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강해 49> 하나님의 보배로운 백성 신명기 26:16-19 8-26-2018

無益박병은목사 | 2018.08.27 16:31 | 조회 168

* 제목: 하나님의 보배로운 백성 * 본문: 신명기 26:16-19 8-26-2018

 

오늘날 세계가 우리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시선이 예전과 같지 않습니다. 어느 때부터 선진국 대열에 놓고 부러워하고 칭찬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곤 합니다. 과거의 가난을 벗어나 경제적인 부를 이루어 원조를 받던 나라가 이젠 원조하는 나라로 발전하였고, 첨단 IT 산업국가가 되어 전 세계의 무역에 있어서 11위에 해당할 정도로 부자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각종 한류의 바람으로 전 세계가 문화강국 South Korea란 부러운 시선을 보내고 있습니다. 특히 반도체와 같은 첨단 IT 산업의 발달로 TVCell Phone 그리고 한류 등으로 전 세계를 향하여 작지만 강한 나라로 인정받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렇게 전 세상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자랑거리가 풍성한 나라가 되었다고 참으로 고상하고 도덕적인 우위에 있는 성숙한 나라, 보배로운 나라라고 할 수 있을까요? 특히 최근에 고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권교체의 과정에서 드러난 초법적, 민중혁명적인 정치적 변혁 과정은 과연 자유민주주의적이고 윤리적으로 전 세계를 향하여 고상한 모습을 보여 주었나요? 헌법에서 분명하게 삼권분립을 언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법부와 입법부가 행정 수반인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알아서 선제적으로 초법적 행위를 일삼는 모습이 과연 수준 있고 고상한 백성이며 나라라 할 수 있을까요? 참으로 우려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편리함을 누리고 있는지만, 보배로운 고상한 나라라고 하기에는 부끄럽기만 한 것이 사실입니다.

 

과연 어떤 나라의 모습이 고상하고 성숙한 나라이며 더더구나 보배로운 나라일까요? 여기서 보배로운 나라라고 번역된 것은 하나님께 거룩한 백성(holy people to the Lord)”이라는 의미입니다. 그저 경제적으로 부강한 나라가 아니라, 도덕적으로 그리고 윤리적으로 사회, 문화, 정치, 경제, 모든 면에서 공평하고 공의롭고 정의로운 나라를 지칭합니다.

 

모세는 출애굽 2세가 이제 가나안 땅에 입성하여 나라를 세워나갈 때 그들이 참으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신명기 서를 통하여 그들에게 다시금 시내 산 언약을 소개하고(1:1-4:43), 그 언약을 해설하고(4:44~11:32), 그 언약을 적용하고(12:1-26:19), 그 언약을 확증하고(27:1-30:20), 마지막으로 그 언약을 함께 나누었습니다(31:1-34:12). 모세의 이러한 작업은 이스라엘 백성이 진정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간절히 원했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은 언약을 적용하는 마지막 부분을 다루고자 합니다.

 

1. 구별된 백성으로서의 요건

26장의 결론 부분인 본문에서 모세는 이제까지 언급한 언약의 주제들을 요약하고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26절과 27절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읽어 봅니다.

* 26:16-17 오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규례와 법도를 행하라고 네게 명령하시나니 그런즉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지켜 행하라. 네가 오늘 여호와를 네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또 그 도를 행하고 그의 규례와 명령과 법도를 지키며 그의 소리를 들으라.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율법, 즉 여호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조항들을 확증하면서(confirming) 여호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바에 대하여 마음과 뜻을 다하여 전적 순종(total obedience)으로 실천에 옮겨야 했습니다. 이 확증은 개인은 물론이고, 온 백성이 함께 그들의 하나님께서 명하신 말씀을 인정하고(하나님 권위인정, 27), 즉각(immediately, 오늘 27) 그리고 지체없이(unreservedly, 마음과 뜻을 다하여, 26), 순종적으로(obediently, 규례, 명령, 법도를 행하고, 27) 그리고 전적으로(totally, 소리를 들으라, 27) 순종해야만 했습니다.

 

이렇게 할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하여 참으로 보배로운 나라 백성으로 삼아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 26:18-19 여호와께서도 네게 말씀하신 대로 오늘 너를 그의 보배로운 백성이 되게 하시고 그의 모든 명령을 지키라 확언하셨느니라. 그런즉 여호와께서 너를 그 지으신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사 찬송과 명예와 영광을 삼으시고 그가 말씀하신 대로 너를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라.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대하여 전적으로 순종할 때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언약의 상대로서의 충성됨을 인정하시고(28), 그들을 사랑하시고(loved, 보배로운 백성이 되게, 29) 특권을 주시고(privileged, 뛰어나게 하사, 28), 구별되게 하시겠다(dedicated, 성민이 되게 29)고 확증하셨습니다.

