 노아 언약을 회상시킨다는 것이다. 세례의 구약적인 유비는 노아의 언약이다. 노아가 홍수 후에 하나님과 언약을 체결한 것처럼 세례는 물로 하나님과 언약을 체결하는 것이다. “이 경우에 세례는 언약적 책임에 대한 인식으로 간주된다. 이렇게 베드로전서는 세례가 언약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노아 언약으로부터 도출하였다. 그러므로 노아 언약이 화평의 언약이라면 세례도 화평의 언약이다. 세례는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화평의 언약이다.

3. 아브라함 언약

아브라함 언약은 신약성경에서 자주 언급된다. 아브라함 언약은 무엇보다도 인류의 복과 관련이 있다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tw/| spe,rmati auvtou/] 세상의 후사가 되라고 하신 언약”, 4:13; 참조. 12:2; 18:18; 22:17f.). 아브라함 언약은 세상 (ko,smoj)을 대상으로 삼는 폭넓은 것이었다. 이것은 조금 더 분명하게 말하자면 아브라함에게 이르기를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를 인하여 (evn tw/| spe,rmati, sou) 복을 받으리라” (3:25)고 하신 언약이다. 이것은 율법이 오기 전에 하나님에 의해 미리 정해진 언약” (3:17)으로서 결국 이방인들이 받을 복을 가리킨다 (3:8,14). 하나님은 이것을 성취하기 위하여 아브라함에게 할례와 관련된 약속을 주셨는데 (7:8, “할례의 언약을 아브라함에게 주셨더니”; 참조. 17:9-12), 이 약속의 근본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백성이 되는 것이었다 (7:7, “이곳에서 나를 섬기리라”). 하나님께서 이 약속에 기초하여 구원을 실행하신다 (“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으니 곧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라 우리가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받고” (1:72f.). 그런데 아브라함 언약에는 몇 가지 매우 중요한 사상이 숨어있다.

 

그 가운데 첫째는 메시아에 대한 약속이다.

인류에 복을 전달할 인물은 아브라함의 후손 (문자적으로는 ”, spe,rma)인데 (3:25; 4:13), 그는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3:17,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네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아브라함 언약은 명백하게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는 것이었다. 아브라함 언약에서 그리스도는 이미 세상의 구주로 예견되었다. 그러므로 세례자 요한의 부친 사가랴는 메시아의 오심과 관련하여 아브라함의 언약을 언급했던 것이다 (1:69, 72f.,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 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으니 곧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라”). 그러므로 아브라함 언약은 메시아 예언이었다.

 

둘째로 아브라함 언약은 아브라함의 육신적 자손의 구원 뿐 아니라 이방인의 구원을 포함하고 있다.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은 언약의 자손” (oi` ui`oi. th/j diaqh,khj)이다 (3:25). 그래서 그들에게는 언약이 있다고 선언된다 (9:4). 그런데 아브라함의 언약은 이방인에게도 효력이 있다. 이방인이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것은 아브라함 언약에 근거한다. “또 하나님이 이방인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proeuhggeli,sato)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3:8).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evn)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3:14). 아브라함 언약은 이방인을 대상으로 하며 그리스도를 통로로 한다. 이런 의미에서 아브라함 언약은 선복음 (protoevangelium)이었다.

 

셋째로 아브라함 언약은 언약의 성격을 밝혀준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할례의 언약은 하나님께서 왕이 되어주시겠다는 분명한 관계설정이다 (7:8; 17:1-14). 무엇보다도 할례 언약에서 언약의 당사자들은 하나님과 아브라함 및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나타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아브라함 언약이 일방적인 언약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에 의해” (u`po. tou/ qeou/, 3:17; 참조. 17:2, “내가”). 하나님이 언약의 주체이다 (3:25, “하나님이 너희 조상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 7:8, “[하나님이] 할례의 언약을 아브라함에게 주셨더니”).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체결된 언약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의한 것이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의지나 의견이나 노력에 따라서 이루어진 언약이 아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하나님의 주권에 의한 것이다. 따라서 언약은 은혜이다. 하나님의 언약은 아브라함의 공로를 조건으로 삼지 않는다. 사람들의 언약에서는 공로를 따지지만 하나님의 언약은 인간의 공로를 따지지 않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이것은 마치 자녀가 아무 공로 없이 부모의 유산을 얻는 것과 같다. 언약의 조건은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라는 것이다 (17:1). 시간적으로 볼 때 이 언약은 노아 언약과 마찬가지로 영원한 언약 (~l'A[ tyrIb.)이다 (17:7,13). 언약의 표징은 피의 의식인 할례로 표시되었다 (17:10). 그런데 아브라함 언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언약의 내용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의 하나님이 되어주시겠다는 것이다 (17:7,8). 하나님은 영존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자손 대대로 하나님이 되어주실 수 있다.

