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강해 25> 십계명 13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요일 5:3-5; 골 6:2

無益박병은목사 | 2018.02.11 07:58 | 조회 641

* 제목: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 본문 요일 5:3-5; 6:2 Feb 4 2018

 

그동안 신명기를 공부해 오면서 십계명을 다루어 왔습니다. 이제 십계명을 마감하고자 합니다. 여기서 고민하게 되는 것은 이 열 가지 계명을 다 지킬 수 있는가하는 문제입니다. 과연 이 계명들을 완벽하게 다 지킬 수 있는가? 다 못 지킬 것 같다면 어떻게 하면 다 지킬 수 있을 것인가?

 

1. 과연 십계명 준수가 가능할까요?

본문 말씀을 다시 한 번 더 읽어 봅니다.

* 요일 5:3-5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사실, 십계명은 인간이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반드시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법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요구이십니다. 그런데 살펴 본바와 같이 이 모든 계명들을 준수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말씀은 우리들에게 계명 준수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과연 어떻게 하면 이 명령을 준수할 수 있겠습니까?

 

1) 요리문답의 가르침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이 주제를 다루면서 두 가지 질문과 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질문 114 하나님께 회개한 사람이라면 이 계명을 완전히 지킬 수 있습니까?

답변 그렇지 않습니다. 가장 거룩한 사람이라도 이생에서 조그만 순종을 시작 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의 일부분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지키려는 엄숙한 목적에서 시작합니다.

 

질문 115 아무도 이 세상의 삶에서 지킬 수 없다면, 왜 하나님은 십계명을 아주 엄격하게 지키도록 명하셨습니까?

답 첫째, 우리가 일생동안 우리의 죄의 본성을 점점 더 느끼게 되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죄의 용서와 의를 더 열심히 추구하게하기 위한 것입니다. 둘째, 우리가 계속적으로 열심히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성령의 은사를 얻어 이생이 완전한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 하나님의 형상 안에서 더욱 더 새로워지기 위해섭니다.

 

2) 문제는 탐심이다.

인류는 바로 이 탐심을 부축인 마귀의 꾐에 빠져 타락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처럼 되려는 욕망이었고 탐심이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탐심의 노예가 되어 타락한 마음으로 지속적으로 온갖 탐심으로 가득 차 있는 상태로 살아갑니다. 이 탐심의 경향성은 거듭난 자라 할지라도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완전하게 구원을 완성해 주실 때 까지 없어지지 않고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들은 반드시 나의 이 마음의 탐심의 경향성을 인식하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항상 이 탐심을 경계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래서 다음과 같이 경계했고,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히브리서 기자는 더욱 구체적으로,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6:4-6).” 라고 강하게 경계하셨습니다.

3) 과연 탐심을 없앨 수가 있는가?

탐심이란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여기지 않고 자기 스스로 모든 것을 차지하려는 주관적 욕망이라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죄로 향하는 마음의 경향성에 대하여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각양 탐심을 이루었나니,”(7:8) 라고 설명합니다. 이 말씀은 탐심의 발생 원인으로 자기중심지향적인 인간의 마음속에 죄가 작동함을 꼽습니다.

 

이러한 악한 인간의 욕망은 그 대상을 가리지 않고 작용한다. 그것이 물질이던, 금융재산이든, 사람이든, 사회적 위치든, 모두 자기가 가지려는 끝없는 욕망을 그 무엇으로 막을 수 있겠습니까? 동물은 자기 먹을 만큼 먹으면 더 이상 음식에 욕심을 내지 않지만,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배가 부른 데도 불구하고 끝을 모르는 욕망에 사로잡힌 탐심에 묶여 노예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 결과는 탐욕으로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이 끌려 숫한 죄를 저지르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사람의 이 끝없는 탐욕은 우상숭배라고 정의를 내렸던 것입니다(3:5).