 

이러한 놀라운 보장된 말씀은 율법의 제 확증의 결론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성도에게 하나님 앞에 종교적인 예식으로서의 예배뿐 아니라, 그분 앞에서 살아가는 삶의 현장 속에서 얼마나 중요한 의미가 있는지를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싸워야 할 대상은 우리 내부에 있는 낮은 영적 수준이며 세속과 타협적인 영적 분위기라 하겠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신앙 수준과 현실을 냉정하게 살펴야 할 필요성을 깊이 느끼게 합니다.

 

최근에 고국에서 한국의 최대의 장로교회가 세습으로 인하여 그동안 쌓아왔던 명성이 모두 다 허물어 버리고 결국 세속화된 추한 모습으로 세상에 드러나게 되어 실망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저는 아직도 고국에는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말씀의 원리를 따라 전적으로 순종하려 애쓰며 발버둥을 치며 목회하는 목회자가 많이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대표적인 교회가 그동안에 전파해왔던 바를 결정적인 순간에 뒤집어엎어 버리고 정반대의 결정을 하여 그동안 애써 전도하여 불러모았던 숱한 영혼들에 깊은 상처를 주고 세속으로 내몰아 버리는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해 버리는 모습에서 심한 자괴감을 느끼게 됩니다. 과연 한국 교회는 자생력을 갖고 있기나 한 것인지요? 한국 교회 성도들이 갱신과 개혁을 할 능력이 있기나 한 것인지요? 참으로 한심할 뿐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말로만 하나님을 믿지 마음으로는 그 살아계신 하나님을 공경하지도 않고 있는 것입니다(29:13; 15:8).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그 하나님은 하나님으로 인정하지도 않고 오히려 이용만 하는 파렴치한 모습으로 이는 반역적인 신앙이라 비판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째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일까요? 다름 아닌 하나님과의 관계 즉 예배에 문제가 심각하게 왜곡되어있기 때문이라 하겠습니다.

다윗은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 16: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그렇습니다. “신전의식(神前意識, Coram Deo-Before God)”의 결여가 신앙 따로 삶 따로의 양태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세습을 성사시킨 김삼환목사는 목회할 때는 성경대로 전하지만, 막상 목회를 그만둘 때가 되니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고 현실이 하나님보다 더 크게 보이는 것이지요. 이러할 때 그가 어떤 결정을 하느냐가 그 사람의 신앙 수준인 것입니다. 아무리 거룩한 일을 행하고, 대단한 노력과 헌신을 하며 세상에 자랑할 만한 업적을 남겼다고 하더라도, 그의 마지막 행보가 세속적이고 세상 적이라면 그동안 그게 이룬 모든 거룩한 업적은 수포가 되고 맙니다. 오늘날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의 문제가 바로 여기에 모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 생활 예배의 중요성

 

오늘 말씀은 바로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게 합니다. 과연 나는 어떤 수준의 성도인가?

여호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고, 주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할 때하나님께서는 그를 거룩하게 하시고 특별한 은혜를 주셔서 구별된 백성이 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말씀에 대하여 삶 속에서 실천할 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생활 속에서의 예배의 중요성을 가르쳐 줍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기본적인 구원의 도리를 해설한 다음 결론을 내립니다.

* 12:1-2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제 모세도 신명기 말씀으로 율법의 재확정의 과정을 거치며 출애굽 신세대들에게 장차 그들이 들어가 살게 될 가나안 땅 즉 구원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삶의 원리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하는 삶이라 하겠습니다.

 

어떤 예배가 올바른 예배일까요? 8가지 요소를 신 26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오직 하나님께만 드리는 예배(exclusive worship)

1계명은 나 외에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2계명은 우상숭배를 하지 말 것을 명령합니다. 이 두 계명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에게만 예배할 것을 명하신 말씀입니다.

* 16:2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소와 양으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 유월절 제사를 드리되

 

이 말씀에서 보듯이 우리 하나님은 독점적이고 특약을 맺으시고 우리와 상관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고 그분께서 지정하신 날짜에 그 장소에만 나아가 그분께만 예배드려야 합니다. 신명기 16장에서는 세 번씩(2, 6, 11)이나 여호와의 이름을 두시려고 책하신 곳에서 예배드릴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둘째, 응답으로 드리는 예배(responsiveness of worship)

