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22> 하나님의 공평한 심판 2 로마서 2:13-16 6-23-2019

無益박병은목사 | 2019.06.24 00:10 | 조회 212

* 제목: 하나님의 공평한 심판 2 * 본문: 로마서 2:13-16 June 23, 2019

 

지난 시간에 이어 좀 더 생각해 보아야 할 중요한 말씀을 다루려 합니다. 이미 사도 바울은 죄를 지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복음에 대하여 말했습니다. 그 복음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바울이 전하는 이 복음에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한 면은 의(, dikaiosune, righteousness)이고, 다른 한 면은 능력(能力, dunamise, dynamite)입니다. 1:18 이하에서 그는 하나님의 진노 즉 의의 부분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진노와 심판은 모든 사람, 즉 유대인이나 헬라인에게 차별없이 적용되는 복음입니다. 바울은 특히 율법을 행하지 않는 유대인의 행위를 죄로 규정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마땅하다고 선언합니다.

* 2: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바울의 논점은 차별 없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은 이방인들에겐 어떻게 적용될 것인가 하는 점으로 옮겨 갑니다. 지난 시간에 이 문제를 다루면서, 소위 양심심판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었습니다. 이 시간에도 이 문제를 좀 더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도 이방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율법을 받지 못했고, 율법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문제는 어떻게 죄의 결과인 사망에 이르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어떻게 처리하셔서 구원받게 하시는지를 살펴보려 합니다.

 

1. 양심에 대하여

 

* 2:14-15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사도 바울은 이 괄호 부분에서 유대인처럼 율법을 받지 못하고 또한 듣지도, 배우지도 못한 이방인의 구원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로 말하면 복음을 듣지 못하고 배우지 못한 불신자들의 구원 문제입니다. 확대하여 생각할 때, 복음이 들어오기 전, 복음 자체를 듣지 못한 자들에 대한 구원 문제는 어떻게 처리되는지에 대한 설명입니다.

 

1) 괄호로 처리된 이유

지난 시간에 설명한 바와 같이 이 주제가 괄호로 처리되어 있습니다. 흥미롭습니다. 무슨 이유에서 이 부분이 괄호로 처리된 것일까요? 그 이유는 이 주제, 즉 이방인의 죄 문제는 바울이 전하려는 구원이란 주제에 있어서 핵심 사안이 아니지만, 논리상 꼭 생각해봐야 할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는 차별 없는 심판이 복음을 듣지 못한 이방인에 대하여 어떻게 처리되는가 하는 점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사실, 이 괄호 부분을 빼도 논리적으로 문제가 없습니다. 13절에서 바로 이어져서 16절이 말씀하는 차별 없이 실행되는 하나님의 공평한 심판 부분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13절의 율법을 가지고도 지키지 않으면 심판받을 수밖에 없다!”라는 논리의 연속 선상에서 16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 2:16 곧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여기서, 우리가 이방인이고, 또 우리 보다 앞선 세대, 아직도 복음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죽어가는 숱한 영혼, 특히 집안에 따라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은 이들의 영혼에 대한 구원 문제에 대한 궁금함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과거 천주교회에서는 죽은 자의 영혼을 위한 구원문제를 이렇게 처리했습니다.

 

트렌트 종교회의(Concilium Tridentinum, 1545-1563)에서 종교개혁운동이 주장하는 이신칭의 주장을 이단으로 정죄했습니다. 그리고 연옥(purgatory)의 존재를 선언하고 이 연옥에 있는 영혼들을 위하여 반드시 기도하라(위령미사, 연미사)고 명령했습니다. 그들은 연옥이 존재하고 이 연옥에 있는 영혼들은 신자들의 기도와 특히 미사성제로써 도움을 받는다."라고 공의회에서 결정하고 공포했습니다. 이들은 연옥 교리의 근거로 마카베오라는 위경의 구절을 제시했습니다. 이 마카베오서는 개신교가 인정하지 않는 위경 중의 하나입니다.

* 2 마카베오 12:43-45 ”그가 죽은 자들을 위해서 속죄의 제물을 바친 것은 그 죽은 자들이 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성경의 그 어느 곳에서도 정당성을 갖지 못합니다. 바울은 유대인과 같이 이방인의 죄 문제를 다루면서 유대인은 율법을 근거로, 이방인은 양심을 근거로 판단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평한 심판이라고 설명합니다.