4. 모세 언약

신약성경은 모세의 언약을 첫 언약” (h` prw,th diaqh,kh)으로 간주한다 (8:7; 9:15; 참조. 8:13; 9:1,18).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그들과 맺은 언약이다 (8:9). 여기에는 제사에 관한 여러 가지 예법들도 들어있다 (9:1). 그래서 이것은 다르게 말하자면 제사장과 관련된 생명과 화평 언약이다. “나의 언약은 그 (= 레위)와 함께 생명과 화평이 되었다” (~AlV'h;w> ~yYIx;h; ATai ht'y>h' ytiyrIB., 2:5 직역; 참조. 25:12).

 

모세 언약이 첫 언약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위에 언급한 여러 언약들과 달리 문자로 기록이 되었기 때문이다 (9:4, “언약의 판들”, ai` pla,kej th/j diaqh,khj; 고후 3:7, “돌에 써서 새긴 조문”, gra,mmata evntetupome,na li,qoij). 이런 의미에서 사도 바울은 옛 언약 (구약)과 모세의 글을 나란히 언급한다 (고후 3:14f., “너희가 구약 [옛 언약]을 읽을 때에”, “너희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따라서 옛 언약은 모세의 율법을 지시하는 말이다. 사도 바울에 의하면 이것은 새 언약과 대조가 된다 (고후 3:6). 그런데 조금 더 좁혀서 말하자면 모세의 글은 특히 십계명을 고려한 말처럼 보인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이 언약은 시내 산 언약 (19장 이하)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은 모세의 얼굴에 영광이 서려 수건을 쓴 사건을 지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후 3:7,13; 참조. 34:29-35). 다시 말하자면 여기에서 사도 바울은 시내 산 언약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시내 산 언약이 체결되는 상황 (19:3-6)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대전제로 시작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19:5f.). 여기에 약속된 것은 언약준수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소유,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 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것은 신약시대에서 완성된다 (벧전 2:9f. 참조).

 

사실상 이것은 하나님께서 출애굽을 앞두고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셨던 내용을 반복적으로 확인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6:2-9).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라” (6:7). 여기에 분명하게 언약의 내용이 표현되어 있다. 이것은 모세 언약의 요점으로서 신약성경에서 매우 중요한 것으로 부각된다 (8:10,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

 

하나님의 언약은 두 가지 내용을 담고 있다.

첫째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신다는 의미이다. 왕이신 하나님께는 언약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의무와 심정을 가진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의무는 하나님께서 왕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고 보호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심정은 이스라엘에 대한 기쁨과 만족이다.

둘째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이다. 백성인 이스라엘은 언약을 통하여 하나님을 향한 의무와 심정을 가진다. 하나님을 향한 이스라엘의 의무는 이스라엘이 백성으로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경배하는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이스라엘의 심정은 안전과 평안이다.

 

그런데 모세 언약은 아브라함 언약을 전제로 한다. “내가 ... 그들과 언약하였더니 ...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 (6:4f.; 참조. 26: 42, 45). 언약과 관련하여 하나님은 족장 시대에는 약속하셨고 모세 시대에는 성취하셨다. 하나님은 족장들의 언약을 모세 언약으로 성취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언약과 관련하여 족장시대에는 약속하시는 하나님이었고, 모세 시대에는 성취하시는 하나님이었다. 하나님은 언약을 기억하셨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과 맺으신 언약을 기억하시는 분이시다. 이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노아 언약에서 제시하셨던 사실이다.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내가 너희와 및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혈기 있는 자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무지개가 구름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땅의 무릇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된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9:15-16).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신다. 하나님은 약속을 성취하시는 신실한 하나님이시다.