* 26: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에서 그 토지의 모든 소산의 맏물을 거둔 후에 그것을 가져다가 광주리에 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으로 그것을 가지고 가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예배드릴 때 각자에게 드리도록 규정되어 있는 바를 충실하게 이행하여 제사(예배)에 참여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마땅히 감당해야 할 의무를 충실하게 이행할 것을 명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명령의 배경 속에는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셨다는 것을 인식할 것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점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같은 구원의 원리는 신약에서도 같이 적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5:8-10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 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즉 이렇게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그 은혜를 받은 자임을 안다면, 당연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자의 의무는 온전한 경배와 감사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참고 요일 4:10, 19). 전혀 그러한 종교적 행위가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없음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셋째, 적극적인 반응의 예배(reflectiveness of worship)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자가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종교적인 절차와 순서에 참여한다고 그것이 다가 아닙니다. 예배의 의미와 배경을 깊이 생각하고 예배에 참여해야 합니다. 천주교의 미사의 맹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은 사제가 인도하는 대로 그저 참여하면 된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종교개혁 당시에는 천주교에서는 교인들이 알아듣지도 못하는 라틴말로 사제 혼자서 읊조리다가 끝나는 미사가 전부였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이러한 무미건조하고 알아듣지도 못할 예배와 우상숭배 사상에 절어있는 미사를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개혁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와 설교를 그저 종교적인 의식 정도로 생각할 뿐입니다. 목사의 딜레마(dilemma)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과연 전하는 말씀을 교인들이 얼마나 기억할까? 과연 얼마나 그 말씀의 중요성을 깨닫고 삶 속에서 고민하며 실천하려고 생각할까?”

 

오늘날 교인들이 예배를 통하여 얼마나 생각하고 고민하고 자신의 모습에 투영하며 하나님 앞에서 예배를 드릴까요?

 

넷째, 대속 사건을 기념하는 예배(the commemorative nature of worship)

모세는 신명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고 그분께만 제사를 드려야 할 근거로서 출애굽 사건을 전제로 삼고 있음을 12곳 이상에서 보게 됩니다(4:37-38; 6:12, 20-23; 7:7-8, 17-19; 8:13-16; 11:2-7; 12:5, 10; 15:15; 16:1-12; 20:1).

* 4:37-38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을 사랑하신 고로 그 후손인 너를 택하시고 큰 권능으로 친히 인도하여 애굽에서 나오게 하시며 너보다 강대한 여러 민족을 네 앞에서 쫓아내고 너를 그들의 땅으로 인도하여 들여서 그것을 네게 기업으로 주려 하심이 오늘과 같으니라

 

우리가 하나님 앞에 모여 드리는 이 예배는 사망의 굴레 속에서 두렵게 살아가는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셔서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를 세상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부활하심으로 구원을 이루신 그 놀라운 구속사건을 기억하고 기념하며 기쁨으로 예배드리는 자리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성도들은 이 예배가 세상의 강연회나 연설회 혹은 어떤 집단이나 정치 단체가 자신들의 정강 정책을 발표하거나 주의 주장이나 학설 혹은 이론을 발표하거나, 나아가 선동하고 독려하는 모임이 결코 아니라는 점을 알고 예배에 참여해야 합니다.

 

다섯째, 협력적인 예배(the corporateness of worship)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 첫 열매를 거두면 광주리에 담아 제사장에게 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그 앞에서 즐겁게 먹고 마실 것을 명하셨습니다.

* 26:10-11 여호와여 이제 내가 주께서 내게 주신 토지 소산의 맏물을 가져왔나이다 하고 너는 그것을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두고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경배할 것이며,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네 집에 주신 모든 복으로 말미암아 너는 레위인과 너희 가운데에 거류하는 객과 함께 즐거워할지니라.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을 출애굽 시켜 구원해 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가나안 땅에서 거둔 소산물로 제사를 드릴 뿐 아니라, 온 백성이 함께 즐거워하며 축제를 가질 것을 명하셨습니다.

이러한 명령은 예배에 있어서 단순히 예식만이 아니라, 상호교류 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예배를 드릴 때 제시되는 순서는 단순히 나열된 순서가 아닙니다. 이 순서들은 단순히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나아가 삼위 하나님을 부르고 임재하심을 간절히 구하며 주께 찬양을 올려드리고, 그분께 감사와 고백 그리고 간구와 헌신, 말씀을 듣고 반응하고 찬양하는 순서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가 담겨있는 예배이기에 우리는 예배 후에 나누는 교제 역시 중요한 의미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즉 교제(koinonia)는 예배의 연장이며 예배 일부임을 알아야 합니다.

 

여섯째, 개인적인 예배(the personal nature of worship)

특히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제사를 드릴 때 이 제사를 위하여 특별히 준비하여 책임성 있게 참여할 것을 명했습니다. 이때 개개인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준비해야 할 것을 철저하게 준비하여 참여하도록 명했습니다.