 

요리문답 114문에서 이러한 욕망은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회개하여 돌아온 사람이라 할지라도 과연 이 10번째 계명을 지킬 수 있겠는 지 묻고 있습니다. 그 답은 설령 거듭난 하나님의 사람이라 하더라도 완벽하게 말씀을 준수할 수는 없다고 단언할 수밖에 없다. 단지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은 그저 그의 삶 속에서 단순히 말씀에 순종하려는 시도를 할 뿐 이다!” 라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인식은 이 10계명 전체를 어떤 사람이 다 지킬 수 있는 지를 되묻지 않을 수 없게 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사람이 다 지킬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런데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모든 계명에서 요구하는 것은 행위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임을 감안 할 때, 아무리 거듭난 하나님의 사람이라 할지라도 모든 계명을 다 완벽하게 지킬 수는 없다는 것이 바른 답일 것이다(참고 마 5:28).

 

우리 주님께서는 바로 이 점을 지적하셔서 모든 죄에 대한 마음의 문제를 먼저 심각하게 살펴 볼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어 봅니다.

* 21: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러한 사도의 경고성 발언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험하고, 또한 천국 백성으로서의 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도 마음이 깨끗해야만 하나님을 볼 수 있을 것(5:8) ‘이라는 말씀을 기억하게 됩니다.

 

이러한 인식에서 이 세상의 그 어떤 사람도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탐심을 완벽하게 물리칠 수 있는 사람은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을 짐작하게 됩니다. 그러나 거듭난 하나님의 사람들은 성령의 역사 가운데 마음을 깨끗이 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예민한 기능을 발휘하게 되므로 그는 그 계명을 준수하려는 시도를 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시도는 단순히 종교적이고 행위적인 그 어떤 대가나 보상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기쁨과 감격을 깊이 느끼며 그 구원의 진리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받아드리게 됩니다.

 

그는 겸손히 주의 계명에 대한 존중과 사명으로 주께서 요구하시는 바를 꾸준히 시도하려 할 것입니다. 이러한 인식은 결국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들은 십계명의 모든 조항을 다 준수하여 그 대가나 보상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닌 줄 분명히 알고, 비록 완벽하게 계명들을 준수하지는 못하지만, 오직 받은 은혜 가운데 순종하려는 부단한 노력을 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사도 요한은 이 점에 대하여 거듭난 성도가 어떠한 자세로 십계명들을 지켜갈 수 있는 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본문 요일 5:1-4의 말씀입니다. 즉 율법주의자들과 같이 계명의 문자적인 준수를 위하여 부단한 노력 즉 수행을 쌓아 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 계명을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한 자가 받은 사랑에 감사하여, 주의 계명을 자신의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준수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는 이러한 계명 준수의 명령은 법적 구속력을 갖는 것이기에 지켜야 한다는 데 중점을 두기 보다는 자신의 마음이 어느 방향으로 기울어지는 지를 살피는 것에 더욱 신경을 쓰며 계명을 깊이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으로부터 당연히 받은 구원의 은혜를 가장 중요한 요소로 인식하여 그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보답하는 마음으로 계명들을 대하는 자세이며, 삶 속에서 지켜 나가도록 힘쓰는 것이 믿음의 삶인 것입니다. 이 점에서 이 요한 사도의 말씀은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들을 격려하시는 차원에서 주시는 말씀이라 하겠습니다. 그래서 열 계명은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들에겐 결코 무거운 계명들이 아닌 것이라고 말입니다.

 

2. 십계명을 주신 두 가지 의도

요리문답 115 질문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완전히 지킬 수도 없는 십계명인 줄 아시면서 왜 명령하셨을까라고 묻습니다.

 

첫째, 죄인의 본성을 고백하라는 것이다.

