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파노라마 김성수교수(구약신학,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無益박병은목사 | 2012.12.03 21:25 | 조회 9600

요한계시록 파노라마

요한계시록하면 우선 난해한 책이라는 선입관이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께서 환난 중에 있는 교회들에게 어려움을 주고 애를 먹이기 위해서 계시록을 주셨겠습니까? 그것은 계시록 자체가 난해해서라기보다는 접근이 잘못되었기 때문으로 여겨집니다.

<성경해석의 중요성>

성경해석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관점(觀點)입니다. 같은 성경이라도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과 의미가 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뜻에서 계시록 만큼 구속사(성경신학)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만 바르게 파악할 수 있는 책도 달리는 없다 하겠습니다. 계시록에는 많은 상징들과 예언들과 묵시들이 있습니다. 이들 가운데 어떤 부분은 난해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런 부분적인 문제들은 결정적으로 어려움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계시록을 통해서 교회를 위로하고 격려하시고자 하는 중심적인 주제에는 별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1:1) 이렇게 시작됩니다.

이는 주님께서 계시하여 주신 것이라는 뜻이 있습니다만, 이것이 전부라면 하나님의 계시라하는 것이 더 바른 표현이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1)하고 계시의 주체(主體)가 하나님이심을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말씀 속에는 보다 더 계시록의 중심주제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는계시라는 의미가 함의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의 계시라 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점을 왜 강조하고 있는냐하면 계시록의 중심주제가 인 재앙,나팔재앙,대접재앙,”과 같은 심판 시리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서에서 이루어 놓으신 구속사역에 대한 완성이 중심 주제임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그 한 예를 들면 2-3장에서만 주권이 주님에게 있음을 나타내는 , 또는 내가라는 말이 무려 58회나 등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계시록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강력한 증거인 것입니다.

1. 계시록의 중심주제

계시록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어린양으로 부르고 있는 이유가 복음서와 연관시키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은 복음서에서 주님을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1:29)하고 증거 했습니다. 그런데 계시록에는 어린양이라는 말이 무려29회나 등장합니다. 그 어린양은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5:6,9)하고 죽으심을 강조합니다. 만일 죽으심과 결부시키기 위함이 아니라면 주님을 결코 어린양이라고 부르지를 않았을 것입니다.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1:18)하십니다.

누구를 위한 죽으심인가?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해방하시고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1:5-6,5:9)삼으시기 위해서라고 말씀합니다.

주님은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1:18)하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 전에 죽으심이라는 과거사역이 요한복음이라면 계시록은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1:18)하신 현재사역과 미래사역을 계시해주고 있다 하겠습니다. 이는 마치 누가가 복음서를 기록한 후에 속편으로 사도행전을 기록한 데 비할 수가 있습니다. 요한은 복음서에서 주님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까지 만을 증거 했습니다. 그 이후의 주님 사역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 계시록의 증거인 셈입니다. 계시록에서 주님은 다른 사역을 하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이루신 구속사역을 완성해나가고 계시는 것입니다.

2. 계시록에서의 주님 사역

요한은 복음서의 기록목적을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20:31)하고 구원에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계시록의 기록목적 다시 말하면 구도(構圖)을 보면,

죽으시고 다시 사신 주님께서(1:18)

② "오른 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면서”(2:1)

교회를 향하여 일곱 번이나 이기는 자는 이기는 자는”(2:7,11,17,25,3:5,12,21)하고 격려하시는 것으로 시작해서는

계시록 마지막에 가서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21:7)하시는 구도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계시록의 가운데 부분은 누구하고 싸워서 어떻게 이길 것인가? 를 계시하시는 내용인 셈입니다. 그러므로 중간에 나오는 12:11절에서는 또 여러 형제가 어린양의 파와 자기의 증거 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하고 승리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시록을 관찰해보면 예수의 증거”(1:2,1:9,6:9,11:7,12:11,17,19:10,20:4)가 중심주제 중 하나임을 보게 됩니다

계시록의 일차 독자들인 초대교회가 순교와 박해를 당한 이유도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6:9)때문이요

요한이 밧모 섬에 유배을 당한 까닭도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1:9)

11장에서는 두 증인이 증거 하다가 죽임을 당하는 장면이 나오고 (11:7)

계시록에 등장하는 형제들도 어린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12:11)죽음을 무릎쓰고 이기고 있으며

20장에서는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들”(20:4)이 왕 노릇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3.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싸움

2,000년 전에 기록된 계시록이 현대교회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여기에 중요한 요점이 있는데 그것은 주 하나님의 자기계시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1:8)라고 하십니다. 요한도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오실 이”(1:4)라고 증언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의도가 어디에 있을까요? 이렇게 말씀하심은 계시록을 주신 주 하나님은 이제도 우리와 함께 계시고 전에 있던 성도들과도 함께 계셨으며 장차 있을 성도들과도 함께 계시는 하니님이심을 깨닫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계시록의 내용들이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진행주이며 미래에 대단원을 이루게 될 내용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계시록이 오늘의 교회에 적용되는 접촉점이 있는 것입니다.

