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23> 하나님의 법과 심판 로마서 2:12~13, 16 6-30-2019

無益박병은목사 | 2019.06.30 23:45 | 조회 646

* 제목: 하나님의 법과 심판 * 본문: 로마서 2:12-13, 16 June 30, 2019

 

재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정성과 공평성입니다. 현 정권에 들어와서 보여주고 있는 사법당국은 매우 정치적 편향성을 표출하고 있다 해도 부인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지난 두 시간에 걸쳐 살펴본 바는 하나님 심판의 공정성과 공평성입니다. 즉 하나님의 판결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에게나 차별하지 않고 공정하고 공평하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판결이 이루어질까요? 바로 이 원칙이 적용되어 판결하기 때문입니다.

* 2:12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12절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이 저지른 죄는 이 거룩한 형상을 상실하고 훼손한 가운데 살아가게 하기에, 선민인 유대인이든 비 선민인 이방인이든 할 것 없이 심판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적시하고 있습니다.

 

이제 다음 주에 17절 이하를 살피겠지만,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받았다는 특권의식 속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들이 받은 율법을 받은 여부가 아니라, 그 율법의 준수 여부를 심판 기준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13)”라고 지적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심판은 공정성과 공평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 하나님의 법과 심판에 대한 종합적이고 결론적인 말씀을 드리려 합니다.

 

1. 하나님 심판의 기준인 법

 

지난 시간, 14~15절에서 복음을 듣지 못한 이방인에게 양심 판결이 작동하여 판결되는 것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즉 이방인의 양심이 증거가 되고 다양한 마음의 실천한 바들이 하나님 심판의 기준이 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결국, 율법의 유대인이나 율법 없는 이방인이나 이들의 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법은 공정하고 공평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법은 율법이나 양심 법에 따라 유대인과 이방인을 심판하는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차별이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즉 온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께서 대표적으로 선택한 유대인에게는 주신 그 율법을 기준으로 삼아 심판하시고, 이방인에게는 그들 본성 가운데 심어 놓으신 양심의 반응을 기준으로 삼아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에게 그들이 받은 율법을 듣고 행하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이방인들 역시 양심이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바를 실행함이 중요한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이방인의 양심과 마음의 경향성과 그 행위를 유대인에게 적용된 율법의 뜻과 같다고 판단하셔서, 선민이든 비 선민이든 똑같이 하나님의 법 즉 율법의 요구를 실천했는지 판단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이 판단하는 기준입니다.

 

이를 통하여 우리 인간은 이룰 수 없는 두 가지 사실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윤리적 기준을 지킬 수 없음

 

모든 인간은 하나님께서 양심에 심어 주신 도덕법을 준수할 수 없음이 분명해졌습니다. 비록 그것을 특별계시에서 받았든 일반계시에서 받았든, 은혜로 얻은 것이든 자연으로부터 얻은 것이든, 외적으로 얻은 것이든 내적으로 얻은 것이든, 율법을 통하여 얻은 것이든, 양심으로부터 얻은 것이든 간에, 광의적인 차원에서 모든 인간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수준에 이르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바울은 이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핵심은 모든 인간은 하나님에 대한 보편적인 생각(2:20), 선에 대한 개념(1:32; 2:15)을 갖고 있으나 타락으로 이 진리를 왜곡한 것입니다. 그 결과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 1:18-19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둘째, 인간의 도덕성으로 구원을 이룰 수 없음

 

윤리와 도덕을 강조하지 않는 종교는 없습니다. 모든 지혜와 가르침은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이방인에게 적용하시겠다는 양심으로 판단하시는 원리는 자연법(일반법칙, nature law)으로나 자연 종교(nature religion)로나 인간의 구원이 불가능함을 말해 줍니다. 인간이 하나님에 대하여 그 무엇을 안다 하더라도(1:19), 양심이 선에 대한 지식이 있다 하더라도(1:32; 2:15), 그 양심은 자기중심적이어서(2:8), 종국에 가서는 하나님 앞에 변명할 수 없는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할 것 없이 인간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받아 마땅합니다.

 

이 점을 바울 사도는 2장에서 증명하고 있는 핵심 진리입니다. 결국, 율법을 가진 유대인이나, 율법을 갖지 못한 이방인이나 상관없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모든 인간이 죄를 이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 사명의 기초로서의 하나님의 법

 

그러면 하나님의 법은 어떻게 작용하고 있을까요? 단순히 심판의 도구일 뿐인가요? 동전의 양면과 같이 법은 규제와 제재만 하는 것이 아니라, 격려와 권장의 기능도 있습니다. 즉 율법을 가진 유대인이나, 양심을 가진 이방인이나 같은 하나님의 법으로서의 율법과 양심은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명들을 수행하도록 요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성도가 수행해야 할 것은 첫째는 하나님의 구원 도리 즉 영혼 구원(spiritual salvation)을 위한 복음 전파 사명이고 다음은 세상 구원(secular salvation)을 위한 실천적 사회 활동입니다.

 

첫째 전도 사명입니다.