사실 법이 있음으로 해서 죄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그 법은 아무리 인간이 노력을 하더라도 완벽하게 지킬 수 없음을 절감하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점을 절감했기에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 7:14-24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내가 이로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은 행하는 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이 말씀에서 사도 바울의 영적, 신앙적 고민과 심각한 갈등을 엿볼 수 있습니다. 사도는 자신이란 존재의 한계점을 분명히 보고 있습니다. 얼마나 당당하고 자신만만하였던 사울이 아니었습니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그는 성령의 도우심 가운데 율법의 실체를 파악하게 되었고, 아울러 그 율법의 요구를 받아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끊임없이 애쓰며 살아가는 자신의 실체를 볼 때, 자신의 한계점을 인식하기 시작했고, 그 끊임없이 반복되는 지루한 과정과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자신의 유한성과, 이를 이루기 위하여 행하는 자신의 위선적인 모습을 발견하고 절규했습니다.

 

그는 율법 앞에서 악의 세력과 선을 추구하는 자신의 신앙양심세력이 자기 마음속에서 극한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상황을 철저하게 인식했습니다. 그는 이 갈등의 막다른 정점에서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자신의 한계점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절규했고 그 불가능한 자신의 한계점으로부터 구원해 줄 그 어떤 외부로 부터의 구원자를 간절히 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바울의 진실한 고백의 결론에 큰 충격을 받습니다. 그는 자신의 속사람이 즐거워하는 신앙양심의 법과 자기 속에서 좌지우지하는 악의 세력 간의 심각한 싸움이 있는데 결국 선을 추구하는 양심의 법이 악을 추구하는 죄의 법 아래로 굴복하는 한계점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러한 악을 추구하는 자신의 죄의 경향성을 보면서 심히 괴로워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이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유는 바로 인간 스스로는 도저히 하나님의 법을 지킬 수 없는 악한 죄를 향한 경향성을 갖고 있어서 그 어떤 신앙양심도 그 죄의 경향성을 이길 수 없는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임을 증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가 절실히 필요한 지를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은혜가 우리를 구원하시는 유일한 근거요, 능력이요, 그리고 유일한 소망인 것입니다.

 

바울은 이 정도로 연약한 자신임을 고백하면서, 그러한 존재에 불과한 자신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받아 자유로운 하나님의 자녀라는 존재가 되었던 지를 고백하며 감사와 찬양을 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이 놀라운 감격과 그로 인하여 예수 안에서 승리한 감격을 이 이상 그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 7:25-8:2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둘째, 성령의 은사를 더욱 사모하게 된다.

사도 바울의 솔직한 고백은 자신이란 존재는 스스로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는 나약하고 죄 된 존재임을 선언하는 것이며,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동력은 인간의 그 어떤 노력으로 될 수 없고 오직 성령의 역사하심으로만 가능함을 깨닫고 철저하게 그리고 간절히 성령을 사모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 8:3-9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사도 바울이 터득한 영적 원리는 오직 성령 하나님의 역사만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의 자존심을 내세워 준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시므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는 육신의 온갖 요구를 버리게 되고, 생명과 영생을 추구하므로 얻게 되는 참된 평안을 누리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성령의 역사이며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의 택하신 자녀에게 주시는 구원의 은혜입니다. 이로써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기의 의에 사로 잡혀 살아가는 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자로서 그 은혜에 감사하며 지속적으로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을 사모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3.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기 위하여

우리 주께서는 당신이 이 땅에 육신의 몸으로 오신 이유를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5:17)라고 밝히셨습니다.

 

과연 어떤 방식으로 율법을 완전하게 하신 주님이십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앞에서 살펴 본 대로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성도들의 인생과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완수할 수 있도록 역사하시는 방식이었습니다.

 

사실 인생은 거듭난다 해도 여전히 죄 가운데 영향을 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이미 바울의 경우를 통하여 확실하게 확인한 바입니다. 결국 우리는 모든 정욕과 욕망, 그리고 욕심과 탐심 가운데 빠져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인 것인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에게 율법이 요구하시는 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사도 바울의 명령을 살펴봅시다.

* 6:1-2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고백한다는 것은 나란 존재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구원이 이루어진 존재임을 인식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인식을 하며 살아가는 자에게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나타나게 됩니다.

첫째, 그는 율법을 온전하게 성취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주님을 온전히 믿는다.