이 점을 왜 강조하느냐 하면, 계시록을 재림 직전의 짧은 기간에 되어 질 일로 보는 관점 때문입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계시록을 분류할 때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하신 1:19절에 근거하여 1장은 과거(본 것), 2-3장은 현재(이제 있는 일), 4-22장은 미래(장차 될 일)에 되어 질 일로 구분합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요한이 본 것이란 과거의 일이 아니고 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있는 일곱별의 비밀과 일곱 금촛대라”(1:20)하신 일곱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주님의 현재 사역인 것입니다. 주님은 세상 끝 날까지 오른 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에 다니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4-22장까지의 내용도 종말의 어느 짧은 기간에 되어질 일이 아니라, 주님의 초림으로부터 시작하여 재림하심으로 완성될 그 날까지 교회들이 선한 싸움을 싸워야할 내용들인 것입니다.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고 장차도 있을 일 이를 무시한다면 계시록의 1차 독자들인 초대교회 성도들은 물론 그 이후로 2,000년 여 간을 살아온 성도들에게 계시록은 무관한 말씀이 되고 맙니다.

그렇지가 않습니다. 12장에 등장하는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12:9)자란 전에도 있었으며 이제도 맹활약을 하고 있으며 장차도 발악을 하다가 불 못에 던짐을 받게 될 존재인 것입니다. 말씀하시는 순서를 주목해보십시오. “전에도 있었고 이제도 있고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1:8,4)하고 이제를 우선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성도들의 시간은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3:13)하신 대로 언제나 오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계시록을 단편적(斷片的)으로 볼 것이 아니라, 창세기에서부터 계시록까지 뻗쳐있는 구속사라는 통일성과 점진성의 맥락에서 해석해야만 혼란에 빠지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 점을 인식한다는 것은 계시록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요점이 됩니다. 만일 그렇게 보지 않는다면 우리들에게 계시록은 공허한 것이 되고 맙니다.

또 하나 주목해야할 점은 보좌입니다 44회나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보좌와 일찍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 계시록의 중심 축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는 메시아 예언의 선지자로 불리는 이사야서의 중심주제이기도 합니다. 이사야서의 중심장은 6장과 53장입니다.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이사야 선지자는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신”(6:1)이를 보았습니다 이는 지상의 왕위는 갈리어도 세상 나라를 통치하시는 하늘 보좌는 영원하심을 계시하는 환상이었던 것입니다. 또한 53장에서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세상 죄을 지고 가는 어린양을 보았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서 어린양의 대속적인 죽음을 통해서 구원사역을 이루실 것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이는 이사야서뿐만이 아니라 성경 전체의 중심적인 주제입니다.

그런데 계시록에서 이 두 주제가 함께 만나고 있음을 대한 다는 것은 감격스러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통일성과, 일관성과, 점진성을 통해서 묵묵히 구속사역을 이루어 나가시는 하나님의 주권과 신실하심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5:13)합니다. 7:10에서는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합니다. 마지막22장에서는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22:3)하고 구원사역이 완성됨을 말씀합니다.

4. 하나님의 나라건설

하나님께서 성경 전체를 통하여 일관되게 추구해오신 목표(目標)가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장막과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21:3)하신 함께 거하심즉 하나님의 나라건설입니다. 그런데 21장에 이르러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21:3)하고 함께 거하심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과 함께 거하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죄가 에덴에 침입하므로 인간은 하나님 존전에서 추방을 당하게 되었고 하나님과 함께 거함은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구원사역 즉 하나님의 나라건설이란 함께 거하심을 회복하는 역사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의 노예였던 야곱의 자손들을 유월절 양의 피로 구속하여 내신 후에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지으라”(25:8)고 명하십니다. 그러나 그 성막은 중간이 굳게 막혀있었습니다. 이는 참 것의 그림자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때가 찬 경륜 가운데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1:23) 하신 임마누엘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는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20:28)로 주심으로 중간에 막힌 휘장을 제거하셔서 함께 거하심을 가능하게 이루시기 위해서 인간 세계에 오심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19:30)고 선언하십니다. 그리고 계시록에서는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서이루었도다”(21:6)하고 선언하심으로 함께 거하심이드디어 완성되는 것입니다.

5. 알파와 오메가 시작과 끝

그러므로 계시록에는 열쇠와 같은 말씀이 세 번 등장합니다. 그것은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는 말씀입니다.

22:13에서는 이 말씀이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하는 약속과 결부되어 하신 말씀입니다. 부활 승천하신 주님께서 만일 다시 오심이 없다면 주님은알파는 되시나 오메가는 되니 못하는 것이요, 처음은 되시나 나중은 되지 못하는 것이요, 시작은 되시나 끝은 되지 못하는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자기 계시를 통해서 반드시 다시 오실 것을 확신시켜주셨던 것입니다.