 

모세 언약의 중점은 이스라엘의 신분확인에 있다. 하나님께서 언약을 기억하시는 이스라엘 백성은 어떤 상황에 있었는가?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 사람의 종이라는 신분에 처해 있었다. 애굽 사람은 이스라엘 백성을 종으로 삼았다 (6:5). 이스라엘 백성은 정상적인 상태에 있지 못하였다. 그들은 애굽에 거주하는 동안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였다.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수준에 놓이게 되었다. 이스라엘은 애굽사람의 무거운 짐 아래 놓여 있었다 (6:6,7). 이런 비참한 상태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조금의 즐거움도 얻지 못하였다. 이스라엘은 이런 비참한 자리에서 고난이 지나쳐 고통의 신음을 발하였다 (6:5).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족장들의 언약에 기초하여 모세 언약을 세우시면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소유,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 될 것을 약속하신 것이다. 모세의 언약으로 확인된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이다.

5. 다윗 언약

신약성경에는 다윗 언약이 용어로 명시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신약성경은 다윗 언약을 알고 있다는 증거를 여러 모로 많이 제시한다. 무엇보다도 다윗 언약은 신약성경에서 메시아와 관련해서 고려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관해서 천사가 마리아에게 전달한 내용은 이것을 충분하게 증명한다.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 (= 예수)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릴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1:32-33). 이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언약의 일부가 성취된 것이다.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 (^[]r>z:)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삼하 7:12-13).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집을 위하여 세우신 언약을 영원한 언약이라고 불렀다. “내 집이 하나님 앞에 이 같지 아니하냐 하나님이 나와 더불어 영원한 언약 (~l'A[ tyrIb.)을 세우사 만사에 구비하고 견고하게 하셨으니 마의 모든 구원과 나의 모든 소원을 어찌 이루지 아니하시랴” (삼하 23:5). 다윗 언약에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다 (1:1).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을 다윗을 만나니 내가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씨(spe,rma)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13:22-23). 그런데 메시아에 대한 다윗 언약은 이사야 선지자에 의하여 예언되었고 (59:20f.), 사도 바울에 의하여 확증되었다 (11:26f.,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내가 저희 죄를 없이 할 때에 저희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그런데 신약성경은 다윗 언약에 메시아 약속과 더불어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신약성경은 다윗 언약은 메시아 약속과 하나님 백성 개념을 결합시킨다. 이것은 세례자 요한의 부친 사가랴의 노래에서 분명하게 입증된다.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1:68-69). 하나님께서 다윗의 집에 메시아를 일으키신 것은 결국 그 백성을 돌보시며 속량하시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다윗 언약을 성취하심으로써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를 단단하게 결합시키셨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은 하나님에게 백성이 된다. 이것은 다윗 언약의 성취이다.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삼하 7:14). 이런 의미에서 다윗 언약은 모세 언약의 연장이다. 이 사상은 이후에도 선지자들에게서 다시 나타나면서 화평의 언약 (~Alv' tyrIB.) 또는 영원한 언약 (~l'A[ tyrIb.)이라고 불린다 (34:23f.; 37:26f.).

 

더 나아가서 신약성경은 하나님 백성을 위한 다윗 언약이 이방인의 구원과 관련되는 것으로 이해한다. 사도 회의에서 야고보는 아모스의 예언을 따라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짓는 것은 이방인의 구원과 직결된다는 것을 명시하였다. “이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15:16-17; 참조. 9:11-12). 신약성경에 의하면 다윗 언약은 종말사건을 지향하면서 하나님의 백성 (“남은 사람들”) 뿐 아니라 이방인의 구원을 예시하는 것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다윗 언약은 종말적 언약이라고 볼 수 있다.

