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91, 2021년 신년> 현재의 고난, 우리의 소망 롬 8:18~25 1-3-2021

無益박병은목사 | 2021.01.03 22:32 | 조회 313

* 제목: 현재의 고난, 우리의 소망 * 본문: 로마서(Rom) 8:18~25 1-3-2021

 

2021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올 한해도 우리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가 여러분과 가정 그리고 우리가 섬기는 Doulos Church 위에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지난 한 해는 온 세상이 이 중국 폐렴(Covid-19)으로 고통받아온 세월이었습니다. 그 전염병은 아직도 종식되지 못하고 진행되고 있습니다. 어제, 현재 미국에서는 확진 20735490, 사망 354,985명입니다. 참고로 우리가 사는 Colorado는 확진 339186, 사망 4918명입니다. 세계적으론 확진 84899075, 사망 1839669명입니다. 참고로 고국은 확진 63244, 사망 962명입니다. 엄청난 희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안타까운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13, 오늘 취임예정이었던 루이지애나주 공화당 소속 당선자 루크 레틀로우(Luke Letlow, 41)가 며칠 전인 작년 1231Covid-19 합병증으로 숨졌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습니다. 젊은 사람인데 국회의원 취임 전에 죽은 것입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이 질병은 젊고 늙고를 따지지 않고 결정적인 피해를 주고 있습니다. 한편, 이 세균은 변종의 변종을 거쳐 올해도 계속하여 몹시 괴롭힐 것으로 보입니다. 이 와중에 우리가 모두 건강하게 하나님 앞에 나와서 신년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된 것은 오직 은혜라고밖에 설명이 되질 않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요!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신년 예배의 설교로 본문을 택했습니다. 강해 중에 이 구절이 되면 말씀을 자세히 드리겠습니다만, 이 시간 신년인 만큼, 이 고난의 시대에 주시는 말씀을 본문을 통하여 현재의 고난, 우리의 소망이란 제목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고난 속에 살아가는 인생

 

한 해를 보내고 또 새로운 한 해를 맞을 때마다 뭐가 달라지나요? 전혀 달라지지 않는 시간의 흐름 가운데서 살아갑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새로운 한 해를 맞아 지난 시간을 뒤로하고 이 새로운 시간을 맞으며 새 마음과 해 각오를 갖게 마련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 새로운 2021년을 맞으시는지요?

 

이 시점에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이 시간은 내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란 말입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시간의 흐름은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대 안에서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합니다. 만약 시간을 인간이 조절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인간은 시간을 지배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참으로 놀랍게도 파도를 없애거나 조절할 수는 없지만, 그 파도에서 놀 수는 있습니다. Surfing 이란 운동입니다. Surfer는 그 파도를 타고 노는 사람입니다. 인간은 자기 앞에 전개되는 그 어떤 불가항력적인(不可抗力的) 것을 오히려 즐기며 자기 유익을 위해 사용하는 재능과 지혜가 있습니다. 이 또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처럼 올해도 시간을 주관하지는 못하지만, 그 시간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지혜를 발휘해야 하겠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이제까지 인류가 살아온 그 어떤 시대보다 훨씬 고통스러운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지진과 홍수, 기근과 전염병 등 엄청난 자연재해를 겪고 있습니다. 이 모든 현상은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교란하고 반역하는 행위의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구온난화(Global Warming)와 같은 예가 바로 그것입니다. 동성애와 같은 부도덕한 행위로 이 세상은 혼란과 무질서, 상식과 관습이 파괴되는 미증유의 상황을 겪으며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이것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현실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고통스럽기만 합니다. 참으로 살기 힘든 세상입니다.

 

1) 저주받은 피조물

이렇게 인간이 겪고 있는 고난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요? 성경은 창조된 첫 인간에게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범죄로 인하여 인간이 살아가는 환경은 저주받았다고 설명합니다.

* 3: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 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았습니다.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자연이 저주받은 것입니다. 이로써 인간은 살기 위해서 저주받은 이 땅에서 평생 고생하며 살아야만 했습니다. 이 시점이 인간을 비롯한 모든 피조물 즉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이 고난을 겪게 되었습니다.

 

2) 회복을 고대하는 피조물

이 세상을 사는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믿는 자에게 구원을 전합니다. 그를 믿는 자를 성도, 하나님의 자녀라 부릅니다.

* 8: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한 자녀 즉 상속자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와 함께 누릴 영광됨에 동참한 자들이 성도란 의미입니다. 이미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성도는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살아났고(6:1~11), 또 그와 함께 영광스러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혀진 자(1:20~23)입니다. 이러한 신분을 소유한 자가 성도입니다. 매우 영광스러운 신분을 가진 자들입니다.