21:6에서는 이루었도다하는 완성과 결부되어 하신 말씀입니다. 만일 시작만 하시고 이루심이 없다면 하나님은 알파는 되시나 오메가는 되지 못하는 하나님이 되고 말게 될 것입니다. 아닙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33:2)이십니다. 바울은 이를 믿었기에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1:6)하고 격려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1-3장과 계시록 20-22장은 절묘한 대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함께 거하심을 파괴했던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불과 유황불에 던지우니”(20:2,10)합니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하십니다. 이는 파괴당하였던 것을 다시 회복하시고 반드시 완성하실 것을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이보다 광대(廣大)한 말씀이란 달리는 없습니다. 이는 계시록에 있어서 보다 중요하고, 귀중하고, 분명한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보다 분명한 진리를 통해서 계시록은 해석되어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계시록에서 지엽적인 문제에 한 눈을 팔 것입니까? 또한 계시록은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낮에서와 어린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오라”(6:16)하는 진노가 있을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원하심이 있는 어린양에게 어찌하여 또한 진노가 있단 말인가? 이 진노는 누구에게 임할 것인가?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의 손에 갚으셨도다”(19:2)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심에 있어서 이를 대적하는 자들에게 임할 불가피한 심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명심해야할 점은 계시록은 일곱 인, 나팔, 대접으로 상징 된 진노에 중심이 있는 책이 아니라 구원하심에 있음을 명심해야만 합니다. 계시록에서 어려움을 겪게 되는 상당부분이구원하심과 결부된 것이 아니라진노하심가 결부 된 호기심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의 세부사항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가 아니요”(1:7)일 수가 있습니다. 그것들보다 더 중요하고 알고 싶은 주님 재림의 때도 성경은 침묵하고 있지 않습니까? 주님은 마지막 장에서 속히 오리라는 약속을 세 번(22:7,12,20)이나 하십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22:7)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시록을 부지런히 증거하여 지키게 할 책임이 있습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22:12)하십니다. 구원은 선물이지만 상 은그의 나라를 위하여 충성한 대로 주어지는 보상인 것입니다.

7.“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22:20)."

이것이 계시록에 있어서 주님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우리도 아멘주 예수여 오시옵소서하고 화답하게 됩니다. “구속사의 관점에서 본 요한계시록은 여기에 초점을 맞추어 상고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노라면, 계시록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고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1:18), 즉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위로와 격려와 축복을 공유(共有)하게 될 것입니다.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16개(1/1페이지)
신약신학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16 새 관점 신학 원광연목사 無益박병은목사 1865 2020.06.13 13:00
15 "천국상급" 이란 무엇인가? 우병훈교수 無益박병은목사 1841 2020.05.12 14:35
14 교회의 특별 임시 직분 사도 (使徒, Apostles) 고 경태 목사 無益박병은목사 4518 2017.03.25 17:38
13 "새관점"에 대한 간략 보고 고경태 목사 無益박병은목사 7617 2015.07.05 10:07
12 마지막 때의 경건을 위한 바울의 교훈 딤후 3:12-17을 중심으로 이복 無益박병은목사 9343 2014.07.11 16:13
11 요한계시록과 그리스도의 강림 계 12-14장 환상을 중심으로 오광만 목사 無益박병은목사 8606 2014.07.11 16:08
10 신구약 계시의 통일성과 경륜의 차이에 대한 소고 배현주 목사 無益박병은목사 7940 2014.02.18 14:39
9 이신 칭의는 개신교의 교리적 면죄부인가? 황대우 목사 無益박병은목사 7338 2014.02.18 14:28
8 새 관점 학파의 율법주의 이해에 대한 비판 박동근목사 無益박병은목사 9128 2014.02.18 14:27
7 바울에 대한 새 관점, 무엇이 문제인가? 이승구 목사 無益박병은목사 7770 2014.02.18 14:25
6 히브리서와 성경 신학의 중심으로서 언약사상 Jeffrey Fisher 無益박병은목사 9825 2013.12.30 00:07
5 신약성경에 나오는 구약 성경의 언약들 조병수 교수(신약신학, 합동신학대 無益박병은목사 11250 2013.08.11 08:28
4 하나님을 말하다 (요한복음 4:19-26), 조병수 교수(신약신학, 합동 無益박병은목사 7903 2012.12.04 11:32
3 하나님 나라를 말하다 (요 3:1-8), 조병수 교수(신약신학, 합동신학 無益박병은목사 7899 2012.12.04 11:26
>> 요한계시록 파노라마 김성수교수(구약신학,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無益박병은목사 9601 2012.12.03 21:25
1 방언에 대한 이해 이광호박사(고려신학대학원) 無益박병은목사 8936 2012.12.03 20: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