6. 예레미야 언약 (31:31-34)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확증하신 아브라함 언약은 역사 대대로 이스라엘 백성에 의하여 파기되었다. 히브리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인용하면서 이 사실을 분명하게 지적하였다. “그들은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지 아니하였노라” (8:9).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대로 하자면 다음과 같다: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31:32; 참조. 16:59). 언약은 두 당사자 사이의 동의이므로 각 당사자는 서로 간에 동의한 조항에 따라서 행동해야 할 의무 아래 있다. 이 때문에 어떤 쪽에서든지 한 당사자가 약속한 조항을 지키지 않으면 언약은 자동적으로 파기된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에서도 언약의 당사자인 이스라엘이 조항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언약은 깨지고 말았다.

 

이 때문에 히브리서는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새 언약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을 상기시킨다 (8:8-12; 31:31-34). 히브리서가 예레미야를 통하여 이해한 새 언약이란 무엇인가? 새 언약은 언약의 당사자인 이스라엘의 마음을 치료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법을 이스라엘 백성의 생각에 두는 것이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는 것이다 (8:10; 31:33).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는 것이다.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8:12; 31:34). 새 언약은 언약을 파괴한 백성의 죄악을 용서하는 것이다. “내가 그들의 죄를 없이 할 때에 그들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11:27; 59:21). 이사야 선지자에 의하면 이 언약은 성령과 말씀으로 실현될 것이다 (59:21).

 

따라서 새 언약이란 언약의 내용을 변경하는 것이 아니라 언약의 대상을 치료하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언약의 내용에는 변화가 없다. 히브리서는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주시는 새 언약의 내용이 아브라함과 모세에게 주셨던 옛 언약의 내용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옛 언약의 내용과 새 언약의 내용은 동일하다.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 (8:10; 31:33). 이와 같은 내용은 이미 모세를 통하여 주어진 옛 언약에도 언급되었다 (참조. 6:7; 26:12). 다시 말해서 모세의 언약은 아브라함이 받은 언약에 뿌리를 두고 있다 (“나는 그들 [= 아브라함의 자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17:1-8, 특히 8).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말씀하신 새 언약은 그 당시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언약의 당사자인 이스라엘은 멸망하기까지 계속해서 마음에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대신에 이방신과 우상신을 섬겼다. 남쪽 유다는 하나님 대신에 애굽이나 앗시리아 같은 이방나라를 의지했고, 북쪽 이스라엘은 하나님 대신에 금송아지를 섬겼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계속해서 언약이 깨지고 말았다. 하나님이 언약을 깨뜨린 것이 아니라 백성이 깨뜨린 것이다. 그래서 언약에 어떤 변화가 필요하였다.

 