사실 예전처럼 전도가 쉽지 않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세속화의 물결이 복음의 필요성을 현저하게 침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속화가 빠르게 퍼져 극도의 개인주의로 인한 자기애(自己愛, self loving), 쾌락주의와 물질 만능주의 그리고 배금사상이 바른 신앙을 버리게 하고 타협하게 합니다. 오늘날 신앙도 돈의 논리에 철저하게 따르는 현상을 보여 정말로 기복신앙이 옳은 것으로 속고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나치 독일 시대에 정치를 비판하여 투옥되었던 폰회퍼(Dietrich Bonhoeffer) 목사님은 옥중에서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는 기독교인들이 신약 말씀을 문자 그대로 즉각적이고 직접 실천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 이유는 율법이 우리의 죄를 드러내어 정죄하기 전까지는 칭의의 복음을 받아드릴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이는 신약성경이 요구하는 바는 문자적인 명령이 아니라, 구원받은 자로서 제시된 구원 복음의 내적의미를 확실하게 인식한 자만이 실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은 예수를 구주로, 주인으로 고백한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2장에서 예수를 고백한 이후 이전에 가졌던 그 어떤 것도 배설물과 같이 여기고(3:8) 자기 속에 예수 그리스도 사시는 존재가 되었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사실, 인간은 창조 때부터 도덕적인 존재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우리 양심은 자연을 통하여서든, 말씀을 통해서든, 옳고 그름에 대하여 반응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는 사람은 본성적으로 말보다는 행동을 보고 양심이 반응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이 점에서 말로 하는 전도는 쉽지 않다고 하겠습니다.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하는 것은 미련한 방법이라 한 것입니다(고전 1:23). 문제는 이 구원의 도리를 믿는 우리가 믿는 바를 행동으로 나타나게 살므로 불신자들이 양심으로부터 인정받아야 하는 어려운 여정이 필요하게 된다는 데 있습니다. 이 고난과 역경은 필수 과정이며 간섭하시고 인도하시는 성령의 역사는 진정으로 구원을 경험하게 하시는 은혜인 것입니다.

 

우리는 사도 베드로가 이 세상을 사는 성도에게 권면한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 벧전 3:13-16 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고,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께서는 다음과 같이 명령하셨습니다.

* 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우리는 모두 인생의 집을 짓고 살아갑니다. 어떤 집을 지을 것입니까? 겉만 화려한 집을 지을 것입니까?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튼튼한 집을 지을 것입니까?

산상보훈 마지막 결론으로 주신 주님의 유명한 비유를 기억합니다.

* 7:24-27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성도 여러분, 주님은 말씀에 대하여 진지하고 적극적으로 순종해야 한다고 명하셨습니다.

* 요계 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둘째, 사회 정의의 실천입니다.

오늘날 사회 정의를 외치는 운동(the movement of social justice)이 활발합니다. 비록 사도 바울이 본문 12~16절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가 아닌 것 같지만, 사실 도덕적인 행위를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법은 그것이 율법 사안이든 양심 사안 간에 사회적 정의구현의 차원에서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명령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즉 성경의 법이나 양심의 법이나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법을 성취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인 것입니다.

 

한편, 사도 바울은 이 세상이 죄로 인하여 고통받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창조하신 이 세상은 인간의 죄로 인하여 오염되고, 파괴되고, 왜곡되어 구원을 요청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피조물들이 고통 가운데 신음하며 하나님의 백성들이 나타나 구원의 길을 제시하고 시도하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 8:19-21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각종 사회정의실천 운동들은 바로 십계명과 안식년, 희년 그리고 각종 절기등의 성경의 교훈들을 따르려는 신실한 성도들이 주축이 되어 벌리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 세상에는 옳고 그름 사이에 한계점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래도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공동체적인 평화와 자유 그리고 죄로 파괴된 피조계의 회복과 구원 차원에서 자연보호와 회복 운동, 그리고 사회 정의 실천 운동을 실행해야 합니다.

 

이 일에 기독인들이 솔선수범하여 나서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정당성과 의로움입니다.

* 6:24-25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규례를 지키라 명령하셨으니 이는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항상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하심이며 또 여호와께서 우리를 오늘과 같이 살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그 명령하신 대로 이 모든 명령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삼가 지키면 그것이 곧 우리의 의로움이니라 할지니라.

 

이 두 사명은 주께서 마지막 날에 은밀한 것을 드러내시는 심판의 날에 평가될 요소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결론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은 비단 믿는 자에게만 주어진 명령이 결코 아닙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는 구원의 도리는 특정 민족에게 특별한 혜택을 주시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는 온 인류를 향한 구원의 도리입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구원의 도리입니다. 그것은 바로 행위로는 도저히 구원에 이를 수 없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로 이루어 주신 십자가와 부활의 도리입니다.

 

이 복음을 믿을 때 차별 없는 복음은 능력을 발휘하여 구원을 얻도록 역사합니다. 이를 사도 바울은 깨달았고 이 복음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게 된 것입니다.

* 3:19-22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이것이 차별 없이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에게 선포된 복음이요 우리에게까지 전달된 구원의 도리입니다. 우리가 이 복음을 신실하게 믿고 힘써 실천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복음은 단순히 구복적인 것이 아닙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복음의 은혜로움을 알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이 강력하고 차별 없는 복음의 능력을 깨닫게 하시므로 공평하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구원 섭리를 온전히 깨닫게 하시고 믿게 하옵소서. 그리고 그 복음이 우리 속에서 명하시는 바를 실천하게 하옵소서. 저희가 실천하는 착한 행실을 통하여 주변이 밝아지게 하옵시고, 썩어 냄새나는 세상이 정화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법의 엄위로움과 단호함과 차별 없이 적용되는 것을 깊이 인식하여 주의 거룩하심을 드러내는 신실한 삶을 살아 빛과 소금의 사명을 잘 수행하게 하옵소서. 예수 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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