둘째, 그는 구원의 진리를 성령의 역사로 깨닫고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줄을 믿는다.

셋째, 그는 주께서 완성하시는 율법의 법 즉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여야 할 의무를 믿는다.

 

사도 바울은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은 존재이기에, 그리스도께서 이미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심을 기억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 이유는 성도는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살아난 존재이며, 예수와 연합한 존재로써, 이미 부활 승천하여 가 계신 하나님 보좌 우편! 바로 그 자리에 주님과 함께 가 있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성도는 마땅히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아야 합니다. 이 또한 육적 존재는 이미 죽었고 영적 생명은 천상의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도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참고 고전 6:1-6; 2:5-6),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래서 다음과 같이 강력하게 권면합니다.

* 3:1-6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죄 가운데 정욕에 따라 온갖 탐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복음 진리로 거듭나게 역사하셨습니다. 이 성령의 역사로 놀라운 영적 변화를 겪은 존재임을 깨닫고 있는 하나님 나라 백성들은 당연히 그 나라의 완성을 바라보게 되게 마련입니다.

 

그는 이미 죽은 목숨으로서 이 세상에서 멸망을 향하여 갈 수밖에 없는 절망스러운 자리에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완전히 변화된 자로서 불러주신 그 분의 목적을 위하여 살아가는 존재임을 철저하게 인식하고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는 날마다 자신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알기 위하여 지혜와 계시의 영을 구하고, 불러주신 분의 나를 향한 소망과 장차 성도로써 기업의 충성한 영광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하여 나의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기를 간구하며 성령의 강력한 힘을 알기를 원하는 기도를 드려야 할 것이다(1:15-17)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더욱 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기를 간절히 소원하며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3:17-19)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거듭나 하나님의 거룩한 공동체를 이루어 가는 성도는 율법이 요구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율법을 완수할 뿐만 아니라, 더욱 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 나라의 완성을 바라보고 이 땅에서 주어진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일꾼이 되기 위해 매진하려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는 택하신 주님의 목적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2:14).”고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 이로라.(고전 9:24-27)”라고 스스로 항상 마음 깊이 자신의 구원의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면서 오직 장차 주어질 미래적 사실 즉 위엣 것을 추구하며 자신의 남은 인생을 투신하는 삶을 살아갔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율법의 어느 한 조항을 이루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자신을 구원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거듭난 자로서의 은혜에 대한 감사요 고백이요 의리요 충성과 헌신 그 자체인 것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가 십계명의 그 어느 한 조항의 준수 여부에 마음 쓸 것이 아니라, 완벽하게 거듭나게 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확인하고, 오직 신실과 충성으로 선한 사업에 전심을 기우려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명하신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며 따르는 자의 모습이라 믿습니다.

* 3:12-14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바라기는 사도 바울과 같이, 우리 모두의 인생의 순례 길에 이러한 자기 점검과 격려 그리고 분발로 예수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기를 소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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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0 <신명기강해 41> 절기 속에 담긴 구원의 진리 레위기 23 無益박병은목사 230 2018.06.24 18:58
329 <신명기강해 40> 세 차례 내게 보이라 신명기 16:16-1 無益박병은목사 232 2018.06.17 21:43
328 <신명기강해 39> 속량하셨음을 기억하라 신명기 15:4~ 無益박병은목사 232 2018.06.10 22:03
327 <신명기강해 38> 하나님을 사랑하는 여부 신명기 13:1 無益박병은목사 367 2018.06.03 19:34
326 <신명기강해 37> 주께서 거하시는 곳에서 신 12:5-7 M 無益박병은목사 347 2018.05.28 00:17
325 <신명기강해 36> 복과 저주 사이에 신명기 11:26-29 無益박병은목사 474 2018.05.20 20:44
324 <신명기강해 35> 행복한 가정을 이루려면 신명기 11:1 無益박병은목사 430 2018.05.13 23:34
323 <신명기강해 34>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신 10:1 無益박병은목사 492 2018.04.29 23: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