* 26:13-15 그리 할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아뢰기를 내가 성물을 내 집에서 내어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기를 주께서 내게 명령하신 명령대로 하였사오니 내가 주의 명령을 범하지도 아니하였고 잊지도 아니하였나이다. 내가 애곡하는 날에 이 성물을 먹지 아니하였고 부정한 몸으로 이를 떼어두지 아니하였고 죽은 자를 위하여 이를 쓰지 아니하였고 내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주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다 행하였사오니 원하건대 주의 거룩한 처소 하늘에서 보시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시며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복을 내리소서 할지니라.

 

이 말씀은 그저 단순히 종교적인 의식에 형식적이고 무미건조한 마음으로 참여할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최선을 다하여 이 예배를 준비하여 참여할 것을 가르쳐 줍니다. 이는 과부의 두 렙돈이 부자의 많은 헌금보다 더 귀하여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신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신 주님 교훈의 핵심과도 같은 뜻을 가르쳐 줍니다.

* 12:43-44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일곱째, 희생적 예배(the sacrificialness of worship)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리는 제사에는 첫 열매를 거두어 자기와 가족이 다 먹지 않고 구별하고 절약하여 모아서 온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께 갖고 나와 드리는 헌물이 있습니다. 이는 희생 없이는 될 수 없는 것입니다. 2624절에서는 내가 애곡하는 날에 이 성물을 먹지 아니하였고 부정한 몸으로 이를 떼어두지 아니하였고 죽은 자를 위하여 이를 쓰지 아니하였고 내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주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다 행하였사오니라고 고백하며 제사드릴 것을 명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가장 귀한 것, 쓸데 못 쓰고, 절약하고 모아서 물질과 시간과 정성을 다하여 구별하여 드려야 합니다. 이러한 희생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 나갈 때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는 모습을 보시고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덟째, 받아주시는 예배(the receptiveness of worship)

* 26:15 원하건대 주의 거룩한 처소 하늘에서 보시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시며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복을 내리소서 할지니라.

 

온전한 예배를 드리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그가 드리는 제사를 기쁘게 받으시고 그에게 복을 내려주십니다. 창세기 4장에서 가인과 아벨의 제사 중에 아벨의 제사만을 받으시는 하나님을 봅니다.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19:9-14) 가운데 세리의 기도를 받으시는 하나님을 발견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지금도 온전히 예배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찾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 4:23-24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참으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는 신령과 진리로 하나님께 나오는 자의 예배입니다. 이런 성도에게 하나님께서는 변함없는 신분(unchangeable status)을 보장하여 자기 백성 됨을 확신시키시고, 참으로 행복한 인생을 보장하시며(assured destiny) 나아가 영원한 구원을 보장(eternal security)하십니다.

* 26:19 그런즉 여호와께서 너를 그 지으신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사 찬송과 명예와 영광을 삼으시고 그가 말씀하신 대로 너를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라.

 

결론

 

오늘날 성도와 교회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근본에는 다름 아닌 예배의 문제가 자리를 잡고 있다고 믿습니다. 이는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관계성의 문제입니다. 개인이든 가정이든 나아가 교회든 사회든 어떻게 하나님과 관계가 설정돼 있는가에 따라 나타나는 삶의 모습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곧 평소에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대한 생각과 이해의 차원과 정도에 따라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나님과의 관계가 설정되어 있는지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단순히 구복신앙적인 차원에서, 샤머니즘의 차원에서 예배를 드린다면 분명히 삶의 현장에서는 세속과 구별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평소의 실력이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누구처럼 말입니다.

 

성경에서 예배에 대하여 관통하는 사상은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은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이시다라는 것입니다. 이 점을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잘 인식하여 하나님은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보신다(삼상 2:3)”라고 고백하였고 다윗도 하나님의 이 속성을 간파하고 하나님은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멸시하지 않으시는 분(51:17)”으로 고백하며 긍휼하심을 구했던 것입니다.

 

바라기는 이 말씀을 통하여 온전히 받으시기에 합당한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며 바른 관계를 하나님과 맺고 누리는 성도가 되시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과연 내가, 우리 가정이, 우리 교회가 어떻게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는지를 깊이 고민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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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 <신명기강해 40> 세 차례 내게 보이라 신명기 16:16-1 無益박병은목사 314 2018.06.17 21:43
328 <신명기강해 39> 속량하셨음을 기억하라 신명기 15:4~ 無益박병은목사 318 2018.06.10 22:03
327 <신명기강해 38> 하나님을 사랑하는 여부 신명기 13:1 無益박병은목사 473 2018.06.03 19:34