이런 식으로 약속관계가 계속되어서는 안 될 상황에 이르렀다. 백성이 언약을 잘 깨뜨리기 때문에 그들을 믿을 수가 없으므로, 언약을 깨뜨리는 백성을 대신하여 책임질 보증인이 필요하였다. 이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언약의 중보자로 등장하셨다.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 (e;gguoj)이 되셨느니라” (7:22). “그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 (mesi,thj)시라” (8:6). 이렇게 해서 언약에 변화가 생겼다. 언약의 내용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언약의 방식이 달라졌다. 보증인이 나서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새 언약을 이루기 위하여 마지막에 도입된 특단의 조치였다.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맺어진 언약은 하나님 때문이 아니라 백성 때문에 자주 깨어진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이 언약에 보증인이 되셨다 (7:22; 8:6). 예수께서 보증인이 되셔서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히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 이 언약은 더 좋은 언약 또는 새 언약이라고 불린다 (8:8,13). 이것은 이미 예레미야 선지자가 약속했던 것이다 (33:31-34). 더 좋은 언약 또는 새 언약이라는 명칭은 언약에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언약의 변화는 언약의 내용에 변화가 아니라 언약의 방식에 변화이다. 언약의 내용은 언제나 동일하다.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게 백성이 되리라” (8:10). 하나님은 아버지가 되고 우리는 자녀가 된다. 하나님은 왕이 되고 우리는 백성이 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전에는 언약에 하나님과 백성만이 당사자였는데,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증인으로 등장(개입)하셨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것은 더 좋은 언약이며 새 언약이다. 예수께서 백성을 대신해서 하나님께 언약을 책임진다. 하나님께서 자주 언약을 깨뜨리는 백성을 용납하시는 까닭은 언약의 보증과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이다. 지금도 성도들은 구약성도들과 별로 다를 바 없이 자주 황금우상을 섬기고 세상권력을 의지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구약성도들에게처럼 그렇게 진노를 내리시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 까닭은 신약성도들이 구약성도들보다 더 낫기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의 보증과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시고 백성을 받아들인다. 하나님께서 언약을 지키시는 것은 백성 때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때문이다. 백성이 언약을 지키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참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증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어떤 방식으로 보증과 중보자가 되셨는가? 예수는 자기의 피로 언약의 보증과 중보자가 되셨다 (9:12,14; 10:19; 13:12). 예수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죽으셨다. 그래서 이것은 언약의 피라고 일컬어진다 (9:20 [24:8]; 10:29; 13:20). 언약의 피 사상은 멀리는 모세 (24:8)와 스가랴 선지자 (9:11)에게 기초하고 있으며, 가깝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만찬에 기초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마지막 만찬에서 대속적인 죽음을 위하여 흘리는 피를 가리켜 언약의 피라고 불렀다 (26:28; 14:24). 예수께서는 이것을 새 언약으로 이해했다 (22:20; 고전 11:25). 예수의 죽음은 언약을 성취하는 방식에 변화를 일으켰다는 점에서 새 언약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언약의 피로 실현된 새 언약은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26:29; 14:25와 눅 22:18에서는 하나님 나라”). 예수께서 흘리는 언약의 피가 하나님 나라와 연관된다는 점에서 새 언약은 옛 언약과 내용에 있어서 차이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옛 언약은 하나님이 왕이 되시며 이스라엘이 백성이 된다는 요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그 자체로 하나님 나라의 기본골격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예수의 언약의 피로 실현된 새 언약이 하나님 나라와 관련된 것이라면, 거기에도 하나님의 왕 되심과 신자의 백성 됨이 요점을 이룬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새 언약은 방식에 있어서는 변화가 있지만 내용에 있어서는 변화가 없다.

 

마치 땅에 있는 성소에 언약의 법궤가 있었듯이 (9:4), 하늘에 있는 성전에도 언약의 법궤가 있다 (11:19). 이것은 언약이 영원히 존재하며 효력을 발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언약의 내용에는 마지막까지 변화가 없다.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21:7; 참조. 21:3). 이런 점에서 볼 때 옛 언약은 이미 종말론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백성을 위해서 하나님께 언약의 보증과 중보자가 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언약의 중보자가 되심으로써 언약의 당사자인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화평이 이루어졌다 (참조. 2:14). 이런 의미에서 예수의 언약의 피로 이루어진 새 언약은 화평의 언약 (~l'A[ tyrIb.)이었던 노아 언약 (54:9f.), 모세 언약 (25:12; 2:5), 다윗 언약 (34:25; 37:26)의 성취라고 부를 수 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을 위해서 십자가 위에서 자기의 피를 흘리시고 자기의 살을 찢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심판을 하지 않도록 보증이 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언약을 위한 가장 확실한 보증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이것은 가장 어리석은” (mwro,j) 보증이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밥 먹듯이 깨뜨리는 백성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보증이 되신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다. 예수께서 백성을 위한 보증이 되기 위해서 피와 살을 내주신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유한하고 일시적인 인간을 위하여 무한하고 영원하신 예수께서 보증이 되신 것이기 때문이다. 부정하고 불결한 사람을 위해서 깨끗하고 순결하신 예수께서 보증이 되신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먼지보다도 못한 인간을 위하여 하늘보다 높으신 자가 보증되신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벌레와 같은 존재인 사람을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보증이 되신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처구니없게도 스스로 이런 어리석은 보증인이 되셨다. 우리의 구원은 이렇게 놀라운 것이다. 우리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리석은 보증이 되어주심으로써 너무나도 안전하며 확실하다. 비록 우리가 연약해서 자주 넘어지고 실패하고 좌절해도 우리의 구원은 안전하고 확실하다. 영원하시며 순결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한 보장이시기 때문이다.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느니라” (25). “그가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느니라”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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