 

그런데 단순히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만 해서 이러한 신분을 소유하게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함께라는 표현 즉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union with Jesus Christ)" 개념은 단순히 이렇게 고상한 신분만을 누리는 수준과 상태가 아니라 그러한 수준에 이르기 위하여 당연한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만 합니다. 즉 주님과 함께 죽고 함께 산자는 그의 영광을 함께 나누는 자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고난을 받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성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도의 모든 삶은 그리스도와 동일시되는 삶이다(The whole Christian life is identification with Christ)."

한편, 사도 바울은 이 세상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만을 고대한다!”라고 주장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본문 19절 이하의 말씀을 읽어 봅니다.

* 8:19~22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면서 고통을 겪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기서 말하는 허무란 개념은 전도서에서 말하는 헛된 것, 공허한 것(vanity)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허무한 것에 굴복하는 피조물의 원인에 대하여 바울은 피조물이 스스로 원하여 선택하여 겪게 된 것이 아니라, 그렇게 굴복하도록 하신 그분 즉 하나님 때문에 겪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조상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자연도 인간이 받은 저주를 함께 받았고 지금도 인간이 저주받은 자연 속에서 고난을 받고 있듯이 자연도 고난을 받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장차 예수 안에서 성도가 영광을 받듯이 자연도 장차 성도가 받을 영광을 함께 받게 될 것이기에 하나님의 아들의 출현을 고대한다는 설명입니다. 그 배경에는 장차 하나님의 자녀가 누릴 영광의 자유를 함께 누릴 그때를 저주받은 땅과 피조물이 구속함을 받을 것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겪게 마련인 피조물의 고난은 허무, 공허, 탄식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이는 전도서에서 말씀하고 있는바헛되고 헛되고 헛된 인생의 모습입니다.

* 1:2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 C. J. Vaughan, "전도서 전체는 본 절에 관한 주석이다(The Ecclesiastes is a commentary upon the verses)."

 

그렇습니다. 이 땅에서 사는 모두는 이 헛되고 공허한 인생을 겪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고난 중에서 탄식하며 살아가는 우리네 모습입니다. 우리 인생은 본문 21절에서 보듯이 썩어짐의 종노릇하며 살아갑니다. 모두가 출생과 성장, 그리고 늙어 병들어 죽습니다. 우리 몸은 썩어져 흙으로 돌아갑니다. 이 생로병사의 과정을 예외 없이 겪으며 살고 죽습니다. 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고독과 좌절, 고통과 고난을 반드시 겪습니다. 이 과정에서 고통은 필연적입니다. 그런데, 피조물로서 겪는 이 고통스러운 과정은 일시적이고 제한적입니다. 그러나 죽는다고 다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도에게는 영원한 영광으로, 불신자에게는 또 다른 차원에서의 영원한 고통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들에게는 영원한 심판을 받아 영원한 불 못에 처하는 것입니다.

*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져지더라.

 

22절에서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산모가 새 생명을 얻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해산의 고통을 감내해야 하듯이, 피조물의 고통은 당연하고 필연적인 과정이라는 말입니다.

이처럼 피조물이 겪는 현재의 고난은 피조물 모두가 겪는 것으로 일시적, 잠정적, 유한하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 피조물이 겪는 현재의 고난은 장차 완성될 영광에 이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 7:23~24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 영광스러운 구원을 소망하는 인생

제가 아는 어떤 자매가 있습니다. 고국을 떠나 이곳에 살면서 항상 부친의 건강이 염려스러웠습니다. 오랫동안 병치레를 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지난 11월 중순에 무리해서 한국에 갔습니다. Covid-19이 유행하는 가운데서 말입니다. 그런데 가서 면역과정을 다 마치고 아버님을 뵌 다음 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제게 연락을 하면서 아버님이 자기를 보기 위하여 마지막까지 계시다가 자기를 만난 후 눈을 감으셨다고요.

 

바로 이 예에서 보듯이 소망이 있을 때 존재하게 됩니다. 비록 그 과정이 고통스럽더라도 말입니다. 그래서 그 소망이 이루어지면 그동안의 고난은 끝이 나는 것입니다. 이처럼 말씀은 피조물이 허무함 즉 헛된 것에 굴복하는 이유는 소망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피조물이 헛된 것에 종노릇하는 것은 참된 자유를 소망하기 위한 것이며, 썩어짐에 굴복하는 것은 영원한 영광의 자리를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한 자로서의 장차 그와 함께 누릴 영광을 바란다면, 당연히 우리에게는 피조세계에서의 고통스러운 삶으로 끝나는 인생만 있지 않고 그 영광의 자리를 소망하며 살게 될 것입니다. 이를 믿는 자에겐 현세의 고통스러운 고난 중에서 장차 예수와 함께 주어질 그 영광을 바라보는 소망으로 능히 이기며 사는 지혜와 능력이 주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성도는 신음하며 고통을 겪게 마련이겠지만, 따지고 보면 장차 누릴 그 영광은 현재 당하는 고난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것이기에 능히 감당할만한 고난입니다.