 

2) 양심에 대하여

이제 이방인의 율법에 해당하는 양심에 대하여 좀 더 생각해 보도록 합니다. 헬라어 원어 상으로 양심(sunneithesis)""함께 안다(to know together)"라는 의미입니다. 즉 두 가지를 함께 생각하는 것이 양심이라는 말입니다. 바울은 이를 양심 속에서, ”한 생각은 고발하고 다른 한 생각은 변명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즉 양심은 선과 악에 대하여 함께 알고 반응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바울이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한 말씀을 봅니다.

* 딤전 1:18-19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교훈으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3) 양심의 종류

디모데는 이방인입니다(16:1-5). 그런데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질 것을 권면했습니다. 이 구절에서도 보듯이 이 양심은 버릴 수도 또 지킬 수도 있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사도 바울은 다양한 형태의 양심을 세 가지로 구분했습니다.

 

첫째, 더러워진 양심(고전 8:7; 1:15)-불신자의 양심,

* 1:15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그들의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둘째, 화인 맞은 양심(딤전 4:2)-타락한 신자의 뻔뻔스러운 양심

* 딤전 4:2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셋째, 선한(착한) 양심(딤전 1:19; 3:9)-신실한 성도의 양심

이렇게 우리의 양심이라는 것은 매우 가변적입니다.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것이 우리네 양심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기에 네 양심을 지키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박윤선 목사님 근자에 펴낸 로마서 강의라는 책에서(66-72 pages), 이 양심에 대하여 좀 더 세분하여 설명했습니다. 정리하여 말씀을 드립니다.

 

첫째, 양심이 하나님의 음성 그 자체는 아닙니다. 하나님의 음성(말씀)은 위로부터 오는 것이며, 양심은 우리 안에 내재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반응하는 것이 양심입니다.

 

둘째, 그러나 착한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동하도록 반응합니다.

 

셋째, 양심은 그 소유자의 의지와 사상에 반대하기도 합니다. 즉 본능적인 자아의 구현이요 마음의 심판자입니다.

 

넷째, 양심을 계속 어기면 그 양심은 무감각증에 빠지게 됩니다. 소위, ”양심은 영혼의 눈이라고 하는 데, 계속하여 양심을 거역하면 그 영혼의 눈이 망가져서 마비될 수 있습니다.

 

다섯째, 참 신앙은 양심을 통하여 믿음을 갖게 합니다. 즉 양심은 믿음이 자라게 하는 모 판이라 하겠습니다. 맑은 양심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실한 반응을 나타냅니다.

* 벧전 3:21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 16: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예수께서는 보내실 성령께서 우리의 양심을 통하여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그리고 심판에 대하여 말씀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양심은 하나님의 음성에 대하여 반응하는 기능을 하기에 예민하고 신실합니다.

여섯째, 양심은 입법자가 아니고 사법적인 기능을 합니다. 이는 내 생각과 의식을 규정하는

법적 기능을 발휘하는 것이 양심이라는 말입니다. 그 양심은 진실함과 투명성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사람의 행동을 주관하며 심판하는 기능을 하는 것입니다.

* H. Bavinck,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다음에 나뭇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두른 다음에 숲속에 숨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행동을 하게 한 것이 양심입니다.

 

2:14-15의 말씀은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에게 있어서 양심은 바로 유대인에게 있는 율법과 같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율법을 가진 유대인들을 율법으로 판단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에게는 그들 속에 심으신 양심의 행동에 따라 판단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비록 이방인들이 율법을 갖고 있지 않고 복음을 듣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이미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양심 속에 도덕의식(self-consciousness of moral persons)"을 심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율법을 가진 유대인이든, 율법이 없는 이방인이든 간에 그들의 마음과 양심과 사고에 따라 행한 행동을 보고 판단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심판입니다.

 

2. 하나님 심판의 날

 

이미 사도 바울은 로마서 2:5에서 하나님의 진노의 날에 대하여 말했습니다.

* 2:5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유대인은 율법을 가지고 있는 언약 백성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지 않으신다고 오해했습니다. 그들은 율법이 요구하는 바를 온전히 지키지 않으면서 즉각 대응하지 않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왜곡하고 무시했습니다. 그들의 형식적 종교 행위는 고집스럽게 이어졌고, 이를 지적하는 선지자들의 권고와 경고에도 회개하지 않고, 계속 하나님께 반역하는 길로 갔습니다. 이러한 그들의 행위는 장차 있을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의 날에 그들에게 퍼부어질 무서운 하나님의 진노를 쌓는 것일 뿐입니다.