* 8: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1) 성도의 고난의 실체

성도가 이 땅에서 겪는 고난의 삶의 실체가 무엇일까요? 단순히 돈벌이가 시원치 않아서 살기 어렵고, 나이 들어가면서 몸이 쇠약해져 병들어 고통스러운 생활을 하는 것과 같은 고난을 말하는 것일까요?

 

바울이 말하는 고난이란 구원받은 성도가 세상을 살면서 겪는 모든 연약, 부족, 죄스러운 전반적인 상태를 말합니다. 돈이 많든 적든, 건강하든 병약하든 상관없이 죄 가운데 살아가는 연약한 상황을 의미합니다. 이를 성경 신학적으로 표현하면 성도란 이미 구원받은 자이지만, 아직 완성된 구원의 단계에 이르지 못한 상태를 뜻합니다. 즉 이미(already)와 아직(not yet) 사이에 놓여있는 성도의 모습입니다. 바울은 이 상황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 고후 5:2~4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신음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실체는 다름 아닌 우리 속에 있는 입니다. 바울은 이미 7장 마지막 부분에서 이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인간은 죄의 강력한 세력 아래에서 근심과 걱정, 질병과 죽음의 공포 가운데 신음하며 삽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런 자신의 인생을 한탄스러워하면서 절규했던 것입니다.

*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그렇습니다. 이 사망의 몸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 고난은 제한적이고 일시적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 고난에서 벗어날 소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2) 장래의 소망으로 살아가는 성도

성도 여러분, 과연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낼 수 있단 말입니까?

* 8:23~24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고난 중에 사는 성도에는 예수께서 누리고 계신 그 영광의 자리에 이미 영적 신분으로 가 있음을 믿기에 그 장차 누릴 소망으로 살아갑니다. 그 소망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자세한 것은 강해할 때 자세히 다루기로 하고 몇 가지만을 간단히 나열해 봅니다.

 

3) 소망의 특징

첫째, 구속의 완성을 소망합니다.

성도는 두 가지의 측면에서 구속을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는 몸의 속량 즉 구속(redemption)입니다. 연약하여 병들어 죽는 흙으로 되돌아가는 물질적 몸이 부활로 다시 영원한 생명으로 변화되는 구속입니다. 다음은 죄로 타락한 본성이 예수와 함께 죽고 다시 함께 부활함으로 영원한 생명으로 변화되는 구속입니다.

 

둘째, 구속받은 자의 명칭이 변경되어 양자로 불리 웁니다.

23절에서 보듯이 구속받은 성도의 명칭이 하나님의 양자로 바뀝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와 함께 연합한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이미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다 인정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는 예수와 연합한 자에게 주어지는 특권입니다.

 

셋째, 양자에게 주어지는 특권이 있습니다.

이때의 양자는 완전한 양자가 아닙니다. 아직 구원이 완성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양자에겐 영원한 영광이 보장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보증(pledge)이란 말을 즐겨 사용했습니다. 예수와 연합된 자에게 주어지는 양자는 영원한 영광이 보증된 양자권(pledged sonship)이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장차 주어질 유업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은행에서 발행하는 수표가 지급을 보증하는 문서이듯이 성도란 명칭에는 장차 주어질 영광을 미리 맛보는(foretaste) 이름으로 양자라 부르게 됩니다(8:19). 이 양자에게는 장차 하나님으로부터 상속권이 완전하게 주어지는 특권이 주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 요일 3: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3. 고난 중에 소망으로 사는 성도

 

이 소망 가운데 성도는 이 고난의 삶을 이겨가며 살아갑니다. 그러면 어떤 방식으로 고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일까요? 사도는 이렇게 그 방안을 제시합니다.

* 8:24~25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거듭난 성도는 고난을 겪으면서 탄식과 신음만 하거나 자폭하지 않고 장차 주어질 그 영광 즉 예수와 함께 누릴 그 영광을 소망하며 살아갑니다. 비록 아직 그에게 그 영광이 눈에 보이지 않고 손이 잡히지 않더라도 이미 보장된 양자의 영을 받았음을 확신하기에, 그 날에 주어질 그 영광된 순간과 자리를 바라보고 이 절망적인 세상을 비관적이 아닌 긍정적으로 소망을 갖고 인내하며 살아갑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또 한 해가 주어졌습니다. 이 한해도 지난해와 같이 엄청난 일들이 벌어지게 될 것입니다. 또 여전히 Covid-19 Pandemic으로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세상을 살겠지만, 우리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며 우리를 격려하셨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이 말씀 붙잡고 참고 기다리며 그 영광스러운 날을 소망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고맙습니다. 또 한해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 한해 염려와 걱정과 한숨으로 작년과 같이 살아가게 되겠지만, 낙심하지 않게 하옵소서. 이미 주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원한 영광의 자리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할 것을 확증 받았음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그 확신과 그 소망으로 이 험난하고 힘든 고난을 믿음으로 극복하고 인내로 올 한해도 주 안에서 승리하게 하옵소서. 예수 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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