 

앞에서 생각한 바와 같이, 바울은 14~15절의 괄호 부분에서 이방인의 양심심판 문제를 다룬 후 13절에서 다룬 하나님의 심판에 관한 주제를 16절에서 결론짓습니다.

* 2:16 곧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여기서 사도가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의 진노의 날심판의 날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일까요? 쉽게 이날이 마지막 심판의 날이라고 이해하는 경향이 있으나 문맥을 잘 보시면 그 최후의 심판을 하시는 날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유대인에게나 이방인에게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그 날은 사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에서 이미 밝힌 바로 그 날입니다. 이날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사도가 다루는 주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심판 방식. 둘째, 하나님의 심판 대상.

 

첫째, 심판 방식: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심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들에게 모든 심판의 권세를 이양하셨습니다(5:22, 27). 그리고 마지막 심판 날에 심판의 중심 역할을 하시는 권위를 예수께 허락해 주셨습니다(7:21; 25:31).

* 5:22, 27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 25:31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사도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예수에게 세상을 심판할 권세를 주셨음을 이방인 고넬료 앞에서 강력하게 전했습니다.

* 10:42 우리에게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언하게 하셨고

 

그리고 사도 바울도 이방인 땅인 헬라에서 예수께서 심판하실 권한을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설교했습니다.

* 17:30-31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둘째, 심판 내용: 하나님은 우리의 삶 속에 은밀하게 숨긴 부분까지도 심판하십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반복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아신다고 설명합니다(삼상 16:7; 139:1; 17:10; 16:15; 4:12).

 

* 시편 139:1-4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 4:12-13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셋째, 심판의 성격: 이 역시 복음의 한 부분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사람이 남에게 밝히지 못하는 숨긴 비밀까지 심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복음이라고 말하면서 이것이 자신이 전하는 복음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복음을 값싸게 취급하여 가난과 질병으로부터 두려움, 불행으로부터의 고침과 나음 그리고 번영이 구원이라고 전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참된 복음은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공평하게 그 누구에게나 즉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고 반역하여 살아가는 자에게 차별 없이 진노하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전하는 것입니다.

넷째, 이날은 예수께서 구속의 완성을 이루시는 때입니다.

이는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전하셨던 복음에서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 1: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이 주님의 공생애 첫 일성은 회개를 촉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은 예수께서 오신 그때가 바로 하나님 심판이 시작되었음을 선언하시는 바로 그 날임을 의미합니다. 주께서는 회개를 촉구하시며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복음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구속 진리가 이미 선포되었으나(already) 아직 재림하지 않으시고(not yet) 길이 참으시며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로 돌아와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이는 사도들이 강조하고 있는바, 유대인이나 헬라 인 모두에게 적용되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하심입니다.

* 딤전 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 벧후 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양심은 어떻게 말씀에 반응하고 있습니까? 형식적이고 외식 적인 반응으로 스스로 속이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도 바울은 경고합니다.

* 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양심의 반응에 따라 구원의 문제가 다루어지고 하나님의 심판이 주어지게 된다는 것이 구원의 원칙이며 원리입니다. 이것을 다루고 있는 것이 복음입니다. 그 내용에는 사랑과 긍휼과 축복만이 있는 것이 아니고 경고와 지적 그리고 진노와 심판도 함께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아멘.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이 시간에도 귀한 말씀으로 구원의 도리를 생각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속에 심어 놓으신 하나님의 거룩한 신성을 상실한 채로 자존심과 고집으로 살아왔음을 고백합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리에게 항상 착한 양심을 갖게 해 주셔서 예리하고 깊은 주의 말씀에 즉각적이고 진실하게 반응케 하옵소서. 주여, 구원의 진리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수하신 구속의 도리에 있음을 알게 하시고, 살피게 하시고, 믿게 하옵소서. 성령 하나님께서 이러한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시는 이신칭의 도리임을 인식하고 어떻게 그 진리가 우리에게 적용되는지를 알게 하옵소서. 죄인인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형벌을 받아 죽어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우리 구원의 근거와 토대를 마련해 주신 예수 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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